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 정진화(鄭鎭華, 1873~1945)
- 훈 격 : 애국장(1990)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출 신 지 :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351
정진화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을 도모하던 중 1913년에 채기중(蔡基中)·유창순(庾昌淳)·유장렬(柳璋烈)·한 훈(韓焄)·장두환(張斗煥)·강병수(姜炳洙)·김병열(金炳烈)·정만교(鄭萬敎)·김상오(金相五)·정운홍(鄭雲洪)·황상규(黃相圭)·이각(李覺)·강순필(姜順必) 등과 함께 풍기에서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을 결성하였다. 1915년 박상진(朴尙鎭)·우재룡(禹在龍)·권녕만(權寧萬)·양제안(梁濟安)·김경태(金敬泰)·김한종(金漢鍾)·엄정섭(嚴正燮) 등이 혈맹을 맺고 명칭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로 고쳤다. 1916년 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신현대(申鉉大)·신두현(申斗鉉)·윤홍중(尹洪重) 등이 참여하면서 조직 활동을 국내외로 확대하고 조직명을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으로 고쳤다.
정진화는 풍기광복단이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대한광복단으로 고쳐질 때도 참여·활동했다. 전국최대의 비밀결사인 만큼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행동지침을 바탕으로 각지에 곡물상을 설립해 혁명기지로 삼았다. 군자금 조달, 독립군 및 혁명군의 기지건설, 의협 투쟁으로서의 총독처단 계획과 친일부호 처단 등을 혁명계획으로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했는데, 그는 자신의 집에서 채기중(蔡基中)·정세여(鄭世汝)·윤창하(尹昌夏) 등과 함께 친일부호에게 보낼 군자금 제공을 요청하는 포고문을 발송하였다. 그러던 중 1918년 장승원(張承遠)·박용하(朴容夏) 등 친일부호 처단으로 대한광복회가 발각됨으로써 일경에 붙잡혀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 처-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판결문(1919. 9. 22 경성복심법원)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예천의 독립운동사(예천문화원, 2010)
『공훈전자사료관』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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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