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2년 8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김주(金迬, 1606-1681)
[문과] 1633년(인조 11) 계유癸酉 증광시增廣試 생원生員 3등三等 7위
출생과 과거 급제
김주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여정汝定, 호는 불구당不求堂이다. 의금부도사 김극계의 아들로 예천 용문면 구계리에서 태어났다. 1628년(인조 6)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1639년(인조 17)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 *학관學官이 되었다.
*학관 : 조선시대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의 학업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던 관원.
성균관 유생을 대표하여 척화상소斥和上疏를 올리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발발하자 성균관 유생이었던 김주는 예천으로 내려와 의병을 일으켰다. 1638년(인조 16)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군사를 조선에 요청하자, 김주는 목숨을 걸고 성균관 유생을 대표하여 이를 거절할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후에 이 상소문 때문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과 함께 척화신斥和臣으로 청나라에 끌려가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성균관 유생의 상소문을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하여 가지않았다.
김주의 「척화상소」는 혼란의 시기에 명료한 이념을 철저히 실천한 유학자의 절개와 지조가 잘 나타나 있다.
“ 국가가 유지되고 다스려지는 까닭은 예로서 백성을 가르치고 천하를 밝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의라는 것은 3강 5륜의 윤리이니 항시 밝지 않게 되면 본분을 범하고 기강을 어지럽혀 사람의 도리가 없어지고 천지가 자리를 바꾸게 되니…(중략)… ”
-김주, 「척화상소斥和上疏」 중-
백성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 선정善政을 펼치다
김주는 내직內職으로 군자감 참봉,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병조와 형조의 좌랑과 정랑을 거치면서 성균관 *직강直講이 되었으며, 춘추관春秋館을 겸직하여 인조실록仁祖實錄을 편찬하는데 참여하였다. 외직外職으로 김천・무장・연안・양산과 충청도 도사를 역임하였다. 성실하고 근면하여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했으며,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어 무장・연안・양산 현감 시절에는 백성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워 칭송하였다.
이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오위장五衛將에 임명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게 독서를 즐기며 자손들을 가르치다 1681년(숙종 7)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불구당집不求堂集』이 있다.
*직강 :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을 가르치는 정5품 관직.
*통정대부 : 조선시대 문신 정3품 상위 관등의 품계명.
*오위장 : 조선시대 오위의 군사를 거느리던 으뜸 장수.
자료출처
『예천유학사』
『국조방목』
『인조실록』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작성자:학예연구원 안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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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