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및 학술자료실

제목이달의 유물 ‘나암수록(羅巖隨錄)’(2020.10)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0.10.20 09:20:32

 


 

 


 

 

 

■ 나암수록(羅巖隨錄)

■ 보물 제1008호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

■ 시대 | 조선후기

■ 저자 | 박주대

■ 소장처 | 예천박물관

 

 

본래의 서명은 『수록(隨錄)』인데 저자의 호를 앞에 덧붙여 『나암수록(羅巖隨錄)』이라 하였다.

 

나암수록은 경북 예천군 용문면 대제동(大渚洞)에서 은거하며 생활했던 유학자 나암 박주대(朴周大; 1836~1912)가 한말의 정황을 듣고 본 대로 기록한 것으로, 고종의 즉위, 흥선대원군의 섭정, 서원철폐령으로 인한 유림의 반발, 당백전의 사용, 병인양요(1866; 丙寅洋擾)·신미양요(1871; 辛未洋擾),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동학운동, 을사늑약, 파리강화조약, 항일전쟁 등 국내외의 중요한 사건과 각 지역의 서원·사우(祠宇) 및 일반 유생의 소(疏; 한문 문체의 하나)·계(啓; 문체의 명칭으로 윗사람에게 올리는 글의 일종) 등이 수록되었다. 또, 운양호사건과 강화도조약,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이 가지고 온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으로 인해 빚어진 문제,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을미사변과 의병의 봉기, 단발령 고시, 독립협회의 조직, 고종의 독살사건, 을사조약, 경술국치 및 항일운동의 전개 상황, 파리장서(巴里長書) 등에 이르기까지 한말의 중요사건도 기록되어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박주대의 자는 계우(啓宇), 호는 나암(羅巖)이다. 1836년 헌종(憲宗) 2년에 출생하여 족숙(族叔) 박기영(朴箕寧)과 선고(先考) 박득영(朴得寧) 등으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았다. 18세의 약관에 진사시(進士試)에 장원을 하였다. 그러나 끝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인 대저리에 은거하여 살다가 을미의병(1895) 때 예천 사림에 의해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하지만 신병을 이유로 그의 동생인 박주학(朴周學)을 보내고 자신은 창의통유문(倡義通諭文)을 짓는 등, 안동과 예천 지역의 의병장인 권세연(權世淵)·이강년(李康秊)·서상렬(徐相烈) 등을 지원하였다. 또한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자신의 문인과 제자에게 배일사상을 심어주는 데 힘쓰며 자신의 재산을 털어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12년 한일합방 이후 백오인(百五人) 사건으로 나라가 소란하고 망한 조국의 운명을 개탄하면서 77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출 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향토문화전자대전』

 

작성자 : 학예연구원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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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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