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4년 6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독립운동가]
한일청
(1899~1960)
-예천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한일청은?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금동에서 출생하였다.
한일청의 활동
한일청은 1926년 6·10만세운동에 참가하여 태극기와 격문을 배포하였다가 체포되어 집행유예를 받았다. 1927년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집행위원이 되었고, ‘과학운동(科學運動)’의 발간에도 참여하면서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9년 4월 일본 동경(東京)으로 건너가 ‘조선운동(朝鮮運動)’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동년 5월경 귀국하여 고향 예천(醴泉)에서 석유상점 및 중앙일보(中央日報) 예천지국을 경영하였다. 이 해 제4차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0년 6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경북 예천에서 박호철(朴鎬哲)·김동필(金東弼) 등과 함께 비밀결사 예천적색농민조합(醴泉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여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11월 동지들과 함께 김기석(金己石)의 집에서 모여 앞의 결사를 해체하고 무명(無名)의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1934년 예천농업보습학교(醴泉農業補習學校) 동맹휴교를 지도하다가 동년 3월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1935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과 1936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36년 10월 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독립유공자 추서
대한민국 정부는 한일청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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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