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및 학술자료실

제목이달의 유물 ‘희령군 어사금’(2020.12)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1.01.20 15:19:39

 

 

 

 

■ 희령군 어사금(熙寧君 御賜琴)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1

■ 시대 조선

■ 크기 길이 120.3너비 15.9두께 12

■ 소장처 예천박물관

 

 

희령군 어사금(熙寧君 御賜琴)은 조선 태종이 간직하던 것을 시서예악(詩書禮樂)에 해박하고 음율(音律)에 능통한 열 번째 아들 희령군 이타(李미상~1465)에게 내린 거문고이다희령군은 예악(禮樂)에 뛰어나 용비어천가를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하였다고 전한다.

 

희령군 어사금의 몸체는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서 만든 울림통 위에 생사(生絲무명·소가죽(牛皮)을 재료로 만들었다섬세한 솜씨로 조각한 문양이 있고몸체 위는 명주실을 꼬아 6현을 장착하고 술대(거문고와 향비파를 탈 때 사용하는 막대)로 쳐서 소리를 내도록 하였다. 1988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악기장(樂器匠)의 기능보유자인 이영수(李永水)에게 의뢰하여 6줄과 술대 2개 및 소가죽 등일부 훼손된 부분을 개체(改替:고치어 바꿈)하였으나울림통과 진괘(줄감개) 5개 및 안족(雁足) 2개는 모두 예전 그대로이다뒷면에는 3개의 홈이 있고, “내사(內賜희령금(熙寧琴)”이라는 음각이 있다길이 120.3폭 15.9두께 12㎝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된 거문고 형태나 현재 생산되는 거문고보다 크기가 작다.

 

희령군은 어사금을 가지고 황천군(지금의 횡성)에 정착하였고수대에 걸쳐 후손들이 가보로 삼아 사당에 보관하였다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당은 불타고 거문고만 남았는데이함(李涵)이 상주군 외서면(尙州郡 外西面)으로 이거(移去)할 때 가지고 왔다그 후 이우춘(李遇春)에 의해 예천으로 옮겨졌고이병성(李秉誠)이 용문면 구계리에 들어와 살면서 희령군의 봉사손(奉祀孫:조상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자손)으로 임하게 되자 이곳에 사당을 짓고 어사금을 보관해 오다 2020년 예천박물관에 기탁되었다.

 

-출 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문화관광과박물관팀(☎ 054-650-8317)입니다.

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교육 및 학술자료실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81643 입니다.

이 QR Code는 현재 보시는 <교육 및 학술자료실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