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및 학술자료실
■ 정휘세(鄭輝世, 1906~1931)
- 훈 격 : 애국장(2006)
- 운동계열 : 일본방면
- 출 신 지 : 경북 예천군 지보면 도장리 378
정휘세는 1906년 1월 9일 예천군 지보면 출생으로, 1927년 3월 일본 교토(京都)에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교토조선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정기총회에서 상임서기로 선출되었고, 그 후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1927년 12월 교토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을 당시 신간회 교토지회 제2회 정기 대회에서 총무부 간사로 선출되었다.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의 회원으로 청년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28년 1월 28일 교토조선청년동맹 창립총회에서 임시의장을 맡았다. 4월부터 고려공산청년회 관서지방 임시위원회 조직부장에 임명되었고 5월 14일 도쿄에서 열린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제4회 전국대회에서 자격심사위원과 전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7월 1일 일본 관서지방에서 노동운동과 청년운동에 참여하던 정휘세는 교토조선노동조합 내에 청년부를 창립하고, 교토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본부에 가입하였다.
1929년 3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교토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4월 박제환(朴濟煥)과 협의하여 일본부내에 관서구역국을 설치하였다. 이때 설치된 관서구역국에서 정휘세는 선전부장을 맡았다.
정휘세는 일본 내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면서 일제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1929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931년 5월 15일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의 판결을 받고 교토형무소와 나라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그해 11월 24일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 처-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예천의 독립운동사(예천문화원, 2010)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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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