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유물 '1955년 용궁향교 향안록'(2025. 10.)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5.10.13 13:51:11

[2025년 예천박물관 10월 이달의 유물]

1955년 용궁향교 향안록(1955年 龍宮鄕校 鄕案錄)

 

1955년 7월에 작성된 예천지역의 용궁향교 향안록(鄕案錄)으로 1책의 필사본이다. 향안은 조선시대 향촌 사회 지배층인 재지사족(在地士族) 중 입록이 허락된 향원(鄕員)의 명부를 말한다. 책의 구성은 서문, 본문, 발문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공자 이천오백칠년 병신년 3월(孔子二千五百七年丙申年三月)’이라는 기록을 통하여 1956년에 명암(明庵) 정휘옥(鄭輝玊, 1896~1978)이 작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발문은 당시에 전교(典校)로 있었던 고부림(高富林)이 썼다. 본문에는 축산 전씨(竺山全氏)를 필두로 하여 총 63개의 성씨, 109개의 문중이 세거지와 함께 기록되었다. 축산은 용궁의 옛 지명이다. 각 문중의 머리글자에는 전서체로 된 용궁향교 인장(印章)이 찍혀 있다.

 

향안은 지방에서 세족(世族)을 변별하고 향촌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미로 작성된 것이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재지사족이 관직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향안은 세족을 구별해 주는 명부 구실을 하였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서얼들의 향안 입록이 허용되면서 세족을 구분하는 변별성을 상실하자 더 이상 작성하지 않되 버리지 않고 내버려 두거나, 존속하더라도 이전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서얼들이 향안에 입록된 것은 새로운 계층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족의 향촌 지배 질서가 붕괴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1895년 근대적인 지방제도 개혁 때 향청이 폐지되면서 향청 소관 문서들이 향교로 이관되었고 이로 인하여 향안은 향교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향안 중심의 향촌 사회 질서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때도 향안이 기계적으로 작성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향안이 여전히 각 향촌 사회에서 그 지역의 사족임을 증명하는 준거(準據)가 되었기 때문이다. 『1955년 용궁향교 향안록』은 이러한 유림의 노력이 현대까지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위키실록사전(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입수처: 용궁향교

입수일자: 2022년 4월 8일

소장품 번호: ycd7139

 

 

작성자: 학예연구원 권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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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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