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 박태원 (朴泰元, 1890~1924)
- 훈 격 : 대통령표창(1995)
- 운동계열 : 3·1운동
- 출 신 지 :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335번지
박태원(朴泰元)은 1919년 4월 2일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수백 명의 군중을 주도하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곳의 만세운동은 권석인(權錫寅)이 고종황제 인산일(因山日·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서울의 3·1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독립 선언서 1매를 구하여 귀향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이에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하던 박태원은 권석인·권석호(權錫虎)·권석효(權錫孝)·변용구(邊用九) 등과 함께 예천읍 장날인 3월 12일에 거사를 단행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독립선언서를 등사¹
하여 각 동리에 배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군중 규합을 서둘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삼엄한 경계망으로 인해 거사를 17일로 연기하였고, 일경의 감시로 중지되었다.
그래서 계획을 변경하여 예천읍이 아닌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4월 3일 밤에 만세 시위를 단행하였다. 박태원은 백여 명의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횃불을 앞세우고 면사무소와 동리 각처에서 시위를 전개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른 후 악형의 여독으로 1924년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형사사건부(대구지검 안동지청, 1919.04.08.)
-예천군지(예천군, 2005) 226면
-문화유적총람(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경상북도편 374면
-경상북도사(경상북도사편찬위원회, 1983) 중권 326면
-예천의 독립운동사(예천문화원, 2010) 177, 178면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국사편찬위원회)
사진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 일본외무성기록
1) 예천군지(예천군, 2005) 226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것이 그 당시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곡동의 박태원은 지적 및 토지측량 관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경필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권석인이 이 일을 위해 박태원을 먼저 찾게 되었고, 박태원은 등사기를 가지고 자기 집 아래채 헛간에서 몰래 선언서를 등사하였다고 한다(박태원의 손자 박노한 씨〔영주 휴천리 거주, 64세〕의 2004년 1월 12일 증언).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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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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