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문관' (2022.6)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2.06.27 10:27:08

[2022년 6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문 관>

 

[문과] 1507년(중종中宗2) 정묘丁卯 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 2위



출생과 과거 급제

 

문관의 자는 백옥伯玉,호는 죽계竹溪,본관은 감천甘泉이다. 그는 용궁면 덕계리 달계마을 출신으로 *문빈文彬(미상~1500)의 아들이다.1498년(연산군 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進仕가 되었고, 1507년(중종 2)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후 *승문원承文院에 종사하였다.


*『충재선조부군급제방목(冲齋先祖府君及第榜目)』, 권벌 종가 전적(權橃宗家典籍) 내의 급제 기록에는 부가 ‘문빈’이 아닌 ‘문걸(文傑)’로 나옴. 문걸은 개명임.

*승문원 : 조선시대 외교문서를 담당한 관청

 


예문관에서 사헌부까지, 높은 학식을 갖춘 청렴강직淸廉剛直한 관리


문관은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藝文館의 *검열檢閱과*봉교奉敎직을 역임하며 사관史官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외직으로 안음현관安陰縣監에 부임하여 전임 현감인 정여창鄭汝昌(1450~1504)처럼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전정후문前鄭後文’ 이라고 칭송되기도 했다.


1515년(중종 10년)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서 행정 실무를 맡아보았으며,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을 거쳐 *헌납獻納으로 제수되었다. 이듬해 검찰관檢察官직책으로 명나라에   파견 가는 사신들과 동행하여 국법으로 금하는 일을 검사 및 규찰하였으며, 이후 사헌부*장령掌令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검열 : 예문관의 정9품 관직. 승지와 더불어 왕의 측근에서 일하는 근시(近侍)로 지칭되며, 사실(史實)의 기록과 왕명의 대필 등을 맡아 사신(史臣)이라고도 함.

*봉교 : 예문관의 정7품 관직.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하는 사관(史官)으로 평소 사초(史草)를 기록해 두었다가 실록 편찬 시 납입하는 직책.

*오위도총부: 조선시대 오위의 군무를 맡아보던 최고 군사 기관.

*지평 : 조선시대 시정 논집(論執)·백관 규찰·풍속을 바로 잡고,원억(寃抑)을 풀어주는 일 등을 맡았던 사헌부 소속의 정5품 관직.

*헌납 : 조선시대 사간원 정5품 관직. 간관으로서 국왕에 대한 간쟁(諫諍)과 봉박(封駁)을 담당.

*장령: 조선시대 사헌부 정4품 관직.

 


기득권에 맞서 정국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다


문관은 헌납, 장령 등의 직책을 역임하며 왕에게 시정時政에 대한 건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중종의 정국공신靖國功臣에 대한 남발을 개정토록 요청하고, 죄인에게 형벌을 내릴 시 명확한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부정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 외에도 정승을 임명할 때 지켜야 할 사항, 노인법의 시행, 인사 행정의 신중, 왕의 정책을 교정하는 직책의 존중 등 정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언하였다.


중종은 문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장례비와 쌍괴雙槐라는 호를 내렸으며,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시詩로써 애도하였다. 무덤은 예천군 유천면수심리에 위치하며, 용궁면월오리 기천서원箕川書院에 제향하였다.

 

 

자료출처

『국조문과방목』

『중종실록』

『예천유학사』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유교넷』

 

작성자:학예연구원안수연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문화관광과예천박물관팀(☎ 054-650-8316)입니다.

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13쪽]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00221&p=13 입니다.

이 QR Code는 현재 보시는 <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13쪽]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