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유물 ‘1704년 김이해 처 해남윤씨 분재기’(2024.06.)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4.06.18 17:10:41

<1704년 김이해 처 해남윤씨 분재기>는 김이해(金爾楷, 1645~1672)의 아내 해남윤씨가 자녀에 재산을 상속하기 위하여 작성한 상속문서이다. 김이해는 의성김씨(義城金氏) 불구당(不求堂) 김주(金迬, 1606~1681)의 둘째 아들로 해남윤씨(海南尹氏) 윤선술의 딸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김이해가 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이후 아들 또한 어린 나이로 사망하자 집안의 중론을 모아 김이해의 동생 김이표의 장남인 김백령을 양자로 들였다.

 

이 분재기는 1704년 10월 17일에 작성된 것으로, 해남윤씨는 양자인 김백령과 사위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그리고 제위조(祭位條)로 구분하여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딸이 아닌 사위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것은 딸이 혼인 후 얼마 되지 않아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사위인 이만부에게는 딸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몫으로 노비 5구와 전남 해남의 논을 상속하였다. 제위조로는 노비 2구와 전답을 상속하여 남편 김이해의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재산은 모두 양자인 김백령에게 주어 가통을 잇도록 하였다.

 

분재기의 작성에는 증인으로 남편의 친동생인 김이갑, 증보(證保)로 오촌 조카 김팽령이 참여하여 장래의 분쟁을 대비하였으며, 문서의 작성은 김이갑의 아들 김몽령이 담당하였다. 상속 내역 가운데 전라도 지역의 전답이 많은 것은 해남윤씨가 전남 해남 출신이기 때문이며, 이는 해남윤씨가 친정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 상당하였음을 보여준다.

 

분재기는 조선시대 상속문서를 가리키는 용어로 상속의 성격과 시기에 따라 화회문기(和會文記), 분급문기(分給文記), 깃부문기[衿付文記], 별급문기(別給文記), 허여문기(許與文記)로 나누어진다. 으레 상속 사유를 작성한 후 상속 내역을 구분하여 작성하고 마지막으로 증인과 필집(筆執, 문서 작성자)이 성명을 적고 서명을 한다.

 

우리나라 상속제도를 살펴보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중반까지는 남녀균분 상속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법적으로 강력하게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가계 경제가 붕괴되고, 제사를 받들 승중자(承重子)를 중시하는 관념이 강화되면서 장자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문화로 변화되었다. 예천박물관 소장유물인 <1704년 김이해 처 해남윤씨 분재기>는 조선 후기에 작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위에게 재산을 상속한 균분상속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기증자 : 박성호(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입수일자: 2023년 06월 21일

 

참고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작성자 : 학예연구원 김미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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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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