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정윤목'(2020.06)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0.09.16 14:34:23


 

 

 

정윤목(鄭允穆, 1571~1629)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窻居士). 아버지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정탁(鄭琢)이며, 어머니는 거제반씨(巨濟潘氏)로 반충(潘冲)의 딸이다. 일찍이 가정에서 교육을 받다가 한강(寒岡) 정구(鄭逑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세 전에 경사자집(經史子集)의 많은 서책을 읽었고, 시문에 뛰어나 일가의 체격을 이루었다. 필법이 신묘(神妙)하여 일찍이 이국창(李菊窓)의 당벽(堂壁)에 시 두 구절을 초서로 써붙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그 곳에 진()을 치다가 글씨를 보고 경탄하며 뜰에 내려가 절하고 떠났다고 한다.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아버지를 배행(陪行; 윗사람을 모시고 따라감)하였고, 임진왜란 중에는 분조(分朝)1로 아버지를 찾아가 모셨으니, 아버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아들이다. 초서(草書; 서체의 하나)에 능하였으니, 약포의 저술 용사일기(龍蛇日記)에 초서로 쓰인 부분이 그의 글씨이다. 그의 필적을 약포 역시 자랑스럽게 여겨 자신이 지은 글을 아들의 필적으로 정사하도록 하였다. 약포는 아버지의 기대를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어지러운 세상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나. 오직 믿는 사람은 너뿐이다. 너는 뜻이 멀고도 커서 눈앞의 잎에 집착하지 않으니 내 마음에 조금 위안이 된다.”

  1616(광해군 8)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에 취임하였지만, 광해군의 실정에 실망하여 사직하였다. 삼강리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시와 글씨로 여생을 보냈으며, 삼강강당에는 지금도 그가 중국의 수양사首陽祠에서 모사해온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큰 글씨가 걸려 있다. 1786(정조 10)부터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청풍자문집(淸風子文集)이 있다.

 

-출 처-

청풍자문집(淸風子文集)

김낙진, 어질고도 청빈한 마음이 이어진 집, 예천 약포 정탁 종가, 예문서원, 2013

 

-사진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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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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