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5년 9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정유지(鄭維地)
예천, 1601~1682
[문과] 인조(仁祖) 20년(1642)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3위
[생원] 인조(仁祖) 11년(1633) 계유(癸酉) 증광시(增廣試) [생원] 3등(三等) 59위
자:중후(重侯) 호:치암(稚岩) 본관:동래(東萊) 거주지: 예천
전력:유학(幼學) 전력:생원(生員) 관직:현감(縣監)
부:정서(鄭恕) 조부:정윤소(鄭允韶) 증조부:정면(鄭綿) 처부:이광원(李光遠)
형:정유번(鄭維藩) 형:정유한(鄭維翰) 형:정유성(鄭維城) 제:정유해(鄭維垓)
정유지의 출생과 가계
정유지의 자는 중후, 호는 치암이고 본관은 동래이다. 할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정윤소이다. 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정서(鄭恕)이다. 자신의 집 가까운 곳에 냇물이 고여 못을 이루고 그 가운데에 치암이라는 바위가 솟은 경승지가 있었는데, 그 경관을 좋아하여 호를 치암으로 했다고 전해진다.
정유지의 관직 생활
1633년(인조 11) 증광시로 생원이 되고 성균관에서 학문을 닦았다. 이후 1642년(인조 20)에 식년 문과를 거쳐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었다. 이후 보안도(保安道)* 찰방(察訪),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예안현감(禮安縣監)을 역임했다. 1663년(현종 4)에 예조좌랑(禮曹佐郞)이 되었다.
정유지가 남긴 『치암집(稚巖集)』
정유지의 저서로는 『치암집』이 있다. 이는 정유지의 후손들이 엮은 문집이다. 『치암집』 발문에 따르면 정유지의 아들이 일찍 죽어 전해지는 원고가 적었다고 한다. 권 1에는 시와 만사(輓詞)*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숙종의 공덕을 기리는 「성주송(聖主頌)」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던 숙종의 공덕을 기리어 말하는 소리가 바다와같이 한없이 넓음을 고대 중국의 요임금과 순임금에게 견주어 칭송한다는 내용이다. 권 2에는 글·서(序)·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 3에는 부록으로 친우들의 만사·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종사랑: 조선시대 문신 정9품의 품계명.
*승사랑: 조선시대 종8품 문신의 품계명.
*승문원 정자: 조선시대 사대교린(事大交隣)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인 승문원의 정9품.
*보안도: 조선시대 강원도 춘천의 보안역(保安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
*성균관전적: 조선시대 유학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정6품.
*만사: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 또는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 주검을 산소로 옮길 때에 상여 뒤에 들고 따라간다.
참고 자료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계유증광사마방목(癸酉增廣司馬榜目)』
『동래정씨참봉공파보(東萊鄭氏參奉公派譜)』
『숭정15년임오식년 문과방목(崇禎十五年壬午式年文科榜目)』, 『연계방(蓮桂榜)』
『예천군지』
스토리테마파크(https://story.ugyo.net/front/index.do)
우리역사넷(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
유교넷(https://www.ugyo.net/)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작성자: 학예연구원 최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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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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