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 이규홍 (李圭洪, 1851~1918)
- 훈 격 : 건국포장(1995)
- 운동계열 : 의병항쟁
- 출 신 지 : 예천군 용궁면 월오리 206번지
1895년 말부터 1896년에 예천의병, 안동의병 및 문경의 운강(雲岡) 이강년(李康秊)이 의병진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단발령으로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이 자신의 머리를 깎고 백성들의 머리를 강제로 깎으며 친일행위를 하였는데, 이규홍은 이강년 의병진이 그를 잡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사람을 의병진에 보내 계책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1905년 2월 안동의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서울의 심연(心淵) 김현준(金顯峻), 거창의 은표(隱豹) 차성충, 영춘의 백우(白愚) 김상태(金尙泰) 등과 뭉쳐 의병활동을 모의하였다.
그해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이 강요되자 김심연·차성충이 김천(金泉)에서 의병활동을 모의하였을 때 큰 아들 이지선(李芝璇)을 보내 도왔다. 그 후 이지선을 이강년 의병진에 보내 활동하게 하였다.
1907년 7월 19일 정미의병인 고종의 강제 퇴위와 7월 31일 한국 군대의 해산으로 의병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려할 때 이강년, 이상룡, 차성충을 방문하여 의병활동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1908년 이상룡이 군자금을 요청하자 아들 지선과 사위 이세형(李世衡)을 통해 거창의 차성충에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차성충에게 가조산(加祚山)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병기를 구입하게 하니, 1909년 의병 수백 명을 규합하여 순흥(順興)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강년의 순국 후 차성충이 의병장이 되고 김상태(金尙泰)가 중군(中軍)이 되어 풍기·순흥·영주 등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을 공격하여 전과를 올렸으나, 1909년 5월 차성충이 순국하면서 의병진은 해산되고 말았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에도 만주로 망명한 이상룡은 1913년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그의 아들 문극(文極) 이준형(李濬衡)을 이규홍에게 파견하였다. 이에 그는 이준형을 만나 국외와 국내 민족운동 세력의 연합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석주 유고』
『세심헌집』
『이규홍의 친필기년』
『공훈전자사료관』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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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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