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유물 '정탁초상'(2019.07)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0.09.16 14:21:27

                            

■ 정탁초상 (鄭琢肖像)

|Portrait of Jeong Tak

■ 보물 제487호|Treasure No.487

■ 조선|Joseon Dynasty|1604

■ 가로 89㎝, 세로 167㎝

정탁초상(鄭琢肖像)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약포 정탁 선생의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89㎝, 세로 167㎝이다.

정탁은 1526년(중종 21)에 출생하여 1558년 문과에 급제, 5조판서와 좌·우의정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동궁을 호종하였으며, 옥중의 이순신이 죄가 없음을 아뢰어 구원하는 등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603년에는 영중추부사에 오르고, 이듬해 1604년에는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 정탁초상은 바로 호성공신책록을 기념하여 1604년에 선조의 왕명으로 그려진 공신상(功臣像)이다.

이 초상화는 오른쪽을 바라보는 칠분면(七分面; 초상화에서 얼굴이나 전신의 정면을 약 십 분의 칠 정도 보이게 그린 것)에 직무를 볼 때 쓰는 관모인 오사모(烏紗帽), 자주색 비단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全身坐像]이다. 관복은 쌍공작문양의 흉배(胸背)가 부착되어 있으며 서대(犀帶)를 둘렀는데, 이것은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정탁의 품계가 정1품이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와 발 받침대 위에 한껏 벌린 양발의 놓임새, 바닥에 깔린 화려한 색감과 문양의 채전(彩氈; 카펫)은 조선 중기 공신상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얼굴 표현은 갈색 선으로 이목구비 및 주름선을 묘사한 뒤, 음영을 약간 주었다. 경사(經史)는 물론 천문, 지리, 상수, 병가(兵家)에 이르기까지 정통했던 정탁의 면모가 매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의 표현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정탁초상에는 “연중에 우연히 듣고 남긴 화상 가져다 보았네. 그 화상 의젓했으니 선조 때의 명상이다. 백 년이 지나 궁궐에 들어왔네. 특별히 명을 지어 영남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네(筵中偶聞, 取覽遺像. 厥相偉然, 穆廟名相. 百年之後, 入于楓宸. 特題其銘, 以聳嶺人)”라는 어제화상찬(御製畵像贊)이 적혀 있다. 이것은 1756년(영조 32) 9월 초6일에 영조대왕이 친히 초상화 찬문을 짓고, 당시 승지로 입시해 있던 정옥(鄭玉)에게 명하여 정옥이 이를 받들어 적어 놓은 것이다. 이 사실은 『영조실록』(88권, 32년 9월 경오조)에도 “고 상신 정탁의 화상에 대한 찬을 친히 지어 정탁의 5대손 정옥에게 내렸다. 이때 정옥이 승지로 입시했기 때문이었다(親製故相鄭琢畵像贊, 賜琢五代孫玉. 時以承旨入侍也)”라고 기재되어 있다.

- 출처 : 『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영문용어용례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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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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