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3년 9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남천한 南天漢
1607~1686
출생과 과거급제
자는 장우, 호는 고암, 본관은 영양, 거주지는 예천 용궁이다. 증조부는 효자로 널리 알려진 남응원南應元(1539~1611)이고, 조부는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남융달南隆達(1565~1652)이며, 숙부는 울산부사‧충청도사에 임했던 남천택南天澤(1619~1684)이다.
아버지 남잡南磼과 어머니 송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630년(인조 8) 생원시로 진사 進仕가 되고, 1646년 식년시 병과로 문과 급제하였다.
치열한 붕당정치, 환국의 시대에 살다
1656년(효종7) 사헌부지평‧장령 등 감찰 및 간쟁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1663년(현종 4) 청도군수로 부임하였다. 그는 숙종의 신임을 얻어 1680년(숙종 10) 호조참의 직위까지 올랐으나 *경신환국으로 벼슬과 품계를 잃고 만다. 그는 예론에 밝아 남인의 입장으로 *민신대부복상문제閔愼代父服喪問題와 *예송논쟁에도 깊이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집 『신안세고新安世稿』 가 있으며, 사후에 그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예천 풍암서원에 배향되었다. 또한 1825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풍산 매곡리 봉암서원에도 그의 신위가 배향되었다.
*경신환국 : 1680년(숙종 6) 남인(南人) 일파가 정치적으로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사건.
*민신대부복상문제 : 조선 후기 현종·숙종대 상례(喪禮)를 둘러싸고 일어난 정치적 논쟁.
*예송논쟁 : 조선 후기 현종·숙종대에 걸쳐 효종과 효종비에 대한 조대비(趙大妃: 인조의 계비)의 복상기간(服喪期間)을 둘러싸고 일어난 서인과 남인간의 두 차례에 걸친 논쟁.
자료출처
『유교넷』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한국국학진응원』
『안동시사』(안동시사편찬위원회, 1999)
작성자:학예연구원 안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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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