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박수서' (2022.11.)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2.11.21 10:00:20

[2022년 11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박수서 朴守緖(1567-1627)


[문과] 1609년(광해군 1) 기유己酉 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 2위

 

 

 

출생과 과거 급제

박수서의 자는 경승敬承, 호는 우계尤溪,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27년 *우승지를 역임하였다.


*사마시 : 조선시대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실시한 과거시험이다.
*우승지 : 승정원의 정3품 당상관으로 왕명의 출납과 육조의 업무를 맡았다.

 

 

 

 

강직剛直한 성품으로 불의不義에 맞서다.


박수서는 불의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절의節義를 지키던 곧은 성품의 인물이었다. 1613년 정조鄭造, 윤인尹訒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극렬하게 상소上疏하고 귀향하였다. 이후 성균관사예司藝등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절의節義를 지켰으며, 1618년 특명으로 *순무어사北道巡撫御使가 되어 민심을 수습하였다.

1621년 인목대비 유폐에 대한 비판의 시詩를 지은 것을 이이첨李爾瞻 무리의 고변告變에 의해 발각되어 *금부禁府에 하옥下獄되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났다.

 

*순무어사 : 조선 시대에, 지방에서 변란이나 재해가 일어났을 때 두루 돌아다니며 사건을 진정하던 특사.
*금부 : 조선 시대에,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중죄인을 신문하는 일을 맡아 하던 관아.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의 위기에 나라를 앞장서 지키다.


박수서는 왜란倭亂, 호란胡亂의 위기에서 나라를 위해 앞장섰던 인물이다. 1588년(선조 21)사마시에 합격한 이후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이  발발勃發하자 망우당忘憂堂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키며 항전하였다.

1627년(인조 5) 우승지右承旨였던 박수서는 호란胡亂이 일어나자 *대가大駕를 호위하여 *강화도江華島에 들어갔다가 난이 평정된 뒤 돌아와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영남사림嶺南士林의 발의發議로 *도고서원陶皐書院에 봉안되었다.


*대가 : 임금이 행차 때 타는 왕의 가마.
*도고서원 : 1824년 사림(士林)에 의해 창건된 서원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우곡리에 소재하고 있다.

 

 

 

선비의 청렴함과 애민정신이 엿보이는 『우계일고尤溪逸稿』


박수서의 청렴함과 애민정신이 엿보이는 시문집 『우계일고尤溪逸稿』는 2권1책의 목활자본으로, 1910년 9세손 박주대朴周大등이 간행하였다. 권1에는 연보, 시, 변문辨文, 상량문上樑文, 서書 , 책문策文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2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도학비변발道學碑辨跋 등이 수록되어있다.

시는 대부분 조정에 출사出仕하여 중신들과 창화唱和한 것인데, 의취意趣가 매우 굳세고 청절淸絶하며 담백하다. 「관서도학비변 關西道學碑辨」은 용만龍灣사람들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여 선정비善政碑를 세우자 이이첨李爾瞻의 죄상을 통박痛駁한 글이다. 책문은 인재 등용과 소인小人들의 농간을 근절하고 공정과 도리로 민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료출처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학예연구원 김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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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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