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장진' (2023.2)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3.02.27 15:23:22

[2023년 2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장  진 張   瑱
(1635-1707)

 

[문과] 1665년(현종顯宗 6년) 을사乙巳 별시別試 병과丙科 5위


출생 및 과거급제

장진의 자는 군옥君玉, 호는 모암茅庵,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적개공신敵愾功臣* 장말손張末孫(1431~1486)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장원경張元慶,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1635년 예천군 원곡리(현:예천군 호명면 원곡리)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당숙인 국암菊巖 장유경張裕慶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세 때 마을 개울에서 만난 주봉柱峯 이래 李崍:1588~1649가 내어준 시운詩韻을 읊었는데, 이래는 장진의 시 속에서 청렴한 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장진은 1665년(현종 6)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승문원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적개공신 : 조선 세조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청렴하고 착한 심성으로 선정을 베풀다

장진은 1670년(현종11)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에 제수된 후 전적典籍‧병조兵曹‧정언正言‧영암군수 등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각지에 수령으로 부임하던 시절에는 청렴하고 착한 치적이 있어 가는 곳 마다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졌다고 한다. 1683년(숙종 9) 봉상시奉常寺·장악원掌樂院·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1684년 울산부사를 시작으로 다시 관직생활을 이어 갔으나 장악원정掌樂院正 이후 벼슬길에 더 나아가지 않았다.
장진은 예천 동송촌(현 예천군 개포면 동송리)으로 이거한 뒤 노주蘆洲 김태일金兌一(1637~1702) 등 지역 명사들과 교유하며 말년을 보냈다. 1707년 자식들에게 "청검신의 신묵겸공淸儉信義 愼黙謙恭"이란 글을 남기고 마음에 새길 것을 당부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묘는 용궁면 오복산에 있으며, 행장은 박주종朴周鍾(1813~1887), 묘갈명은 정종로鄭宗魯(1738~1816), 묘지명은 조덕린趙德隣(1658~1737)이 지었다. 문집으로는 『모암집茅庵集』이 전한다.


『모암집』 선비의 일상을 기록하다

장진은 어려서부터 시문 쓰기를 즐겨하였으며, 집안의 일상‧각종 재이‧시정 등을 일기로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러한 장진의 기록물은 『모암집』으로 전해지며, 이 문집은 19세기 후반 후손 장우진, 장규한 등이 유문을 모아 편차하여 목판본 4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자료출처
『유교넷』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숙종실록(肅宗實錄)』
『모암집(茅庵集)』
『예천군지』
『영주시사』

작성자 : 학예연구원 안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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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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