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이유' (2023.1)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3.01.31 11:02:22

[2023년 1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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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李濰, 1669-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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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1702년(숙종肅宗 28)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7위

[생원] 1691년(숙종肅宗 17) 신미辛未 증광시增廣試 [생원] 3등三等 43위

 

 

 

 

출생 및 과거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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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의 자는 거원巨源, 호는 용포龍浦, 본관은 여주驪州, 거주지는 예천醴泉 용궁龍宮이다. 1691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1702년 승문원承文院을 시작으로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 통훈대부通訓大夫 등에 제수되어 약 30년간 관료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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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과 효를 고루 겸비한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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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효자였는데, 1712년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으나 병중의 부친을 보살피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1722년 모친상을 마친 뒤에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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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728년 임금의 부름으로 예조좌랑禮曹佐郞에 제수되었다. 병으로 힘든 시기였으나 ‘이인좌의 난’*으로 인한 국난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병을 무릅쓰고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올랐다. 그는 벼슬살이를 할 때도 집안일을 살피 듯 꼼꼼히 다스려 선정을 베풀었으며, 일곱 고을의 교양관敎養官을 겸하여 흉흉해진 민심을 다잡는데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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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1742년 6월, 예법에 맞게 초상을 치르라는 유언을 남기고 7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묘는 상주 봉림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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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 :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 1695 ~ 1728)가 중심이 되어 정권에서 배제되었던 소론과 남인 일파가 경종의 죽음과 영조의 왕위 정통성을 문제 삼으며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일으킨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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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먹는 일을 잊을 정도로 학문을 수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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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어려서 휴암休菴 전오복全五福의 문하에서 글을 익히고, 16세에 나은懶隱 이동표李東標 (1644∼1700)의 제자가 되어 그의 가르침을 「청창경람晴窓敬覽」으로 기록하였다. 1694년 성균관에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1625∼1707)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으며, 정주학程朱學 · 『심경心經』 · 『근사록近思錄』을 매일 같이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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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는 『중용中庸』에 몰두하여 「용학차기庸學箚記」를 기록하였으며, 주자朱子의 『가례家禮』, 구준丘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 그리고 선대 유학자들의 예론禮論을 바탕으로 상장제례喪葬祭禮에 관한 저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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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학문 수양에 전력으로 임하여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질문하였고, 마음에 터득한 바가 있으면 잠자고 먹는 일을 잊을 정도로 기뻐하였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그가 남긴 기록문과 시문을 엮은 『용포집龍浦集』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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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유교넷(http://ugyo.net/)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신미2월증광사마방목(辛未二月增廣司馬榜目)』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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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학예연구원 안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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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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