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 박호준 (朴祜寯, 1920~2007)
- 훈 격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운동계열 : 학생운동
- 출 신 지 :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679번지
박호준(朴祜寯)은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인 1940년 11월 30일에 비밀 결사 문예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문예부는 민족문화 존중과 항일의식의 고양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로서 부원의 비밀 엄수 및 매주 토요일 작품 감상, 비판 등의 운동방침을 정하고 1940년 11월 말부터 1941년 3월 9일까지 약 9회의 모임을 가졌다.
상급생(8회)이 졸업한 후에 박호준은 권쾌복(權快福)·유흥수(柳興洙)·이주호(李柱鎬) 등 15명과 함께 동지들을 규합하고 조직을 확대하였다. 대구시 대봉정(大鳳町) 소재의 유흥수와 이주호의 하숙집에 모여, 문예부 및 동교의 다른 비밀 결사인 연구회의 한일 정신을 계승하여 조직을 확대·개편한 항일결사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였다.
대구 지역의 다른 학교 학생들은 물론 일반 사회인까지 포섭대상으로 삼았으며, 조직으로는 당수(권쾌복), 부당수(배학보) 아래 총무·학술·문예·연구·경기부 등 각 부서를 두었다. 박호준은 경기부원의 일을 맡아 활약하면서 동지들과 함께 민족 차별교육 반대와 항일 의식 고취 등에 앞장섰다.
1941년 8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본 경찰의 손에 들어가면서 비밀결사 조직도 드러나 결국 관련자 전원이 체포되었다.
박호준도 이때 체포되어 2년간 미결 상태로 잔혹한 고문을 받다가 1943년 1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출처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 예천의 독립운동사(예천문화원, 2010) 361, 362면
- 공훈전자사료관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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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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