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 2026년 5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정옹(鄭雍, 1391~1424)
조선 전기 집현전 수찬·지례현감 등을 역임하고, 사후 예천 완담서원에 제향된 문인.
ㆍ본관: 동래(東萊)
| 정옹의 인물 소개
정옹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처음 이름은 정희(鄭熙)이며, 예천 풍양면 청곡리 출신이다. 세종 대에 지례현감, 집현전 수찬*, 집현전 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34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고향인 예천의 완담서원에 제향되었다.
| 정옹의 가문과 성장
정옹은 정승원(鄭承源)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정해(鄭諧), 아버지는 결성현감을 지낸 정귀령(鄭龜齡)이다. 어머니는 박문로(朴文老)의 딸이고 부인은 이경(李經)의 딸이며, 형제로는 정사(鄭賜)가 있다.
| 정옹의 과거 이력
[문과] 태종太宗 17년141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동진사同進士 16위
| 정옹의 관직과 행적
태종 17년(1417)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은 집현전 수찬과 응교 등을 거쳐 종3품 사헌부 집의에 이르렀으며, 이후 금릉군(현 경상북도 김천시)의 지례현감으로 임명되었다.
지례현감 재임 시에는 향교를 중수하고 경전과 역사 교육을 장려하였다. 『지례읍지』에는 “지례현에서 문교(文敎)*를 크게 일으키고 현민(顯民)*의 예의 풍속을 순화시켜서 칭송 받아 마땅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34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당시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였다고 한다. 무덤은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 산 45번지에 있으며, 학문 활동의 공으로 완담향사에 모셔졌다.
| 정옹과 완담서원
완담향사는 1568년(선조 1)에 풍양면 청곡리 삼수정(三樹亭) 곁에 사당인 삼수사로 건립되었으며, 정귀령·정옹·정사 등 3부자를 제향하였다.
이후 삼수사는 임진왜란(1592) 때 소실되었다가, 1606년(선조 39) 삼수 정귀령의 묘소가 있는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 완담에 완담향사로 중건되었다. 이후 선조들을 추가 배향해 모두 일곱 분을 모셨으나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고, 1998년 유림과 후손들이 복원하며 현재의 완담서원이 되었다.
* 수찬(修撰): 조선시대 집현전 등의 정6품 관직. 1420년 세종이 집현전을 본격 정비하면서 마련된 직제.
* 응교(應敎): 조선시대 집현전 등의 정4품 관직. 학문 연구(경연)와 왕명 대필을 주된 직무로 하던 직제.
* 문교(文敎): 학문과 교육을 널리 베풀어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함.
* 현민(顯民): 해당 고을(지례현)에 사는 백성들을 높여 이르는 말.
* 서원훼철령(書院毁撤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라고 내린 명령.
*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김시우, 『예천유학사』, 예천군·예천문화원, 2016.
작성: 학예연구원 이한별 / 검수: 학예연구사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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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