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channel><title>교육 및 학술자료실</title><link>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link><description></description><atom:link href="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rss"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lastBuildDate>Wed, 30 Sep 2026 09:10:21 GMT</lastBuildDate><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7652</guid><title>이달의 인물 &amp;#39;강복선&amp;#39;(2026.09.)</title><description>[2026년 9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강복선(姜復先, 1608~미상) 예천 용궁 출신으로 양산군수와 향접위관을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문신.​&amp;#183; 본관: 진주(晉州) &amp;#183; 자(字): 효초(孝初) &amp;#183; 호(號): 고송(孤松)​｜강복선의 인물 개요예천 용궁 출신으로 당대 학자인 하음(河陰) 신즙(申楫, 1580~1639)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평소 학문에 힘쓰고 뜻을 독실히 하였으며, 문과 급제 후 진산과 양산 등지의 군수*를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고, 향접위관*으로 외교 임무도 수행하였다. ｜강복선의 가문 강복선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인 통정(通亭)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이다. 증조부 강응청(姜應淸), 조부 강립(姜雴), 부친 강여벌(姜汝𦪑)로 이어지는 가문에서 성장하였으며, 형제로는 강상선(姜象先)이 있다. ｜강복선의 과거 급제 기록[문과] 인조(仁祖) 24년(1646) 병술(丙戌)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 을과(乙科) 6위 ｜강복선의 관직 생활 및 행적강복선은 유학(幼學)으로 문과 급제 후 진산과 양산 등지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특히 1666년(현종 7) 3월, 양산군수 재임 중에는 향접위관으로 임명되어 표류 왜인을 송환한 것에 대해 사례를 하러 온 차왜(差倭) 고바야시 간에몬(小林勘右衛門) 일행을 접대하였다. 당시 연향을 담당하던 울산군수 남천택이 불미스러운 일로 수감되자, 강복선이 별연(別宴)을 비롯한 이후의 연향을 대신 주관하였다.재임 중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펼쳤으며, 자신의 안위나 이익은 돌보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에 백성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벼랑의 바위를 갈아 유애비(遺愛碑)를 새겼다. * 군수(郡守): 조선시대 문관 종4품 외관직으로 중앙 정부에 공물과 부역 등을 조달하고 군(郡)의 행정을 담당한 수령.* 향접위관(鄕接慰官): 쓰시마에서 파견한 소차왜(小差倭)와 재판왜(裁判倭)를 접대하기 위해 경상도 관찰사가 도내의 문관(文官) 수령 중에서 파견한 관리. * 참고문헌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방목(國朝榜目) 권10』.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국조방목(國朝榜目) 권4』.권경열&amp;#183;최연숙 역, 『축산승람』, 한국국학진흥원, 2018.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과거급제자 (https://kdp.aks.ac.kr/people).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 (https://waks.aks.ac.kr/rsh/?rshID=AKS-2012-EBZ-2101). 작성자: 학예연구원 이한별 / 검수자: 학예연구사 김효정</description><pubDate>Wed, 30 Sep 2026 09:10:21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7339</guid><title>이달의 유물 ‘위성공신교서’(2026.09.)</title><description>[2026년 9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유물] 『위성공신교서(衛聖功臣敎書)』 조선 중기 문신 정탁(鄭琢, 1526∼1605)을 위성공신 1등으로 녹훈하며 내린 교서이다. 보물로 지정된 ｢정탁 문적 - 약포유고 및 고문서｣ 중 하나이다. 위성공신은 1613년(광해군 5) 임진왜란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을 호종하거나 분조* 활동을 보좌한 공로자 80명을 3등급으로 나누어 책록한 공신 칭호이다. 정탁은 1604년(선조 37) 이미 좌의정으로서 호성공신 3등에 녹훈되고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세자 광해군을 호종하고 분조 활동을 보좌한 공이 인정되어 ‘갈충 진성 동덕 찬모 좌운 위성 공신(竭忠盡誠同德贊謨佐運衛聖功臣)’ 1등에 올랐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위성공신이 삭훈되었다. 이 교서는 오늘날 드물게 남아 있는 위성공신 관련 교서이다. 정탁에게 내려진 공신 혜택에는 초상화를 그려 후세에 남기게 하고 본인과 부모&amp;#183;처자의 품계를 3계 올려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자식이 없을 경우에는 조카와 사위의 품계를 2계 올려주도록 하였다). 또한 적장자가 그 혜택을 세습하도록 하였으며, 노비 5명, 밭 40결, 은자 10냥, 비단 1필, 내구마* 1필을 지급하도록 하였다.교서 마지막에는 1~3등 공신의 명단과 ‘만력 41년 3월(萬曆四十一年三月)’이라는 날짜가 적혀있고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다. * 분조(分朝): 조정을 둘로 나눈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임시로 두었던 조정.* 내구마(內廏馬): 조선시대 궁중의 왕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내사복시에서 기르던 말. 참고문헌『국가유산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 탁 자 : 청주정씨 고평종중(정경수)입수일자 : 2021년 07월 30일소장품 번호: ycd006916 작 성 자: 학예연구원 김건일검 수 자: 학예연구사 이한일</description><pubDate>Wed, 23 Sep 2026 05:34:13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5963</guid><title>이달의 인물 &amp;#39;김시구&amp;#39;(2026.08.)</title><description>[2026년 8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김시구(金蓍耉, 1724~1795) 조선 후기 사헌부장령과 승지를 역임한 문신. ㆍ 본관: 경주(慶州) ㆍ 자(字): 몽휴(夢休) ｜김시구의 인물 개요조선 후기에 장령, 전사관,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54년(영조 30) 문과 증광시에서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보안찰방*을 시작으로 사헌부지평*, 경양찰방*, 사헌부장령*, 전사관*, 승정원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후로는 주로 외직에서 근무하였다. ｜김시구의 가문김시구의 생부는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을 지낸 김광운(金光運)이며, 어머니는 채경전(蔡慶全)의 딸이다. 이후 통덕랑(通德郞) 김광진(金光進)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성리학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김시구의 과거 급제 기록[진사] 영조(英祖) 30년(1754) 갑술(甲戌) 증광시(增廣試) 진사(進士) 2등(二等) 2위[문과] 영조(英祖) 30년(1754) 갑술(甲戌) 대증광시(大增廣試) 을과(乙科) 4위 ｜김시구의 관직 생활1754년(영조 30) 증광 문과에서 ‘본조묘당지신청엄과규정사습*’이라는 어제 전 시제*로 을과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같은 해 강원도 지역의 보안찰방으로 밀려났다가 곧 복귀하여 사헌부지평이 되었으나,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죄로 1758년 전라도 광주의 경양찰방으로 좌천되었다. 1762년(영조 38) 이후 여러 차례 사헌부장령에 임명되었으며, 1767년(영조 43) 전사관으로 함경도(관북)에 파견되었다. 1772년(영조 48) 승정원승지에 올랐으며, 이후에는 주로 외직에서 근무하였다. *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9품 관직으로 왕의 언행과 국정 기록을 담당.* 보안찰방(保安察訪): 조선시대 강원도 보안도(保安道) 구역 내 역참(驛站)과 교통&amp;#183;통신을 관리&amp;#183;감독하던 종6품 관직.*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조선시대 언론&amp;#183;감찰 기관인 사헌부의 정5품 관직.* 경양찰방(景陽察訪): 조선시대 전라도 경양도(景陽道) 구역 내 역참(驛站)과 교통&amp;#183;통신을 관리&amp;#183;감독하던 종6품 관직.*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조선시대 언론&amp;#183;감찰 기관인 사헌부의 정4품 관직.* 전사관(典祀官): 조선시대 전사청에 속하여 국가의 제사(祭祀)에 관한 행정과 준비를 맡아보던 관직.*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관청인 승정원의 정3품 당상관.* 본조묘당지신청엄과규정사습(本朝廟堂之臣請嚴科規正士習): “조정의 묘당 대신이 과거의 규정을 엄격히 하고 선비들의 풍습을 바로잡기를 청한다”라는 뜻.* 어제(御題) 전(箋) 시제: 임금이 직접 출제한 과거 시험 문제. * 참고문헌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권7.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정보시스템 (https://people.aks.ac.kr). 작성자: 학예연구원 이한별 / 검수자: 학예연구사 김효정</description><pubDate>Mon, 31 Aug 2026 02:20:11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5672</guid><title>이달의 유물&amp;#39;1836년 이담구 문과 정시 시권&amp;#39;(2026.08.)</title><description>[2026년 8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유물]​『1836년 이담구 문과 정시 시권(1836年 李潭九 文科 庭試 試券)』​이 시권(試券)은 1836년(헌종 2) 2월 25일에 시행된 문과(文科) 정시(庭試)에서 이담구(李潭九, 1803~1860)가 작성한 답안지이다.이담구는 예천 용궁에 거주하던 유학(幼學)으로 34세가 되던 1836년, 순조의 세실 봉안*과 효명세자의 익종 추승*을 기념해 시행된 경과 정시*에 급제하였다. ​이 시험의 시제는 임금이 직접 내린 어제* ‘군자불출가이성교어국(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이다. 이는 『대학』*에서 인용한 구절로 “군자는 집을 나서지 않고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룬다”라는 뜻이다. 가정에서의 올바른 실천이 나라를 다스리는 바탕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답안 성적은 ‘삼하*’이다. 이담구의 시권 오른쪽 상단에 부착된 종이에는 ‘별시합설정시문과을과제일입망(別試合設庭試文科乙科第一入望)’이라고 적혀있다. 이를 통해 이담구가 10명의 급제자 가운데 2등인 을과(乙科)* 제1인으로 급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순조(純祖)와 세실(世室) 봉안: 순조(재위 1800~1834)는 조선 제23대 왕이다. 세실은 공덕이 큰 왕의 신주를 종묘에 영구히 모시는 제도 또는 그 신실을 말한다.* 효명세자(孝明世子)와 익종(翼宗) 추숭: 효명세자(1809~1830)는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 세상을 떠났으며, 헌종 즉위 후 익종으로 추승되었다. 추승은 사후에 왕의 지위를 올려 높이는 것을 말한다.* 경과(慶科) 정시(庭試): 국가의 경사를 기념해 특별히 시행한 과거시험이다. 정시는 대체로 초시와 복시를 거치지 않고 궁궐에서 한 차례의 시험으로 급제자를 선발하였다.* 어제(御製):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이나 글제. 여기서는 임금이 직접 낸 과거시험의 시제이다.* 대학(大學)​: 유가의 근본이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유교 경전으로, 주희(朱熹)가 『예기(禮記)』에서 독립시켜 『중용(中庸)』과 함께 사서(四書)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삼하(三下):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9단계 답안 평가 등급 중 9번째 등급으로, ‘삼등급의 하’에 해당한다.* 을과(乙科): 과거 문과 합격 등급(갑&amp;#183;을&amp;#183;병) 중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참고문헌『국조방목』『승정원일기』 기 탁 자 : 여주이씨 참의공파(이정인)입수일자 : 2024년 12월 18일소장품 번호: ycd009144 작 성 자: 학예연구원 김건일검 수 자: 학예연구사 이한일</description><pubDate>Tue, 25 Aug 2026 01:57:38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3865</guid><title>이달의 인물 &amp;#39;신 완&amp;#39;(2026.07.)</title><description>[2026년 7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신 완(申 完, 1738~1799) 조선 후기 예조정랑&amp;#183;만경현감&amp;#183;전적 등을 역임하고, 시문과 경학을 두루 갖춘 문신.​&amp;#183; 본관: 평산(平山) &amp;#183;자(字): 시성(時成) &amp;#183;호(號): 구계(鷗溪) ｜신 완의 인물개요와 가문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평산신씨(平山申氏) 문희공(文僖公) 신개(申槩)의 후손이며 부친은 신습(申熠)이다. 유교 경전과 역사, 제자백가는 물론 천문&amp;#183;달력과 자연의 이치, 서예에도 두루 밝았다. 1773년 문과 병과에 급제하고, 승정원 가주서*, 예조정랑*, 만경현감, 성균관 전적*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만경현감으로 재임할 때 큰 기근이 들자, 자신의 봉급을 털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며 애민 정신을 실천하였다. ｜신 완의 과거 이력[문과] 영조英祖 49년1773 계사癸巳 정시庭試 병과丙科 6위﻿ ﻿｜신 완의 행적1773년(영조 49) 유학(幼學)의 신분으로 문과 병과에 급제했으며, 국왕이 내린 어제(御題) 부(賦) 《첨피기욱녹죽의의(瞻彼淇澳綠竹漪漪)》를 시제로 받았다. 급제 이후 승문원 정자를 시작으로 박사, 예조정랑, 만경현감, 성균관 전적 등 주요 관직을 거쳤다. 1798년(정조 22)에는 정조의 특명으로 사간원 정언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신 완의 문집 신완의 유고는 현손 신대희(申大熙)가 정리하여 1924년 목판본 『구계선생유집(鷗溪先生遺集)』(총 4권 2책)으로 발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문집에는 명승지를 찾아 감흥을 읊은 유람시와 벗들과 주고받은 시를 비롯해, 경전 해석을 다룬 깊이 있는 학술 편지, 서(序)&amp;#183;제문&amp;#183;상량문 등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곧은 주관과 뛰어난 문장력을 잘 보여준다. ｜신 완의 홍패예천박물관에 소장(평산신씨 문희공파 기탁)된 &amp;quot;1773년 10월 16일 신완 홍패(乾隆 三十八年 十月 十六日 申玩 紅牌)&amp;quot;는 신완의 문과 급제를 증명하는 교지(세로 84.9㎝, 가로 67.5㎝)이다. 앞면에는 합격 사실과 발급일(&amp;quot;敎旨 幼學申完文科丙科第六人及第出身者乾隆三十八年十月十八日&amp;quot;)이 적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국새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으며, 뒷면에는 ‘유학신완문과병과제육인(幼學申完文科丙科第六人)’이라는 제첨(題籤)이 부착되어 있다.﻿ * 가주서(假注書): 조선시대 승정원(承政院)에 두었던 정7품의 임시 관직.* 예조정랑(禮曹正郞): 조선시대 예조(禮曹)에 두었던 정5품의 관직.* 전적(典籍):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에 두었던 정6품의 관직.﻿* 홍패(紅牌):문무과 급제자에게 발급한 붉은색의 급제 증서. ﻿* 참고문헌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구계선생유집(鷗溪先生遺集)』.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 『구계선생유집(鷗溪先生遺集)』.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 『국조방목(國朝榜目)』.한국국학진흥원, 『구계선생유집(鷗溪先生遺集)』 부록.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s://people.aks.ac.kr). 작성자: 학예연구원 이한별 / 검수자: 학예연구사 김효정</description><pubDate>Fri, 31 Jul 2026 06:06:41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3417</guid><title>이달의 유물 &amp;#39;1511년 7월 2일권선 처 한산이씨 분재기&amp;#39;(2026.07.)</title><description>[2026년 7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유물]​『1511년 7월 2일 권선 처 한산이씨 분재기(1511年 7月 2日 權善 妻 韓山李氏 分財記)』 1511년(중종 6), 권선(權善)의 아내인 한산이씨(韓山李氏)가 5남 5녀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며 작성한 분재기*이다.​한산이씨는 분재기에서 남편이 재산을 나누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자신 또한 해마다 병이 깊어짐에 따라 남편의 재산과 자신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또한 맏아들 권오행에게는 제사를 맡기 때문에 노비와 전답을 별도로 더 준다고 명시하였다. 분재기에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에 따라 상속 내용을 기록하였으며, 각각의 상속분을 노비와 전답 순으로 기재하였다.​문서의 말미에는 분재기 작성과 관련한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다. 재주*는 별좌* 권선의 처 한산이씨이며, 증인이자 보증인으로 종사랑* 권씨, 필집*으로 유학* 이씨가 기재되어 있다. 한산이씨는 도장을 찍었으며, 증보*와 필집은 이름을 쓰지 않고 수결만 하였다. 증보는 남편 권선 측의 친족, 필집은 한산이씨 쪽의 친족으로 추정된다.​이 분재기에는 조선 전기 자손에게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모습과 맏아들에게 제사 봉행의 책임을 이유로 재산을 추가 지급하는 모습이 함께 나타난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 균분 상속에서 적장자 우대 상속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분재기(分財記): 부모나 조상이 자손과 가족에게 나누어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 재주(財主):​ 재산이나 재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재산의 상속 또는 분배를 하는 주체.* 별좌(別坐): 조선시대 여러 관서에 두었던 정&amp;#183;종5품의 관직.* 종사랑(從仕郎): 조선시대 문신이 받던 정9품의 품계.* 필집(筆執): 증인으로서 증서를 쓴 사람.* 유학(幼學): 조선 시대에 아직 관직에 오르지 않았거나, 과거를 준비하며 학문에 힘쓰던 유생(儒生).* 증보(證保): 사실의 진위를 증명하여 책임 짐. 문서에서는 증인과 보증인을 말함. 참고문헌『한국민속대백과사전』 기 탁 자 : 예천권씨 초간종택(권덕열)입수일자 : 2022년 11월 18일소장품 번호: ycd008029 작 성 자: 학예연구원 김건일검 수 자: 학예연구사 이한일</description><pubDate>Fri, 24 Jul 2026 07:50:21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1270</guid><title>이달의 인물&amp;#39;홍여하&amp;#39;(2026.06.)</title><description>[2026년 6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홍여하(洪汝河, 1620~1674) 조선 후기에 사간, 경성판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주자학과 문장에 뛰어났던 문신. ㆍ본관: 부계(缶溪) ㆍ자(字): 백원(百源) ㆍ호(號): 목재(木齋)&amp;#183;산택재(山澤齋) ｜홍여하 인물 소개조선 후기의 문신 홍여하는 주자학에 밝아 사림의 종사(宗師)*로 일컬어졌으며 영남의 4대 문장가*로 꼽혔다. 만년에는 예천의 복천촌(福泉村)으로 이사하여 존성재(尊性齋)를 건립하고, 후학 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홍여하의 가문과 성장홍여하는 대사간 홍호(洪鎬)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독서를 즐겼다. 당대의 유학자 정경세(鄭經世)로부터 장차 큰 유학자(大儒)가 되리라는 찬사를 받으며 그의 가르침을 계승하였다. ｜홍여하의 과거 이력[진사] 효종孝宗 5년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二等[문과] 효종孝宗 5년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3위 ｜홍여하의 관직과 저술홍여하는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과 사간원 정언 등을 지냈으나, 효종에게 시사(時事)를 논하는 소(疏)를 올렸다가 서인의 배척으로 좌천 및 파직되었다. 1658년 경성판관으로 복귀한 후에도 소문(疏文)에 서인인 이후원(李厚源)을 비판하여 송시열(宋時烈)이 사직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 1660년 황간(黃澗)에 유배되었다.이듬해 풀려나 귀향해 학문에 전념하다가, 1674년(숙종 즉위) 제2차 예송*으로 남인 정권이 수립되자 복귀하여 병조좌랑과 사간을 역임했다. 1689년 부제학에 추증되었고 상주 근암서원(近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목재선생문집(木齋先生文集)』이 있으며, 『주역구결(周易口訣)』, 『의례고증(儀禮考證)』, 『사서발범구결(四書發凡口訣)』, 『휘찬여사(彙纂麗史)』*,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해동성원(海東姓苑)』, 『경서해의(經書解義)』 등을 편찬하였다. ｜홍여하의 목재선생문집『목재선생문집』은 홍여하의 시와 산문을 엮어 1693년(숙종 19) 간행된 13권 7책의 목활자본 시문집이다. 권유(權愈)가 쓴 서문을 비롯해 시, 소문(疏文), 서(書), 독서차기(讀書箚記), 잡저, 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이 문집에는 송시열과 대립한 예론(禮論)이 담긴 「의례소(儀禮疏)」와 주자학 관련 저술, 사회&amp;#183;경제적 관심사를 다룬 잡저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지리지(地理志)」에는 고구려가 요&amp;#183;숙신까지 영토를 넓혔고 여진이 고구려의 부락이었다고 서술하는 등 주체적인 역사 견해가 담겨 오늘날에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종사(宗師): 모든 사람이 높이 우러러 존경하는 사람.* 영남의 4대 문장가: 목재 홍여하,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1540~1603), 창석(蒼石) 이준(李埈, 1560~1635).*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 조선시대 예문관에 소속된 정9품 관직. 왕의 말이나 명령을 담은 문서를 작성함.* 2차 예송(禮訟): 효종의 왕비 인선왕후의 국상에 자의대비(인조의 계비)가 입을 상복을 두고 일어난 예송 사건.* 휘찬여사(彙纂麗史): 홍여하가 고려시대에 관해 기전체로 저술한 역사서. 『고려사』를 토대로 『동사찬요(東史簒要)』,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등을 활용하여 저술.*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홍여하가 서거정(徐居正)의 『동국통감』을 취사&amp;#183;절충하여 저술한 역사서.참고문헌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권11.성균관대학교 존경각, 『갑오식년사마방목(甲午式年司馬榜目)』.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목재선생문집(木齋先生文集)』 (https://db.itkc.or.kr/).김시우, 『예천유학사』, 예천군&amp;#183;예천문화원, 2016.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https://ugyo.net/).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 작성자: 학예연구원 이한별 / 검수자: 학예연구사 김효정</description><pubDate>Sat, 20 Jun 2026 08:22:17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0930</guid><title>이달의 유물 &amp;#39;불구당선생문집&amp;#39;(2026.06.)</title><description>﻿[2026년 6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유물] 『불구당선생문집(不求堂先生文集)』 『불구당선생문집』은 불구당 김주(金迬, 1606∼1681)의 시문집으로 그의 5세손 김광일(金光一) 등이 1867년(고종 4)에 편집&amp;#183;간행한 4권 2책 구성의 목판본 책이다. 책 표지 제목은 &amp;#39;선조불구당집(先祖不求堂集)&amp;#39;이며, 본문 첫 머리 제목은 &amp;#39;불구당선생문집(不求堂先生文集)&amp;#39;이다. 문집에는 김주의 연보(年譜)와 김대진(金岱鎭)&amp;#183;박주종(朴周鐘)이 작성한 발문(跋文), 시 71수와 상소문[소(疏)] 2편을 비롯해 서문&amp;#183;기록&amp;#183;축문&amp;#183;제문 등 다양한 종류의 글 36편이 수록되었다. 부록에는 먼저 떠난 이를 애도하는 만사(輓詞) 26편과 평생의 발자취를 기록한 행장(行狀)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수록된 시의 절반 이상은 만시(輓詩)이다. 특히 권2의 ｢청물조병소(請勿助兵疏)｣와 ｢응지소(應旨疏)｣는 인조&amp;#183;효종 시기의 대외관과 사회경제적 현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청물조병소｣는 병자호란 직후 명나라를 공격하는 데 필요한 병력을 보내라는 청나라의 요구를 거절할 것을 촉구하며, 청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강상*이 무너지고 결국에는 나라마저 무너질 것을 경고한 상소이다. ｢응지소｣는 거듭되는 재이*를 맞아 효종이 내린 구언(求言) 교서에 올린 장문의 상소로 재이를 불러온 원인으로 붕당, 사치, 하급 관리[이서]의 폐단을 지적하고, 호적 정비와 호패법 시행을 통해 군역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글이다. 경북 예천 출신인 김주의 자는 여정(汝定), 호는 불구당(不求堂), 본관은 의성이다. 조선 후기 문신인 그는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영남호소사* 장현광*의 지휘 아래 의병 활동을 했으며, 이후 장현광의 제자가 되었다. * 강상(綱常): 유교의 기본 덕목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뜻함.* 재이(災異): 재앙이 되는 괴이한 일.* 호소사(號召使): 임진왜란 시기 의병을 모으거나 군량을 수집하기 위해 임시로 파견한 관원 혹은 관직으로 이괄의 난, 정묘호란, 이인좌의 난 등에도 임명됨.* 장현광(張顯光, 1554~1637):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 시호는 문강(文康). 조선 후기의 학자로 정치에 뜻을 두지 않고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종사하며 『여헌집』, 『성리설』, 『역학도설』 등을 저술한 인물.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규장각원문서비스(https://kyudb.snu.ac.kr/) 기 탁 자 : 의성김씨 남악종택(김종헌)입수일자 : 2020년 5월 20일소장품 번호: ycd004084/004085 작 성 자: 학예연구원 김건일검 수 자: 학예연구사 이한일﻿</description><pubDate>Sat, 13 Jun 2026 05:35:08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80315</guid><title>이달의 인물 &amp;#39;정옹&amp;#39;(2026.05.)</title><description>[ 2026년 5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정옹(鄭雍, 1391~1424) 조선 전기 집현전 수찬&amp;#183;지례현감 등을 역임하고, 사후 예천 완담서원에 제향된 문인.​ㆍ본관: 동래(東萊) ​｜ 정옹의 인물 소개정옹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처음 이름은 정희(鄭熙)이며, 예천 풍양면 청곡리 출신이다. 세종 대에 지례현감, 집현전 수찬*, 집현전 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34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고향인 예천의 완담서원에 제향되었다. ｜ 정옹의 가문과 성장정옹은 정승원(鄭承源)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정해(鄭諧), 아버지는 결성현감을 지낸 정귀령(鄭龜齡)이다. 어머니는 박문로(朴文老)의 딸이고 부인은 이경(李經)의 딸이며, 형제로는 정사(鄭賜)가 있다. ｜ 정옹의 과거 이력[문과] 태종太宗 17년141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동진사同進士 16위 ｜ 정옹의 관직과 행적태종 17년(1417)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은 집현전 수찬과 응교 등을 거쳐 종3품 사헌부 집의에 이르렀으며, 이후 금릉군(현 경상북도 김천시)의 지례현감으로 임명되었다. 지례현감 재임 시에는 향교를 중수하고 경전과 역사 교육을 장려하였다. 『지례읍지』에는 “지례현에서 문교(文敎)*를 크게 일으키고 현민(顯民)*의 예의 풍속을 순화시켜서 칭송 받아 마땅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그는 34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당시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였다고 한다. 무덤은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 산 45번지에 있으며, 학문 활동의 공으로 완담향사에 모셔졌다. ｜ 정옹과 완담서원완담향사는 1568년(선조 1)에 풍양면 청곡리 삼수정(三樹亭) 곁에 사당인 삼수사로 건립되었으며, 정귀령&amp;#183;정옹&amp;#183;정사 등 3부자를 제향하였다.이후 삼수사는 임진왜란(1592) 때 소실되었다가, 1606년(선조 39) 삼수 정귀령의 묘소가 있는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 완담에 완담향사로 중건되었다. 이후 선조들을 추가 배향해 모두 일곱 분을 모셨으나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고, 1998년 유림과 후손들이 복원하며 현재의 완담서원이 되었다. * 수찬(修撰): 조선시대 집현전 등의 정6품 관직. 1420년 세종이 집현전을 본격 정비하면서 마련된 직제.* 응교(應敎): 조선시대 집현전 등의 정4품 관직. 학문 연구(경연)와 왕명 대필을 주된 직무로 하던 직제.* 문교(文敎): 학문과 교육을 널리 베풀어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함.* 현민(顯民): 해당 고을(지례현)에 사는 백성들을 높여 이르는 말.* 서원훼철령(書院毁撤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라고 내린 명령. * 참고문헌『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김시우, 『예천유학사』, 예천군&amp;#183;예천문화원, 2016. 작성: 학예연구원 이한별 / 검수: 학예연구사 김효정</description><pubDate>Fri, 29 May 2026 09:24:29 GMT</pubDate></item><item><guid isPermaLink="true">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79929</guid><title>이달의 유물 &amp;#39;박주종 책문 및 아송&amp;#39;(2026.05.)</title><description>[2026년 5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유물]​​『박주종 책문 및 아송(朴周鍾 策文 및 雅誦』 ｜박주종 책문박주종(朴周鍾, 1813~1887)이 삼정*의 폐단 해결 방안을 제시한 대책문(對策文)*과, 이에 대한 포상으로 받은 『아송(雅誦)』 내사본*이다.1862년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철종은 관료와 전국의 유생들에게 삼정의 폐단을 해결할 방안을 담은 대책문을 올리도록 하였다. 박주종은 대책문에서 삼정의 문란을 사회 혼란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그 해결책으로 옛 제도의 정신 회복과 신중한 수령 선발, 조정의 절약 등을 제시하였다. 이 대책문은 5등으로 선정되었다. ｜아송박주종은 포상으로 『아송』 내사본 한 질*을 받았다. 『아송』은 1799년(정조 23) 정조가 『주자대전』*에서 시와 운문을 선별하여 편찬한 어정서*이다. 해당 판본은 주자소*에서 임진자(壬辰字)*로 간행한 8권 2책본이다.책의 첫머리에는 정조가 쓴 「어제아송서(御製雅誦序)」를 비롯해 편찬 취지와 체재를 밝힌 「아송의례(雅誦義例)」, 수록 작품의 목록인 「아송목록(雅誦目錄)」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사(詞)&amp;#183;부(賦)&amp;#183;금조(琴操) 4수, 고체시(古體詩)&amp;#183;근체시(近體詩) 359수, 명(銘)&amp;#183;잠(箴)&amp;#183;찬(贊)&amp;#183;제사(題辭)&amp;#183;삼선생사문(三先生祠文)&amp;#183;권학문(勸學文) 52수 등 총 415수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이 자료는 19세기 조선 사회의 삼정 문란과 이에 대한 지역 유학자의 인식을 보여준다. * 삼정(三政): 조선 후기 국가 재정의 세 축인 전정(田政)&amp;#183;군정(軍政)&amp;#183;환정(還政)을 통칭함. 토지세, 군역, 환곡의 운영을 뜻함.* 대책문(對策文): 조선시대 과거 시험 과목의 하나로, 국왕의 시정(時政) 질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술한 문서.* 내사본(內賜本): 관아에서 간행한 책 가운데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下賜)한 책.* 임술농민봉기(壬戌農民蜂起): 1862년(철종 13) 삼남 지방(경상&amp;#183;전라&amp;#183;충청도)을 중심으로 일어난 전국적인 농민 항쟁.* 질: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책의 한 벌을 세는 단위.* 주자대전(朱子大全):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 주희(朱熹, 1130~1200)의 문집.* 어정서(御定書): 조선 정조가 직접 내용을 선정&amp;#183;편집하거나 왕명으로 편찬하게 한 책.* 주자소: 조선시대 중앙에서 활자를 주조하고 책을 찍어 내던 관청.* 임진자(壬辰字): 조선 영조 48년(1772) 임진년에 만든 구리 활자. 참고문헌『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 탁 자 : 함양박씨 동원공파(박광모)입수일자 : 2020년 7월 10일소장품 번호: ycd4961, ycd6687, ycd6688 작 성 자: 학예연구원 김건일검 수 자: 학예연구사 이한일</description><pubDate>Fri, 15 May 2026 07:33:55 GMT</pubDat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