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전이성’(2022.3)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2.03.28 09:59:42

[2022년 3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전이성>

 

[문과] 선조宣祖 39년(160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9위

 

출생과 과거급제

전이성의 자는 성지性之, 호는 운계雲溪, 본관은 용궁龍宮이다.

그는 조선 초 축산부원군竺山府院君에 봉해진 전원발全元發(고려 말~조선 초)의 후손으로  

처사 전위全緯의 아들이다.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는 아버지의 성명이 전행全緈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한강 정구寒岡 鄭逑(1543~1620),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1563~1633)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606년 식년시에 29의 나이로 급제하였다.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 일등 공신

전이성은 여러 군현에서 현감으로 재임했는데, 특히 고성현과 합천현에는 그의 훌륭한 선정을 기리어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는 낙향 후 학문연구에 매진하였으나,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다시 관직에 제수되어

종부시정宗簿寺正을 역임하였고,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編修官을 겸직하면서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전이성은 황해도도사로 재직하면서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1등 공신에 등록되었다. 이후 다시 고향인 용궁현으로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전이성은 사후 문경시 산양면에 묻혔으며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을 기록하다

전이성은 저작 또한 많이 남겼는데, 1907년 9세손 전학영全學永이 이를 엮어 시문집인

『운계집雲溪集』을 간행하였다.

시詩 중에서는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 많다.

서書 중에서는 스승 정경세鄭經世(1563~1633)에게 조정의 형편을 묻고 민심의 동향을 보고한

「상정선생경세上鄭先生經世」가 있다.

부록으로 그가 1630년부터 10년 동안 용성에 유배되어 있을 때 관북 지방의 민심· 생활상·풍속 등에 대해

기록한 『해휴록解携錄』, 부안에 이배되어 있을 때 찾아온 친지, 그 지방 선비들과 학문·시사·정치·예절 등에

관하여 논한 내용을 엮은 『심화록尋話錄』이 전한다.

 

자료출처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전씨대동보(龍宮全氏大同譜)』  

『朝鮮人名辭書』   『유교넷』  

 『국역 국조인물고』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작성자:학예연구원 안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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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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