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2년 4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변희리>
[문과] 성종成宗 17년(148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6위
출생과 과거급제
변희리의 자*는 선보仙甫, 호는 귀계歸溪,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아버지는 변정邊定이다.
그는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1462년(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6년(성종 1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歸去來 뜻을 품고 예천으로 이거
변희리는 문신이자 서예가인 안침安琛(1445~1515), 연산군의 폭정에 맞선
문신 이세좌李世佐(1445~1504) 등과 교류하였으며, 뜻이 굳고 학문을 즐기는 것으로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 후 1488년(성종 19)에는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역임했다.
변희리는 관직 생활 중 무오사화戊午士禍(1498년, 연산군 4)* 때 수헌睡軒 권오복權五福(1467~1498) 등이
연산군에 의해 처형된 뒤 벼슬길에 뜻을 접고 예천군 용문면 구계리로 이거하여 마을 이름을
귀래곡歸來谷이라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였다.
학문 수양과 덕행으로 여생을 보내다
변희리는 중종반정(1506년, 연산군 12)* 후 사헌부의 장령掌令*에서 종3품인 집의執義*가 되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 은거隱居하며 학문 수양과 덕행으로 세상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타계할 때 가족에게 유언으로 자신이 죽으면 신주에 반드시 성종成宗
(조선 제9대 왕, 재위1469~1494) 때 벼슬한 관직만 기록해 달라고 하였는데,
이는 연산군의 폭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변희리의 무덤은 예천 북쪽 신리에 있다.
자료출처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성종실록』
『문화류씨가정보』
『국조방목(國朝榜目)』
『유교넷』
작성자:학예연구원 안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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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