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4년 7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이제겸
李濟兼
(1683~1742)
[진사] 1714년 (숙종肅宗 40) 갑오(甲午)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1위
[문과] 1724년 (영조英祖 1)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4위
자 : 사원士遠·선경善慶 호 : 두릉杜陵 본관 : 진성眞城 거주지 : 예천醴泉
전력 : 유학幼學 관직 :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부: 이동표李東標 조부: 이운익李雲翼 증조부: 이지형李之馨 외조부: 권협權鋏 형: 이회겸李晦謙
출생 및 과거급제
이제겸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관리로,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고산리 출신이다. 그는 1714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4년 문과에 급제하며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동몽교관(童蒙敎官)과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거쳐 1727년에는 율봉도찰방(栗峯道察訪)에 올랐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굴곡진 삶
1728년 이인좌의 난 당시, 반란군의 위협 속에서도 이제겸은 사태를 상부에 보고하고 의병을 모으려 하는 등 의연히 대처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역마를 반란군에 제공했다는 강필신(姜必信,1687~1756)의 무고로 인해 유배형에 처해졌다. 1735년에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1741년이 되어서야 그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제겸은 유배 생활 이후 경상북도 봉화에 두릉정(杜陵亭)을 짓고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으며, 방담(方潭) 권강(權杠)과 같은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이제겸이 남긴 『두릉집(杜陵集)』이라는 문집은 그의 학문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이인좌의 난 : 1728년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탈취를 기도한 사건이다. 경종이 죽고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자 노론의 지위는 회복되었고 소론은 정권에서 배제되었다. 이에 이인좌를 포함한 소론은 경종사인에 대한 의혹제기 등의 명분으로 모반을 정당화하고 세력을 확보해나갔다. 본격적으로 이인좌가 1728년 청주성을 함락함으로써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론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조선왕조의 사회개편 방향은 노론정권의 의도대로 추진되어 나갔다.
자료 출처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갑오증광사마방목(甲午增廣司馬榜目)』
『을사성상즉위증광별시문무과방목(乙巳聖上卽位增廣別試文武科榜目)
『유교넷』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작성자 : 학예연구원 이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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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