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김영렬의 좌명공신교서
회맹록
■ 김영렬좌명공신교서및회맹록(金英烈佐命功臣敎書및會盟錄)
|Royal Certificate of Meritorious Subject Issued to Kim Yeong-ryeol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5호|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l property No. 305
■ 조선| Joseon Dynasty|1401
■ 1. 교서- 세로 41㎝, 가로 87.5㎝ [상자 세로 54.5㎝, 가로 14㎝, 높이 6.5㎝]
2. 회맹록- 세로 50.5㎝, 가로 358.5㎝ [상자 세로 54.5㎝, 가로 14㎝, 높이 6.5㎝]
이 유물은 태종이 왕위에 오를 때 공을 세운 46명을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책봉한 후, 김영렬에게 내린 공신교서(功臣敎書)와 태종이 개국(開國)·정사(定社)·좌명(佐命) 3공신 66명과 회맹하여 하늘에 맹세한 후 각각 수결(手決)하여 작성한 회맹록(會盟錄)이다.
김영렬(金英烈, 1370~1421)은 조선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이 있어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으로 책봉되었으며, 예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배향 되었다.
공신교서란 공이 있는 신하를 국왕이 공신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서로, 공신교서에는 추충순의좌명공신(推忠徇義佐命功臣) 가정대부지삼군부사(嘉靖大夫知三軍府事) 의성군(義城君) 김영렬(金英烈)에게 양전 80결, 노비 8구, 백은 25양, 표리 1단, 내구마 1필, 품대 1요 등을 상으로 하사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김영렬이 좌명공신 3등에 책봉될 때는 공신교서와 공신도감에서 발급한 녹권이 함께 있었으나 현재 공신교서만 남아 있다. 이 공신교서는 조선 후기 후손들이 다른 좌명공신 후손가에 전하고 있던 좌명공신녹권을 바탕으로 권축 형태의 공신녹권을 제작하였고, 최종적으로 중앙관서를 통해 ‘시명지보(施命之寶)’를 날인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영렬의 좌명공신교서와 회맹록은 국가에서 발급한 공문서로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으며, 현재 의성김씨 맹암문중(孟巖門中)에서 소장하고 있다.
- 출처 :
•『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박성호, 「조선초기 좌명공신 김영렬 공신문서에 대한 고찰」, 『고문서연구』50, 한국고문서학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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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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