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3년 1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이유(李濰, 1669-1742)
[문과] 1702년(숙종肅宗 28)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7위
[생원] 1691년(숙종肅宗 17) 신미辛未 증광시增廣試 [생원] 3등三等 43위
출생 및 과거급제
이유의 자는 거원巨源, 호는 용포龍浦, 본관은 여주驪州, 거주지는 예천醴泉 용궁龍宮이다. 1691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1702년 승문원承文院을 시작으로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 통훈대부通訓大夫 등에 제수되어 약 30년간 관료 생활을 하였다.
충과 효를 고루 겸비한 관료
이유는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효자였는데, 1712년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으나 병중의 부친을 보살피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1722년 모친상을 마친 뒤에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1728년 임금의 부름으로 예조좌랑禮曹佐郞에 제수되었다. 병으로 힘든 시기였으나 ‘이인좌의 난’*으로 인한 국난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병을 무릅쓰고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올랐다. 그는 벼슬살이를 할 때도 집안일을 살피 듯 꼼꼼히 다스려 선정을 베풀었으며, 일곱 고을의 교양관敎養官을 겸하여 흉흉해진 민심을 다잡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유는 1742년 6월, 예법에 맞게 초상을 치르라는 유언을 남기고 7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묘는 상주 봉림산에 있다.
*이인좌의 난 :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 1695 ~ 1728)가 중심이 되어 정권에서 배제되었던 소론과 남인 일파가 경종의 죽음과 영조의 왕위 정통성을 문제 삼으며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일으킨 난.
잠자고 먹는 일을 잊을 정도로 학문을 수양하다
이유는 어려서 휴암休菴 전오복全五福의 문하에서 글을 익히고, 16세에 나은懶隱 이동표李東標 (1644∼1700)의 제자가 되어 그의 가르침을 「청창경람晴窓敬覽」으로 기록하였다. 1694년 성균관에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1625∼1707)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으며, 정주학程朱學 · 『심경心經』 · 『근사록近思錄』을 매일 같이 익혔다.
만년에는 『중용中庸』에 몰두하여 「용학차기庸學箚記」를 기록하였으며, 주자朱子의 『가례家禮』, 구준丘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 그리고 선대 유학자들의 예론禮論을 바탕으로 상장제례喪葬祭禮에 관한 저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유는 학문 수양에 전력으로 임하여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질문하였고, 마음에 터득한 바가 있으면 잠자고 먹는 일을 잊을 정도로 기뻐하였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그가 남긴 기록문과 시문을 엮은 『용포집龍浦集』이 전해져 온다.
자료출처
『유교넷(http://ugyo.net/)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신미2월증광사마방목(辛未二月增廣司馬榜目)』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작성자:학예연구원 안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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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