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6년 9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강복선(姜復先, 1608~미상)
예천 용궁 출신으로 양산군수와 향접위관을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문신.
· 본관: 진주(晉州) · 자(字): 효초(孝初) · 호(號): 고송(孤松)
|강복선의 인물 개요
예천 용궁 출신으로 당대 학자인 하음(河陰) 신즙(申楫, 1580~1639)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평소 학문에 힘쓰고 뜻을 독실히 하였으며, 문과 급제 후 진산과 양산 등지의 군수*를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고, 향접위관*으로 외교 임무도 수행하였다.
|강복선의 가문
강복선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인 통정(通亭)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이다. 증조부 강응청(姜應淸), 조부 강립(姜雴), 부친 강여벌(姜汝𦪑)로 이어지는 가문에서 성장하였으며, 형제로는 강상선(姜象先)이 있다.
|강복선의 과거 급제 기록
[문과] 인조(仁祖) 24년(1646) 병술(丙戌)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 을과(乙科) 6위
|강복선의 관직 생활 및 행적
강복선은 유학(幼學)으로 문과 급제 후 진산과 양산 등지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특히 1666년(현종 7) 3월, 양산군수 재임 중에는 향접위관으로 임명되어 표류 왜인을 송환한 것에 대해 사례를 하러 온 차왜(差倭) 고바야시 간에몬(小林勘右衛門) 일행을 접대하였다. 당시 연향을 담당하던 울산군수 남천택이 불미스러운 일로 수감되자, 강복선이 별연(別宴)을 비롯한 이후의 연향을 대신 주관하였다.
재임 중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펼쳤으며, 자신의 안위나 이익은 돌보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에 백성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벼랑의 바위를 갈아 유애비(遺愛碑)를 새겼다.
* 군수(郡守): 조선시대 문관 종4품 외관직으로 중앙 정부에 공물과 부역 등을 조달하고 군(郡)의 행정을 담당한 수령.
* 향접위관(鄕接慰官): 쓰시마에서 파견한 소차왜(小差倭)와 재판왜(裁判倭)를 접대하기 위해 경상도 관찰사가 도내의 문관(文官) 수령 중에서 파견한 관리.
*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방목(國朝榜目) 권10』.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국조방목(國朝榜目) 권4』.
권경열·최연숙 역, 『축산승람』, 한국국학진흥원, 2018.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과거급제자 (https://kdp.aks.ac.kr/people).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 (https://waks.aks.ac.kr/rsh/?rshID=AKS-2012-EBZ-2101).
작성자: 학예연구원 이한별 / 검수자: 학예연구사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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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