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의인물

상세내용

이문흥(李文興)
  • 15세기 문신, 개포면 출신.
    자는 질보, 호는 나암이요. 본관은 성주이며 1462(세조 8)년 48세에 진사에 뽑히고 1469(예종 1)년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때에 대사성에 이르러 16년간을 인재 양성에 전심전력하니 당대 유림의 종사로 많은 제자들이 조정의 공경대부 자리에 나아갔다. 1493(성종 24)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당대의 명공 석학들이 도성 문밖까지 배웅하면서 그 공덕을 노래하여 귀향하는 길을 영화롭게 했고 이 때의 이별을 아쉬워 하는 시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48에 처음 벼슬하여 79에 치사하니 세상에 드문 일이다.
    나암 서거 근 200년 후 사림이 1699(현종 10)년 용궁의 기천서원에 (고려 절신 노포 안 준을 모신 곳) 손자 이 구, 외손자 문 근문 관 등과 함께 모셨다.
이 구(李構)
  • 공의 자는 성지, 호는 연경당.본관은 성주, 세준의 아들로 개포면 입암리에서 태어남.
    1510년에(중종 5) 진사가 되고 36살 나던 해, 곧 1519년(중종 14)에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으나 이 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 광조 등과 의지가 통하는 신진사류라는 이유로 투옥되었다가 하루만에 석방되었고, 또 향약을 실시하면 도둑이 없어진다고 건의하여 이를 실시케 하였는데 도둑이 여전히 횡행한다 하여 2년 후 1521년(중종 16) 파직되어 낙향했다가 16년 후 작고하고 1538년(중종 33) 기묘명현들이 신원될 때 직제학으로 불렀으나 작고 후이므로 증직에 그쳤다.
    기묘년에 한림으로 용궁에 있는 본집에 다녀 상경한 뒤 왕에게 아뢰기를 "향약을 행한 뒤로 풍속이 후해지고 점점 향방을 알게 되었사오니 계속하여 시행한다면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을 날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하였다. 그는 신진사류 조 광조 등과 뜻을 같이 하며 이상 정치를 추구하였으나 뜻을 펴지 못했다
    심무문의 화(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승정원에서 잡혀 옥에 갇혔다가 다음날 아침 풀려나자 입시하여 아뢰기를 "어제 일이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사초에 쓰려고 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하니 임금은 "일의 원인을 사관으로서 알고자 하느냐. 그날 홍 경수(무오사화를 일으킨 주역)등이 신무문 밖에 모였으므로 내가 서문으로 들어오라고 했다."하였다.
    사관 권 예등과 다시 아뢰기를, "이 같이 중대한 일은 대신들이 도당에 모여 백일하에 처리하는 것이 옳습니다. 밤은 음이고 낮은 양인것과 같이 군자는 양이요 소인은 음입니다. 밤중에 거사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아니라 신무문은 거사할 곳이 아니옵니다." 하였으나 임금은 답이 없었다.
    뒤미처 공이 아뢰기를 "이 계교를 먼저 시작한 사람과 신무문을 연 일들을 들어서 적고 싶사오나 신이 사필을 잡고서도 근본 원인을 모르므로 이같이 아뢰나이다"하고 이어 아뢰기를 "신이 정원에서 숙직했는데도 그 열쇠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왕이 또 이르기를 "그 때 승지들이 모두 간의대에 갔었는데 어떻게 알겠느냐"하였다.
    또 아뢰기를 "그 때 신도 또한 옥에 갇혔었는데 조 광조등이 서로 붙들고 통곡하기를 생각컨데 화변이 중간에서 일어난 것 같다고 하다가 새벽에 이르러서 까닭을 듣고 서로 술을 권하면서 위로하여 이것이 임금의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면 죽은들 무슨 한이 있으리요마는 성스럽고 밝은 임금을 만났는데 어찌 이같이 애매한 일이 있을 줄 생각하였으리요. 하였습니다."라고 옥중 동정을 아뢰니 왕은 더 말이 없었다.
    그 뒤 1521년(중종 17)에 이 빈, 유 관등이 "이 구가 향약을 실시하면 풍속이 순화된다고 하더니 도둑이 자주 일어나니 그의 속인 죄를 다스릴 것을 청합니다."라고 왕에게 아뢰어 파직이 되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향약은 사회의 덕화와 상호 협동을 위하여 만든 규약이요 중종조에는 신진 사류들의 진언으로 채택되어 풍습과 민정에 끼친 공이 큰 것인데 이렇게 반대당의 진언이라고 배척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하루빨리 없어져야 될 악습이다. 이후로 고향(개포면)에 돌아온 그는 연경당을 짓고 고향 산천을 가꾸며 여생을 보냈다. 기천서원에 모신다. (※ 문헌: 연려실기술, 성종실록, 용궁현읍지)
이발곤(李發坤)
  • 절의 현손으로 호는 은촌, 광행군 때 진사로 문장과 행실이 뛰어났다.
이백영(李白永)
  • 본관은 경주, 호는 송오.
    문과에 급자하여 정랑을 지냈으며 유고가 있다.
이 번(李蕃)
  • 본관은 덕산
  • 연산군 때 대사간이 되었으며 후에 참의가 되었다.
이봉신(李奉臣)
  • 조선조의 효자.
  • 본관은 공주이며, 공숙공 명덕의 후손이다.
  • 호는 한헌이며, 자는 시보 벼슬은 승사랑창룽 참봉에 이르렀다.
  • 효행이 남달리 지극해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빈(李檳)
  • 본관은 여주, 호는 교채당.
  • 문과에 급제하여 지돈녕을 거쳐 형조 참판에 이르고 기로사에 들었다.
  • 공이 죽자 정종 임금은 제문을 내려 슬퍼했으며 유집이 있다.
이상룡(李祥龍)
  • 본관은 전주, 호는 몽제.
  •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거친 음식을 먹으며 묘옆에 움막을 짓고 살다.
  • 오리 이 원익이 찾아와 나라를 경륜할 재목이라고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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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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