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4년 4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문경동
文敬仝
(1457~1521)
[문과] 연산군(燕山君) 1년(1495) 을묘(乙卯)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6위
[생원] 성종(成宗) 17년(148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생원
[진사] 성종(成宗) 17년(148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자:흠지(欽之) 호:창계(滄溪) 본관:감천(甘泉) 거주지:예천(醴泉)
전력:생원(生員) 관직:도사(都事)
부:문속명(文續命) 조부:문손관(文孫貫) 증조부:문숙기(文淑器) 외조부:진유경(秦有經) 처부:황태손(黃兌孫)
출생 및 과거급제
문경동의 자는 흠지(欽之), 호는 창계(滄溪)이다. 본관은 감천(甘泉)이다. 아버지는 전연사(典涓司) 직장(直長) 문속명(文續命)이고, 어머니 풍기 진씨(豊基秦氏)는 강순부(江順府) 소윤(少尹) 진유경(秦有經)의 딸이다. 안동판관(安東判官) 문손관(文孫貫)의 손자이고,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처외조부이다. 그는 1486년(성종 17) 사마시에서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95년(연산군 1)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39세였다.
예천에서 군수를 지낸 문경동
문경동은 성균관의 벼슬을 거쳐 비안 현감(比安縣監) 강원도 도사(江原道都事)를 역임하였다. 종부시첨정으로 승진하여 춘추관편수관(編修官)을 겸임하고,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8년(중종 3) 외직으로 나가서 경상도 양산군수(梁山郡守)가 되었는데,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김현손(金賢孫)과 함께 왜적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내직으로 들어와서 성균관사성(司成)으로 진급하였다. 1512년 예천군수와 뒤에 1521년 청풍군수(淸風郡守)를 지냈지만, 그 해 여름에 고을 관아에서 갑자기 쓰러져 6월 29일 죽으니, 향년이 65세였다.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창계문집(滄溪文集)』
시문에 뛰어난 문경동의 시문집 『창계문집(滄溪文集)』이 전해져 온다. 이 문집은 문경동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63년에 간행하였다. 문집에는 자기의 뜻을 사물에 비유하여 술회한 것이 많다. 더불어 「술지부(述支賦)」는 포부를 성현의 학문에 두어 오랫동안 연구하여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출처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퇴계집(退溪集)』 卷46
「감시생원진사방【성종대왕17년병오】(監試生員進士榜【成宗大王十七年丙午】)」(『탁영선생연보(濯纓先生年譜)』 續下
참고
『조선왕조실록사전』
작성자 : 학예연구원 이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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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