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임춘'(2020.07)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0.09.16 14:35:44

 

 

 

임춘(林椿, 생몰년 미상)

 

임춘은 예천 임씨(醴泉林氏)의 시조로,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이다.

 

고려 건국공신의 후예로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할아버지 임중간(林仲幹), 상서(尙書)를 지낸 아버지 임광비(林光庇), 한림원학사를 지낸 큰아버지 임종비(林宗庇) 등 그의 집안은 고려전기의 명망있는 집안이었다.

 

임춘이 태어나고 죽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무신정변(武臣政變)이 일어난 의종(毅宗, 1146~1170) 초에 태어나서 무신집권기였던 명종(明宗, 1170~1197)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춘은 무신정변 이전부터 상당한 명성을 얻었고,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 세 번의 과거시험에 응시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십대에 문음(門蔭; 조상(祖上)의 음덕(陰德), 또는 그 덕으로 벼슬하는 것)으로 관직에 등용될 수 있었지만,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거절했다.

 

무신정변이 일어나 온 집안이 화를 당하게 되자, 목숨을 부지하고자 먼 시골로 도피하여 빈곤과 유랑의 삶을 이어나갔다. 그는 문반에 대한 탄압을 피해 개경으로 갔지만, 가진 것이 없어 5년간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김보당(金甫當, ?~1173)이 난을 일으켜, 홀몸으로 개경을 벗어나 영남지방으로 피신하였다. 영남지방에서 7년간의 떠돌이생활을 마치고 개경으로 돌아왔을 때, 공음전(功蔭田; 고려시대에 공신과 오품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공을 따져 지급하던 토지)까지 병사들에게 빼앗기고 병든 아내와 과부가 된 누이만이 남아있었다. 힘든 생활 중에서도 과거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의와 빈곤 속에 방황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임춘은 젊어서 학문과 문학으로 명성이 높았고, 남다른 자부심과 기상을 지녔지만 문신 수난의 시대상황에서 참담하게 살아가다 요절하였다. 와도헌(臥陶軒) 이인로(李仁老, 1152 ~ 1220), 복양(濮陽) 오세재(吳世才, 1133~?), 조통(趙通, 생몰년 미상), 황보항(皇甫抗, 생몰년 미상), 함순(咸淳, 생몰년 미상), 이담지(李湛之, 생몰년 미상)와 함께 강좌칠현(江左七賢)1이라 불렸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가전체소설인 국순전(麴醇傳)· 공방전(孔方傳)이 있으며, 문집인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은 이인로에 의하여 6권으로 편찬되었다.

 

임춘은 예천의 옥천정사(玉川精舍)에 제향되었다.

 

-출 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김진영·안영훈 譯註(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서하선생임춘시집(西河先生林椿詩集), 민속원, 1998

진성규 譯註, 서하집(西河集), 대진사, 1999

여운필, 임춘의 생애에 대한 재검토, 韓國漢詩硏究, 1996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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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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