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 조보양(趙普陽, 1709 ~ 1788)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인경(仁卿), 호는 팔우헌(八友軒)이다. 증조부는 조명한(趙鳴漢), 할아버지는 조봉징(趙鳳徵),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조원익(趙元益),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조보양은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둔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소은(小隱) 이경익(李景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등 성리서에 정통하였다. 그리고 당시 학자로 명성이 높던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문하에서 사서육경(四書六經)1 , 상수학(象數學) 등을 배울 때 크게 인정받았다.
1747년(영조 23) 소과(小科)인 생원(生員)과 진사(進士), 양시(兩試; 생원시와 진사시에 동시 합격)에 합격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다. 이후 예조좌랑(禮曺佐郞)이 되었으나 정후겸(鄭厚謙)이 예조참판(禮曺參判)이 되어 부임할 때 마중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을 매질하자 벼슬을 버리고 예천으로 돌아왔다. 귀향 후 현재의 감천면 돈산리에 천곡서당(泉谷書堂)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고, 어버이를 효성으로 모셨다.
1781년(정조 5) 3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제수(除授; 추천을 받지 않고 임금이 바로 벼슬을 줌)되었다. 1788년(정조 12)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와 오위장(五衛將)에 승직되었으나 연로(年老)하여 부임하지 못하였다.
저서로는 『팔우헌문집(八友軒文集)』과 천곡서당(泉谷書堂) 교재로 활용한 『골동록(汨童錄)』이 있다.
-출 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영조실록』
『정조실록』
『팔우헌문집』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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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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