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전홍교'(2024.03.)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4.03.19 17:45:18

[2024년 3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전홍교

全洪敎

(1835~1893)

 

출생 및 과거급제

본관은 용궁이고 자는 인오(仁吾), 호는 남파(南坡)이다. 지보면 만화리 만촌(晩村) 출신으로, 전지련(全智鍊)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기질이 남다르더니, 1870년(고종 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장에 뛰어난 전홍교

전홍교는 1871년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어 문장의 기록과 해석에 깊고 민첩하여 오래도록 머물더니 1872년 승문원박사가 되었다. 이후 봉상시직장에 임명되었고, 성균관전적으로 승진되고, 금오랑이 되었으며, 또 대시에 참여하였다. 1874년 사헌부지평에 오르고 1879년 사간원정원을 거쳐 이조정랑으로 옮겼는데, 내직 24개월이면 외직으로 나가야 하는 규정이 있어서 고종은 양산군수로 보내려 하였으나 반대하는 이가 있어 1880년 대동도찰방으로 나갔다. 전홍교는 1881년 사헌부감찰로 옮겼고, 1882년 다시 성균관전적, 감찰이 되었다가 사헌부장령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두고 만촌으로 돌아와 자연을 벗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인심이 두터운 전(全)네 집

전홍교는 마음이 너그럽고 동점심이 많아 기꺼이 이웃을 도왔으며, 지금도 지보면 일대에서는 ‘전(全) 대동네 집은 인심이 넉넉한 집’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대동네 집이란 말은 전홍교가 대동도찰방 벼슬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대간 벼슬을 하면서 사회의 부정부패와 싸우다 환멸을 느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와서 여생을 보낸 곧고 깨끗한 선비였다. 그는 만촌 마을 뒤 별묘에 제향되었다.

 

자료출처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유교넷』

『예천유학사』

 

 

작성자 : 학예연구원 이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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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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