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4년 8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박홍린
朴洪鱗
1482~1555
[문과] 중종(中宗) 17년(1522)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6위
자:자운(子雲) 본관:함양(咸陽) 거주지:함창(咸昌)
전력:진사(進士) 관직: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부:박눌(朴訥) 조부:박소종(朴紹宗) 증조부:박이경(朴而敬) 외조부:김계행(金係行) 형:박거린(朴巨鱗) 형:박형린(朴亨鱗) 제:박붕린(朴鵬麟) 제:박종린(朴從麟)
출생 및 과거급제
박홍린은 박눌(朴訥)의 셋째 아들로, 자는 자운(子雲), 호는 용암(龍庵),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능천리 능내(能內) 마을 사람이다. 그는 1510년(중종 5)에 진사가 되었고, 1522년(중종 1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檢閱)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그의 관직 생활: 영광과 시련
박홍린(朴弘麟)은 조선 전기의 관료로, 집의(執義), 우부승지(右副承旨),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한 후, 대사간(大司諫), 도승지(都承旨), 대사헌(大司憲), 공조참판(工曹參判), 예조참판(禮曹參判)까지 올랐다. 그의 급속한 승진은 반대 세력의 시기와 질투를 야기하였다.
1537년(중종 32) 10월, 문정왕후 폐위기도 사건으로 김안로가 유배되었고, 곧 사사(賜死)되었다. 김안로와 인척인 박홍린 또한 이 사건에 연루되어 같은 해 11월 관직이 삭탈되고 한성 외부로 추방되었다. 이어 1538년(중종 33) 3월, "나쁜 모임을 만들어 악한 짓을 했다."라는 죄목이 추가되어 전라남도 고흥군 흥양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중종의 박홍린에 대한 신임은 지속되어, 박홍린의 연고지 인근으로의 유배지 이전 요청을 수락하였다. 이에 대해 1541년(중종 36) 5월 18일, 반대 세력은 "박홍린의 유배지 이전 명령이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고 상주(上奏)하여 국왕의 결정을 번복시켰다. 후에 박홍린은 유배에서 풀려나 예천으로 이주하였다. 그의 부인이 용문면 성현리 중마 출신 권갑손(權甲孫)의 딸이었기에, 처가와 근접한 용문면 능천리 능내에서 여생을 보냈다.
자료 출처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정덕5년경오2월25일사마방목(正德五年庚午二月二十五日司馬榜目)』
『함양박씨세보(咸陽朴氏世譜)』
유교넷
작성자 : 학예연구원 이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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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