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민족을 사랑한 국문학자, 조윤제 (趙潤濟, 1904~1976)
작성자예천박물관 @ 2017.09.11 17:43:57

 

국문학자 조윤제(趙潤濟, 1904~1976)는 경상북도 예천 출생으로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도남(陶南)이다. 19243월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豫科)가 창설되자 제1회생으로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어 1926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문학과에 진학하여 조선어문학을 전공하는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19293월에 동() 학부 졸업, 문학사의 학위를 얻게 된다. 이어 동 학부의 촉탁(囑託조수를 거쳐 19323월 경성사범학교 교유(敎諭)로 임명되었으며, 그 해 4월 그의 첫 저서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을 쓰기 시작하였다.

 

19393월 경성사범학교를 사임하고, 당시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장이던 손진태(孫晉泰), 대학 후배 이인영(李仁榮)과 모여 학문 연구방법론을 토론하고, 그 결과로 민족사관의 입장을 밝혔다. 그 뒤 경신학교·양정중학교·동성상업학교·천주교신학교 등의 강사를 역임하게 된다. 19458월 조국광복과 함께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건의 책임을 맡았으며, 이어 동() 대학의 법문학부장, 개편된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부원장, 문리과대학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고, 다시 성균관대학교 교수, 대학원장 및 부총장을 역임한 뒤 청구대학·영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가 71, 19742월 영남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다.

 

그의 저서로 일제하에서 자비로 출간한 조선시가사강(1937)을 시작으로 교주 춘향전(校註春香傳)(1939)·조선시가(朝鮮詩歌)의 연구(1948)·국문학사(國文學史)(1949)·국문학개설(國文學槪說)(1955)·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1963) 20여권에 이른다. 논문으로는 19292동아일보에 발표한 조선문학과 한문학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50여 편, 수필·잡문 등은 거의 100편에 이를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조선시가사강은 한국 시가사(詩歌史)에 관한 최초의 저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시가사를 발생시대(發生時代), 향가시대(鄕歌時代), 시가의 한역시대(韓譯時代), 구악(舊樂) 청산시대(清算時代), 가사 송영시대(歌詞誦詠時代), 시조 문학발휘시대, 시가찬집(撰集) 시대, 창곡(唱曲) 왕성시대로 나누어 각 시대의 개관·양식·작품에 대하여 논술하였다. 손진태(孫晋泰)의 발문과 색인이 첨부되어 있다. 국문학사도 국문학의 형성과 발전을 우리 민족의 형성 발전과의 관련하에서 체계 있게 서술한 역작으로, 한국문학사는 그 개정판이다. 국문학개설은 국문학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분석과 고찰을 시도한 저서로 국문학개론류의 효시이다.

 

이들 저서와 논문들은 모두가 이른바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서술된 것들로, 일제하 황무지였다고도 할 국문학 연구에 있어 개척자적 역할을 하였다. 이어서 광복 후에는 국문학 연구의 출발점을 이루었다. 또한, 그가 민족사관에 입각하고 있었다 하나 그의 학문이 독존적·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세계화적 일반 보편성을 추구하는 정정당당한 자세였음은 주목할 부분이다. 민족을 사랑한 그의 태도는 저술에서뿐만 아니라, 대학강단과 사회생활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났으며, 그 과단성·청렴성과 학구적 양심은 옛 선비의 풍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대인의 풍을 갖춘 학자라는 평을 가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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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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