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효행으로 살고, 자연으로 누리다, 반충 (潘沖, 1508~1584)
작성자예천박물관 @ 2017.12.05 15:46:19

반충은 조용과 윤상에 이어 대사성 자리를 20년 동안이나 지킨 유생들의 큰 스승 나암 이문흥의 사위이자,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보필하여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해내는데 앞장 선 정탁의 장인이다. 호는 관물당(觀物堂)이다.

 

반충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지극 정성을 섬겼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3년간 어머니의 묘를 지켰다. 반충은 서자이기 때문에 부모 제사를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없었지만, 초하루 보름으로 사당에 참배 할 때는 제물을 반드시 정결하게 차리고, ‘서자이기에 제사를 차릴 수 없다는 예속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끼니는 오직 죽으로만 때웠고 아침저녁 올리는 제물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정성스럽게 준비하였다. 또한 중종, 인종, 명종 세 임금이 승하했을 때와 문정왕후가 돌아갔을 때에도 삼년 동안 음식을 가리고 행동을 삼가 해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대대로 산 예천에서 용궁으로 장가들고 난 뒤, 용궁을 사랑하여 그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집 동남쪽에 따로 집 한 채를 지어 동산을 등지고 정면에는 연못을 만들었다. 곧은 담과 굽은 언덕에 대나무와 매화나무 연과 국화 같은 꽃을 심고는 집 이름을 관물당이라 지었다. 현재 관물당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65호로 지정되어있다.

 

고을 원이 마을과 이웃에서 그의 올바른 행실을 적은 글을 조정에 올렸다. 조정에서 벼슬을 내려 상을 내리려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77세를 살았고 아들은 습독관 수남이다. 효종 때인 1651년에 정문이 내려지고, 1704년 충효각을 세웠다. 반충이 돌아가자 사위인 정탁이 당대 최고 문장가 최립에서 비문을 부탁했다. 특히 최립은 차천로의 시, 최립의 문장, 석봉의 글씨를 일러 개성의 문예삼절이라 불릴 정도로 문장에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반충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어버이께 효성을 다하였으나

남에게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고,

세상에 뜻을 두었으나

굳이 뜻을 펼치려고도 하지 않았도다.

만물을 살펴 무엇을 좋아 했던고

즐기면서 늙었다네.

내가 공의 비명을 쓰면서

옛 어진 어른의 도리를 터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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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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