전설/설화

은풍면(殷豊面)

은풍면은 삼국시대에 신라(新羅)의 적아현(赤牙縣), 757년(신라 경덕왕 16)때 은정현(殷正縣)으로 고쳐 예천군에 편입되었고, 고려(高麗) 초(初) 은풍현(殷豊縣)으로 개명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안동부(安東府)로 넘어갔다가 문종 때에 풍기군(豊基郡) 은풍현(殷豊縣)이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에 풍기군 하리면으로 되었다가 1914년 부,군,면(府郡面) 폐합시에 영주군(榮州郡) 하리면(下里面)으로 개칭되었고, 1923년 3월 21일 부령 제58호로 예천군(醴泉郡)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당시에는 금곡, 덕천(德川), 처룡(處龍), 오류, 동사, 현촌(縣村), 부초, 시항, 율곡, 송천(松川), 월감(月甘), 후평(後坪), 오래(五來), 우곡, 유산(酉山), 정자(亭子), 서사(西沙), 양전(良田), 한감(汗甘), 조고(助古)의 20개 동리(洞里)로 관할하다가 1914년부터 구역 폐합에 따라 금곡(金谷), 동사(東沙), 부초(芙草), 송월(松月), 시항(矢項), 오류(五柳), 우곡(愚谷), 율곡(栗谷), 은산(殷山), 탑동(塔洞) 등 10개 동으로 개편하여 왔다. 1988년 5월 11일자로 예천군조례 제1068호에 의거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하리(下里)의 지명은 은풍현의 아래쪽이라 하여 불러졌다.
가볼 만한 곳은 솔경지와 부용봉이 있으며, 특산물은 은풍준시, 사과, 마늘, 잡곡 등이 있다.

상여바위와 초롱바위

  • 위 치 : 하리면 시항리 (상시항 뒷산)

시항리 버스 종점에서 동남쪽 감천면(甘泉面)으로 넘어가는 곳에 넓다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행상바위라 부른다. 옛날에 젊은 산지기 부부가 나름대로 성실히 살아가는데, 어느 봄날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다니던 한 선비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구해 주었다. 그 선비는 조정(朝廷)에서 높은 벼슬을 하던 대감(大監)으로 산지기에게 구해준 보답(報答)으로 글공부를 가르쳐 주었는데 워낙 머리가 좋아 금방금방 깨우친 것을 본 대감이 놀라기도 하였다. 그 후 대감은 몸이 회복되어 서울로 돌아갔으나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산지기는 학문(學問)을 배워야 함을 깨닫고 그 날부터 밤낮으로 공부하여 몇 해 뒤 과거(科擧)에 급제했다.
그러나 조정의 중신(重臣)들 특히 지난날 산지기가 구해주었던 대감은 은혜(恩惠)를 보답하지 않고 이 산지기의 재능(才能)을 시기하여 절대로 벼슬을 줄 수 없다고 하였으며, 산이나 지키라고 하였다. 산지기의 재능에 후환(後患)이 두려운 선비는 중신들을 선동하여 고향인 “살목이”로 돌아가는 산지기를 자객(刺客)들을 보내 살해하였는데, 그 때 그 자리에 바위가 생겨 「행상바위」 또는 「상여바위」라 하였다.
상여바위가 있는 위쪽 건너편에는 산지기의 아내가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초롱불을 들고 애타게 기다리다가 지쳐 죽으니, 그 자리도 바위로 변하였다. 이 바위를 「초롱 바위」라 불렀다.
그 후로 혼기(婚期)를 앞둔 처녀들이 이 바위를 찾아 정성들여 빌면 좋은 신랑감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부처바위

  • 위 치 : 하리면 오류1리 (오래실 뒷산)

오래실 뒤 산기슭에 부처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중앙(中央)이 오목하게 패어 있는데, 옛날 아들을 놓지 못한 한 부인이 그 자리에 부처를 모시고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소원을 빌어 아들을 낳자, 그 후 다른 사람들도 이 소문을 듣고 그 곳에서 소원을 빌어 효험(效驗)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있었던 부처는 온데간데 없고 바위만 남아 있다.

솔경지(松境地), 솔갱이

  • 위 치 : 하리면 오류2리

이 마을에는 솔 숲이 있다. 1816년(순조 16) 상리면 야목리에 효성이 지극한 도효자(都孝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장날마다 고기반찬을 사서 부모님께 대접하였는데, 하루는 나무를 늦게 팔아 해가 저물어서야 지게에 고기를 매달고 집으로 가는데 도중에 이 곳 마을 솔숲에 다다랐다. 이 때 갑자기 솔개가 날아와 지게에 매단 고기를 낚아 채 가는지라 눈물을 흘리며 집에 돌아오니, 그 솔개가 벌써 고기를 물어다 집에 갔다 놓아 도효자의 부인이 부모님 밥상에 반찬으로 올렸다고 한다. 이는 산짐승도 도효자의 효성에 감동하여 도와주었으며 이로 인해 이곳을 「솔갱이」라고도 한다.
또한 솔숲이 있는 이곳부터 예천군과 은풍현(殷豊縣)의 경계가 된다 하여 「솔경지」(松境地)라고도 전해진다.

가메쏘

  • 위 치 : 하리면 송월리 (새마 앞)

가메쏘는 송월리 새마 앞 냇가에 있는 쏘로, 옛날에는 급류(急流)여서 물이 빙글빙글 돌아 흘러 웅덩이가 되었다. 지금은 모래가 쌓여 파묻혀 버렸다.
전설 1) 옛날 어느 농부(農夫)가 지나가다가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소나기가 쏟아지고 물은 빙글빙글 돌면서 갑자기 공중으로 치솟으면서, 용(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 후 며칠 간은 아무 일이 없었으나 나흘째 되던 날, 어느 노파가 이 곳을 지나다가 멍석과 같이 생긴 비늘이 달린 동물인지 벌레인지 알 수 없는 괴물(怪物)이 앞에 나타나므로 무서워 숨어서 그 물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되지 않아 그 괴물은 입에서 불을 뿜으며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 노파는 마을로 달려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동네사람들은 제각기 낫과 도끼 등 연장을 들고 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 괴물을 잡아내어 보니 수 천년 묵은 물뱀이었다고 한다.
전설 2) 옛날 새마에 40대 중년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싸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남편과 아내는 중대한 논제(論題)를 놓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여보! 우리도 한번 잘 살아봅시다.” 라는 말에 아내도 동의하여 승낙하였다. 그들은 그 이튿날부터 조금씩 일을 시작하여 조금마한 돈을 벌어 송아지 한 마리를 사왔다. 그런데 송아지의 죽을 쑤어 먹이려면 가마솥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내가 가마솥을 사러 나갔다. 가장 큰 가마솥을 사서 돌아오던 중 냇물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이게 웬 일인가? 천둥과 번개를 치며서 소나기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내는 비를 맞으며, 냇물을 한발 두발 건너 중간쯤 왔을 때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천둥소리에 그녀는 넘어졌다. 그녀가 넘어진 곳에 벼락이 떨어져 움푹 파여서 웅덩이가 되었다. 그 웅덩이로 가마솥도 빠지고 아내도 빠졌다. 지금도 그 웅덩이 밑바닥에는 솥이 놓였던 자리가 남아 있다고 전해온다.

업은골

  • 위 치 : 하리면 송월리 (월감 뒷산)

월감에서 도촌(道村) 쪽으로 가다가 왼쪽 편으로 돌아가면 나타나는 골짜기가 있는데 도효자(都孝子)가 어머니의 소원(所願)을 들어 드리기 위하여 음력(陰曆) 5월에 홍시를 구하려고 감나무가 많은 이 곳을 뒤척이다가 날이 저물었다. 날이 저문지도 모르고 도효자는 감나무 밑을 계속 찾고 있는데 갑자기 큰 호랑이가 나타나 겁이 나기도 하였으나 올라타라는 시늉을 하므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 강원도(江原道) 강릉(江陵)의 어느 산골 김씨(金氏) 집에서 홍시를 구해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때 도효자를 호랑이가 등에 업고 갔다하여 이 골짜기를 「업은 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업은골은 100여 년 전 도효자 이전에 생긴 땅이름으로 호랑이가 도효자를 업고 강릉으로 홍시를 구하러 갈 곳을 미리 암시해 준 우리 조상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엿보인다 하겠다.

쇠실(金谷)

  • 위 치 : 하리면 금곡1리 (쇠실 뒷산)

임진왜란 때 명(明)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선에 원병(援兵)왔을 때 이 곳을 지나다가 산천(山川)을 바라보니 매우 수려(秀麗)하여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 생각 하고 조선의 맥(脈)을 끊기 위하여 데리고 온 지관(地官)에게 물으니, “이 마을 뒷산은 명당(明堂)으로 인물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며, 이것을 막기 위해 요소가 있는 마을 뒷산에 혈(穴)을 끊으려고 쇠말뚝을 박았다고 하여 「쇠실」이라 하였다.
또한 순천(順天) 김씨(金氏)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 곳으로 피신(避身)하여 처음 정착(定着)한 곳이라 하여 「쇠실」이라고도 전해진다.

농부(農夫)와 호랑이

  • 위 치 : 하리면 율곡리

옛날, 힘세고 마음씨 착한 어느 농부가 살았다. 그는 농사(農事)를 잘 지을 뿐 아니라 이웃을 잘 도와주어 칭찬이 대단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몸져누워 있던 어머니의 병세(病勢)가 악화되었으나 돈도 없고 가난한데다가 품삯도 벌 수 없어 치료할 약(藥)을 구할 수가 없었다.
기껏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그 나무를 팔아 약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나무를 하기 위해 깊은 산에 들어갔는데 숲 속에서 난데없이 큰 호랑이(大虎)가 나타났다. 그는 선뜻, “이 호랑이를 잡아 그 고기를 어머님께 드리면 병(病)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호랑이와 격투(激鬪) 끝에 잡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농부가 방에 들어갔을 땐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다. 너무나 슬퍼서 울기는커녕 실신(失身)하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호랑이를 죽인 벌이 아닌가 후회하였다고 하니 이 농부의 심성(心性) 얼마나 착한지 알 수 있다.

은풍준시

  • 위 치 : 하리면 동사리

하리면의 동사리에는 독특(獨特)한 맛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은풍준시」 또는 「하리준시」라고 불리어지는 감이 있다. 300년 전 동사리 뒷골에서 자연생으로 자란 감나무에서 딴 감으로, 준시(꼬챙이에 꿰지 않고 말린 감)를 만들게 되어 이 지방(地方)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감의 특징은 껍질이 매우 얇고 수분(水分)과 당분(糖分)이 많이 포함되어서 한로(寒露-10월 8,9일 경)가 되면 홍시가 되므로 한로(寒露) 이전에 감을 깎아서 곶감을 만들게 된다. 곶감이 잘 되었을 때 햇볕에 비추어 보면 속이 발갛게 보이며, 60℃ 이상의 끓는 물에 넣으면 모두 풀어져서 물이 된다. 그리고 들에서 생산된 감보다 집 주변에서 생산되는 것이 단맛이 더 진하고 품질(品質)이 뛰어나다.
조선시대에는 “풍기준시”라 하여 임금님께 진상(進上)하기도 하였으나 자세한 내용은 전해오지 않고 있으며, 일제(日帝) 때에는 일본상인(日本商人)들이 유별나게 많이 찾아와 사갔다. 현재 40여 그루의 나무가 남아 있고 가장 오래된 나무는 약 300년이 되었다고 한다. 보통 한 그루에 20~25접(1접 100개)이 열리고 흉작(凶作)이 되면 10여 개 정도이고 십년일득(十年一得)이라 하여 10년에 한번 정도 큰 수확(收穫)을 한다.
동사리 뒷골의 자연생(自然生)이 원종(原種)으로, 다른 감나무는 베면 고염나무가 되지만, 이 나무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뿌리가 나와 새순이 나와 고염나무가 되지 않는다. 또한 다른 감나무에 아무리 접목(接木)을 해도 되지 않으며, 타 동리에는 자라지도 않으며, 감씨에 배아가 없고 감 하나에 씨도 1~2개로 겨우 형체만 있어 아주 특이(特異)하다.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은풍면행정복지센터(☎ 054-650-6604)입니다.

최종수정일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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