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우곡리

  • 읍실(邑谷)

    주변마을 중심지라 해서 읍실이라 불리어지며 은풍 구곡 팔목중 하나다. 고려중엽 정생이란 분이 처음 살기 시작 했다고 한다.

  • 과산골, 유산(果山谷, 酉山)

    마을 뒷산이 마치 닭 벼슬 모양을 하고 있어 유산이라 하며 마을 뒤에 과일나무가 많아서 과산골이라고 한다.

  • 거록(巨麓)

    부용봉 서쪽 큰 기슭으로 옮겨와 살면 큰 부자가 된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 안마(內洞)

    夫老山城 아랫마을로 읍실에서 보면 안으로 들어 간다고 하여 안마을이라 칭한다.

  • 名木(느티나무)

    은풍초등학교 교정에 460년이나 되며 옛날 우곡서원 선비들이 글 읽던 곳으로 여기서 호랑이 울음 소리를 들으면 과거 급제한다는 전설이 있다.

  • 우곡서원

    우곡리 430번지로 이조 숙종34년(1708년) 에 창건하여 嶪庵 유운용, 息庵 황건, 蒼石 이준, 竹日 김광엽 등을 배향한 서원이다.

  • 夫老山城

    안마 뒷산에 있는 城으로 一字 모양이다 토성으로서 삼국시대때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역이었던 관계로 어림성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봉화대 흔적이 있다.

  • 정자촌(亭子村)

    임진왜란 전 퇴계선생이 풍기군수로 계실당시 伯派인 參議公 云具의 후손 3형제가 암석위에 亭子를 짓고 살았다고 하며, 마을 뒷산 城재가 가마솥 형상으로 가마솥의 3개 발에 해당되는 곳이 평지마, 골마, 큰마가 되어서 솥정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탑 리

  • 조고리(助古里)

    이마을은 조선초기에 趙氏, 高氏, 李氏가 처음 이 마을을 열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한감(汗甘)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한지공장이 있어서 힘들게 일하며 땀을 흘리고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 재궁골

    한감 뒤편에 진성이씨 재궁이 있었는데 6.25사변때 소실되고 그 터만 남아있다.

  • 興德寺址

    조고리부락 앞들 한 가운데 자리한 興德寺는 고려 제4대 광종때 창건되어 몽고족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며 지금도 그 자리에는 礎石 여러개와 탑리392번지에 三層石塔, 한감부락 입구에 五層石塔, 한감마을 앞산에 塔里石佛二軀, 支石墓등이 있다.

동사리

  • 동사(東沙, 東祠, 東寺)

    동사(東沙, 東祠, 東寺) : 마을앞 냇물을 경계로 동편에 祠堂, 寺刹이 있었다고 하여 동사라고 불리었는데 이 마을을 처음 연 사람은 張氏, 邊氏, 太氏가 칡넝쿨을 헤치고 마을을 세웠다고한다.

  • 은풍준시

    원래 감나무는 고염나무에서 접목하여 번식을 하는 것이지만 『은풍준시』의 원목은 접목한 흔적이 없는 자생목인데 수백년된 자생원종 목(木)은 사라호태풍으로 소멸되고 그 아들 나무가 성목이 되어 뿌리에서 손자나무를 두고 있다.

은산리

  • 현촌(縣村)

    은풍현의 현청이 있었던 관계로 현이라 부른다.

  • 서사(西沙)

    옛날 이곳에 祠堂또는 寺刹이 있었다고 하여 서사라고 불리었다.

  • 창마(倉村)

    은풍현 당시 무기 창고가 있었던 관계로 창마라고 부른다.

  • 名木(엄나무)

    현촌 동구에 서있는 300년 된 나무로 마을을 수호하고 은풍의 역사를 말해준다. 그늘에는 역대 풍기군수 선정비가 있다. 차례로 군수 權命圭, 군수 張錫岐, 군수 洪羲喆, 군수 李龍夏등 4基가 서있다.

  • 良田立石

    양전동구 밭 한가운데 동서 양쪽에 높이 2m가 넘는 2基의 입석이 있는데 동쪽것이 끝이 뽀족하여 陽을, 서쪽것이 위가 넓적하여 陰을 표시하는 것이라 한다. 이곳 옆에는 동신제를 지내는 祠堂과 느티나무가 있어 완벽한 “샤머니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 양전(良田)

    연대는 알 수는 없으나 이곳에 良田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대밭마(竹田)

    현내에 살던 한 선비가 과거에 낙방 하고 이곳에 숨어 살았는데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가자 그 선비가 숨을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마을을 세우니 대밭마 라고 불렀다.

송월리

  • 소내실, 솔내실(松川)

    은풍의 피난지 구곡 팔목중의 하나로 마을앞 냇물이 맑고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송천이라 했다.

  • 월감(月甘)

    순흥安氏 형제가 난을 피해 굶주림과 허기에 지쳐서 목을 축이고 꿈에 둥근달이 중천에 떠있는데 산신령님을 만나 이곳에 보금자리를 잡고 감나무도 심었는데 그 맛의 달아 이곳을 감나무골 또는 월감이라 부르게 되었다.

  • 새마, 이전(新基, 泥田)

    밀양 박씨들이 새로 개척한 마을로 붉은 흙이 많이 나와서 泥田이라고도 한다.

  • 업은 골

    월감에서 도촌쪽으로 가다가 왼쪽편으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골짜기로서 都효자가 어머니의 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陰曆 五月에 감홍시를 구하려고 이곳 감나무 밑을 뒤척이다가 날이 저물었다. 그것도 모르고 도효자가 계속 찾는데 큰 호랑이가 나타나 올라 타기를 원하는 지라 호랑이의 등을 타고 감홍시를 구해서 왔다는 傳說 때문에 업은 골이라 한다.

금곡리

  • 덕거리, 넉거리(德川)

    이 부락은 주변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넷이라 하여 넉거리로 불리다가 후에 훌륭한 사람들이 살아서 살기좋은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고도 한다.

  • 쇠실

    마을 뒷편에 산세가 좋아 훌륭한 인물이 배출될 곳이라고 했는데 임진왜란때 이요송이 穴을 끊기 위해 쇠말둑을 박은 곳이라고도 하며 상주 함창 金光燁公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김씨가 사는 곳이라 하여 쇠실이라 하였다고 한다.

  • 지경터 처용(處龍, 處用)

    고려때 江陵 咸氏가 개척했다 하며 處用寺란 절터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다른 설로는 기(箕)로 만든 가면을 지응이(지용이, 제용이)라고 하는데서 處用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고 또한 지경터는 지경, 귀경, 구경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오류리

  • 오래실(五읍來谷)

    고려 광종때 연못이 있었는데 그 둘레가 오각못으로 되어있어 최길선이란 선비가 五溜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연못에는 강태공 다섯사람이 잘모여 오래 묵어 갔다고 하여 여기에서 오래실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 샛터(新基)

    오래실에 살던 이씨 형제가 물건너 밭에 집을 지어 터를 잡으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면서 이곳을 샛터라 불렀다.

  • 오류골, 오리골(五柳)

    유명한 시인이 풍류를 즐기며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을이 운치가 있고 기이하게 생긴 버드나무 다섯그루가 있었음으로 이것을 보고 시를 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그후부터 이 마을을 오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솔경지, 솔개이(松境地)

    조선 순조 16년 상리면 야목에 都孝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매 장날마다 예천장에 나무를 팔아 어머니의 고기 반찬을 이었는데 하루는 나무를 늦게팔아 해가 저물어서야 지게에 고기를 매달고 귀가하는 도중에 이곳 솔경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솔개(독수리)가 날아와 지게에 매단 고기를 낚아채 가는지라 눈물을 흘리며 집에 돌아오니 벌써 그 솔개가 고기를 물어다 갔다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로 인하여 이곳을 솔개이 라고도 한다.

율곡리

  • 논티(魯峴)

    입구에 위치한 마을로 밤실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는 낮아서 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작은 밤실

    이 마을은 뱀실로 불러왔는데 고려末 參政行事를 지낸 栗隱 金佇公이 홍건적이 내침하자 공민왕을 모시고 甫州(예천) 어림성을 거쳐 福州(안동)까지에 이르렀고 還御時에는 개성까지 모셨는데 1374년 공민왕이 살해되자 慨歎하며 벼슬을 버리고 은풍현 巳洞에 밤나무를 많이 심고 자호로 栗隱 이라 하고 南下亭을 건립하여 수양하며 보냈다는 설에 의해 뱀실에서 밤실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은 골짜기는 큰데 큰 밤실에 비하여 가구수가 적어 작은 밤실로 불리운다.

  • 큰밤실

    작은밤실보다 가구수가 많다고 하여 큰 밤실로 불리운다.

  • 龍臺

    큰 바위가 절벽을 이루고 큰밤실과 작은밤실의 경계지점이 되고 있다. 이 용대 바위에는 “殷山九曲”이라는 글과 舊 “霽谷 權先生 龍蓮亭址”라고 刻字되어 있다.

부초리

  • 명맥이, 명목이(命項)

    은풍현의 입구가 협소하여 적으로부터 현을 지키는데 목숨과 같이 중요한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마산(馬山)

    마을 지세가 소쿠리처럼 둘러쌓인 지형인데 목초지로 적합하여 조선시대 남부자가 말을 기르던 곳이라 한다.

  • 부푸실(芙浦室), 부초(芙草)

    조선 효종때 남재영이란 분이 풍산 새마에서 이사를 와 지형이 아름다워서 부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부푸실로 불리어 진다.

  • 방골, 방곡

    조선시대 玉進士 이 마을을 개척 했는데 이 마을 건너편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골로 부르다가 옥진사가 후손이 없어 그의 무덤을 돌로 만든 뒤 바위골로 불렀는데 그 뒤 음운의 변화로 방골로 불리어 온다.

시항리

  • 시항은 원래 살목이로 불리었는데 우곡리 市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바로 활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에는 12살목이로 불리었는데 지금은 上, 中, 下살목으로 부른다.
  • 부용봉

    소백산 도솔봉에서 빗겨 남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산줄기가 부용봉에서 크게 움켜쥐고 멈춰섰으니 그 높이가 688m로서 감천면, 은풍면의 경계가 되고 산의 흐름이 힘이 있어 靈山스럽기까지 한다. 부용봉 아래 시항마을 쪽으로 상여바위, 초롱바위가 있다.

  • 蓮花寺

    연대를 알수 없는 때에 큰 절이 있었음을 짐작하는 기와장이 나오는 이곳에 근년에 시항동민의 운력으로 새로 지어진 이 절은 법당 1채 요사2채로 이곳 법당에 모신 보살상은 흥덕사지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한감에 살던 고씨 형제에 의해 옮겨왔다고 한다.

  • 舍利浮屠

    연화사 경내 동편 느티나무 밑에 사각뿔 모양의 돌에는 “通政大夫 黃之坤, 舍利佛”이라고 刻字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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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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