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에바란다

이곳은 군정발전을 위한 참여 공간이며 본 란을 통하여 제시한 각종 의견 등에 대하여는 민원사무로 접수되지 아니 하므로 민원사무로 처리를 원하는 경우에는 민원신고센터 를 통하여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 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약포광장 조성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17)
작성자장병창 @ 2016.05.10 17:55:55

  약포광장 조성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17)

---

 

 

  정탁 : 발로 쓰는 기행 /충효의 고장 예천/ 3년전, 2008년 3월 14일/ 이순신 장군의 출중한 무예와 인격을 논하며 정유재란에서 백의종군할 수 있게 했던 약포 "정탁" 대감을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다. 명심보감 효(孝) 편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는 효자 "도시복" .../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보물 제494-6호 임진기록(壬辰記錄)/ 3년전, 2008년 3월 12일/ 예천군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정완진 관리자 정경수 일반설명 조선 중기의 문신인 약포 정탁(1526∼1605) 선생의 얼을 추모하고 그가 남긴 유물을 보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유물각에 전해오는.../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보물 제494-7호 선조시집유묵(先祖詩集遺墨)/ 3년전, 2008년 3월 10일/ 예천군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정완진 관리자 정경수 일반설명 조선 중기의 문신인 약포 정탁(1526∼1605) 선생의 얼을 추모하고 그가 남긴 유물을 보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유물각에 전해오는.../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선몽대에서 만난 퇴계와 우암과 다산: 내성천변 선몽대 숲에서.../ 3년전, 2008년 3월 5일/ 시를 보내주었다. 이 시를 차운하여 우암 선생이 시를 썼으며, 이후로도 당대의 석학인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이 퇴계의 시를 차운하여 시를 남겼다..../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보물 제494-9호 약포선조간첩(藥圃先祖簡帖)/ 3년전, 2008년 3월 4일/ 예천군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정완진 관 리 자 정경수 일반설명 조선 중기의 문신인 약포 정탁(1526∼1605) 선생의 얼을 추모하고 그가 남긴 유물을 보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유물각에 전해오는.../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보물 제494-8호 약포선조유묵(藥圃先祖遺墨)/ 3년전, 2008년 3월 4일/ 예천군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정완진 관 리 자 정경수 일반설명 조선 중기의 문신인 약포 정탁(1526∼1605) 선생의 얼을 추모하고 그가 남긴 유물을 보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유물각에 전해오는.../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예천읍 - 유래/ 3년전, 2008년 2월 28일/ 들어갔더니, 어제 그 사람이 무릎을 탁 치면서,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과연 조선에서 온 정탁(鄭琢)은 큰 인재임이 틀림없구나” 하더라는 얘기가 전하고 있다. (4) 꿈에서 얻은 용(龍)의 알 약포.../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보문면 유래/ 3년전, 2008년 2월 25일/ (麴醇傳)> 등의 저자 서하(西河) 임춘(林椿)이 살던 곳이며, 임진왜란 직후(1600)부터 약포(藥圃) 정탁(鄭琢)에 의해 일찍 향약(鄕約)이 실시되어 풍속(風俗)이 순후한 고장이다. 학가산이 동쪽을 막아.../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보문 내성천으로 외나무다리 체험 갑시다....../ 5년전, 2006년 12월 22일/ 조선 선조 때 이순신 장군을 특별사면토록 건의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도록 한 충신 약포 정탁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도정서원이 자리 잡고 있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충효사상을.../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정탁 : 예천신문cafe/ 정탁초상(자료=예천군)/ 작년, 2010년 4월 2일/ 정탁초상(보물 제487호 1968.12.19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예천읍 고평리 466 소유자 : 정완진 (관리자:정경수)/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 모함에서 구함/ 약포 정탁의 상소문(2)*김영진 시인/ 작년, 2010년 4월 30일/ 약포의 상소문이 하도 절절한 명문장이라 함부로 논하지 못하겠기에 계속 읽어나가고 싶다.(전회에서 이음) “대체로 보아 인재란 것은 나라의 보배로운 그릇이라, 비록 통역관이나 회계 맡은 사람에.../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 모함에서 이순신을 구함/ 김영진 시인/ 작년, 2010년 4월 21일 *시와 함께 하는 경북북부문화 나들이(17) 모함에서 이순신을 구함 -약포 정탁의 상소문(1) <김영진 시인> 1597년 봄 원균(元均)의 모함으로 처형 직전의 이순신을 구해낸 구구절절의 신구차(伸救箚.../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 임진왜란의 숨은 책략가/ 김영진 시인/ 작년, 2010년 4월 14일/ 임진왜란의 숨은 책략가 -약포 정탁의 애국충정 / 김영진 시인(보문면 출생)/ 약포는 임진왜란 3년 전에 왜구의 침략을 예견하고 조정에 군비 강화를 역설했다. 그의 예견대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 예천 선몽대 일원(자료=예천군)/ 작년, 2010년 4월 3일/ 비각, 비 등의 시설물과 퇴계 선생의 친필인 선몽대 현판을 비롯하여 곳곳에 서애 유성룡, 약포 정탁, 김상헌, 이덕형 등의 친필시가 남아 있는 등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 삼강강당(자료=예천군)/ 작년, 2010년 4월 2일/ 삼강리 70 소유자 : 정동성(관리자:정수흠) 자세한설명/ 이 강당은 조선 선조 때 호종공신 약포 정탁 선생의 셋째 아들 청풍자 정윤목이 벼슬을 사양하고 후진을 양성키 위해 세운 사설 학원이다. .../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 약포사당(자료=예천군)/ 작년, 2010년 4월 2일/ 황지리 447 소유자 : 정완진(관리자:정경수) 자세한설명 : 이 건물은 조선조 선조 대의 약포 정탁(1526∼1605)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인조 18년(1640)에 세운 사당이다. 숙종 23년(1700)에 강당채를.../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 예천청주정씨재실(자료=예천군)/ 작년, 2010년 4월 2일/ 예천군 호명면 본리 14-2 소유자 : 청주정씨종중 (관리자:정경수)/ 자세한설명 : 이 건물은 약포 정탁(1526 ~ 1605)을 추모하고 제향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묘하재실이다. 그는 명종~선조시의 문인으로.../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 버들판의 명재상 <김영진 시인>/ 작년, 2010년 3월 31일/ 버들판의 명재상 --약포 정탁 <시와 함께 하는 경북북부문화 나들이*김영진 시인>/ 이 고을 저 고을 샘물 나듯 인걸도 많다만 용문면 버들판*에 또 한 재상이 났으니, 그의 이름은 정탁(鄭琢). 자(.../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정탁 서간(鄭琢書簡) [個人古文書] : 예천읍 고평리 입향조인 약포 정탁(鄭琢, 1526-1605, 左議政)이 아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1매, 초서(草書), 45.7x29.2cm, 상태가 양호하고, ‘사자 2060’과 중복된다. 조선 선조 때의 호성공신(扈聖功臣)이었던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정탁이, 그의 아들이 새로이 임직에 나아가는 것에 즈음하여 당부하는 내용이다. 보문면 고평리 정남섭(鄭南燮)의 소장본인 <약포선생간첩(藥圃先生簡帖)>에서 소수(所收)한 것을 촬영한 필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청구기호 GF 4603 33-295-4)되어 있다.

 

  정탁 서간(鄭琢書簡) [個人古文書] : 예천읍 고평리 입향조인 약포 정탁(鄭琢, 1526-1605, 左議政)이 아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1(2)매, 초서(草書), 45.7x29.2cm, 상태가 양호하다. 조선 선조 때의 호성공신(扈聖功臣)이었던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정탁이, 그의 아들이 새로이 임직에 나아가는 것에 즈음하여 당부하는 내용이다. 보문면(現 醴泉邑) 고평리 정남섭(鄭南燮)의 소장본인 <약포선생간첩(藥圃先生簡帖)>에서 소수(所收)한 것을 촬영한 필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청구기호 사자 2060)되어 있다.

 

  정탁 서간(寫眞 유리필름 目錄) [古文書] : 예천읍 고평리 입향조인 좌의정 정탁의 서간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鄭琢書簡(2)/ 분류 古文書 私人文書 書簡/ 등록번호 사자 2060/ 본문 조선 선조 때 忠勤貞亮扈聖功臣이었던 西原府院君 貞簡公 鄭琢(1526~1605)이 아들이 새로이 임직에 나아가는 것에 즈음하여 당부하는 내용의 서간./ 설명 (발급) 鄭琢 (수급) 아들/ 6月 29日/ 1(2), 초서, 45.7×29.2cm/ 藥圃先生簡帖 所收/ 소장:慶北 醴泉郡 普內面 高坪里 鄭南燮”(history.go.kr 2005)

 

정탁 서간(鄭琢書簡(2)) [寫眞資料] : 조선 선조 때 6월 29일 충근정량 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이었던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정간공(貞簡公) 정탁(1526-1605)이, 아들이 새로이 임직에 나아가는 것에 즈음하여 당부하는 내용의 서간으로, 초서(草書), 45.7x19.2cm이다. 보문면 고평리 후손 정남섭(鄭南燮)이 소장하고 있는 <약포선생간첩(藥圃先生簡帖)>에서 소수(所收)하여 국사편찬위원회(寫資 2060)에서 그 사진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인터넷 야후 2001)

 

  정탁서간(2)(鄭琢書簡(2)) : 구분: 사진.유리필름자료(국사편찬위원회)/ 분류: 멀티미디어자료 > 이미지 > 사진.유리필름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鄭琢書簡(2)/ 분류 古文書 私人文書 書簡/ 등록번호 사자 2060/ 본문 鄭琢書簡(2)/ 조선 선조 때 忠勤貞亮扈聖功臣이었던 西原府院君 貞簡公 鄭琢(1526∼1605)이 아들이 새로이 임직에 나아가는 것에 즈음하여 당부하는 내용의 서간./ 설명 (발급) 鄭琢 (수급) 아들/ 6月 29日/ 1(2), 초서, 45.7×29.2cm/ 藥圃先生簡帖 所收/ 소장:慶北 醴泉郡 普門面 高坪里 鄭南燮//

 

  정탁서간(2)(鄭琢書簡(2)) : 구분: 사진.유리필름자료(국사편찬위원회)/ 분류: 멀티미디어자료 > 이미지 > 사진.유리필름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鄭琢書簡(2)/ 분류 古文書 私人文書 書簡/ 등록번호 GF 4603 [33-295-24]/ 본문 鄭琢書簡(2)/ 조선 선조 때 忠勤貞亮扈聖功臣이었던 西原府院君 貞簡公 鄭琢(1526∼1605)이 아들이 새로이 임직에 나아가는 것에 즈음하여 당부하는 내용의 서간./ 설명 (발급) 鄭琢 (수급) 아들/ 6月 29日/ 1, 초서, 45.7×29.2cm/ 상태양호/ 사자 2060과 중복, 藥圃先生簡帖 所收/ 소장:慶北 醴泉郡 普門面 高坪里 鄭南燮//

 

  정탁초상(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2. 10:15/ 정탁초상(보물 제487호 1968.12.19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예천읍 고평리 466/ 소유자 : 정완진 (관리자:정경수)(daum 2010)

 

  정탁 필적(鄭琢筆蹟) [個人古文書] : 예천읍 고평리 입향조인 약포(藥圃) 정탁(1526-1605, 左議政)이 1599년 9월에 홍법사(洪法寺) 벽에 씌어진 시를 평하면서 제3구의 압운(押韻)이 잘못된 것을 밝히고 고쳐 쓴 시초(詩草)로, 2(4)매, 초서, 27.5x105.5cm이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소수(所收)한 <조선사료집>(眞 續2, 1931)에 수록되어 있다. 예천군 정남섭(鄭南燮)의 소장본을 촬영한 필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청구번호 사자 2150)되어 있다.

 

  정탁 필적(鄭琢筆蹟) [寫眞資料] : 조선 중기의 문신 약포(藥圃) 정탁(1526-1605)이 1599년(선조 32) 9월 7일에 홍법사(洪法寺) 벽에 씌어진 시를 평하면서 제3구(句) 압운(押韻)이 잘못된 것을 밝히고 고쳐쓴 시초(詩草)로, 초서로 쓴 서화(書畵) 필적이다. 27.5x105.5cm이고, 예천읍 고평리 후손 정남섭(鄭南燮)이 소장하고 있으나, 이는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료집 진 속2(朝鮮史料集眞續二)>(1931)에서 소수(所收)한 사진 자료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소장(寫資 2150901, 寫資 2150-02)하고 있다.(인터넷 야후 2001)

 

  정탁 필적(寫眞 유리필름 目錄) [筆跡] : 예천읍 고평리 입향조인 좌의정 정탁의 1599년 필적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鄭琢筆蹟/ 분류 書畵 筆蹟/ 등록번호 사자 2150/ 본문 조선 중기의 문신 藥圃 정탁(1526~1605)이 洪法寺 벽에 씌어진 시를 평하면서 제 3句의 押韻이 잘못된 것을 밝히고 고쳐 쓴 詩草./ 설명 鄭琢, 萬曆 27年 9月 初7日 (1599)/ 2(4), 초서, 27.5×105.5cm/朝鮮史編修會, 朝鮮史料集眞 續2(1931) 所收/ 소장:경북 예천군 鄭南燮”(history.go.kr 2005)

 

  정탁 : 공연) 2012년 9월 8일 토 2시 예천문화회관 대강당 " 약포.../ 2012.09.10/ 명인과 명창의 열창. 창극 ‘약포대감이야기’ 예천공연 ‘대성료’ 강성화 기자 전형적인 농촌지역인 예천에서 지난 8일 명인, 명창과 함께하는.../ cafe.daum.net/msyc/XnXc... 국악 최수인(daum 2015)

 

  정탁 : 실록으로 본 임진왜란 - 2 모함의 역사/ 2011.12.13/ 미상 *이순신을 모함하는 인물 윤두수 경북 구미출신의 문신 (원균의 친척) 정탁 경북 예천출신의 문신 김응남 문신 출신지 미상 *모함에 편승하는 인물 유성룡 경북.../ www.bobaedream.co.kr/board... 보배드림 > 정치/사회/이슈(daum 2015)

 

  정탁 : 柏谷誌(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 11권)  >   再題柏谷洞案後/ 嶺南之俗鄕必有案籍於案者名曰鄕族昏因鄕族自爲之死喪/ 鄕族自弔之飮宴鄕族自聚之外此籍者雖位?卿相行?顔/ 閔鄕人有不數焉是以鄭藥圃琢居醴泉位正卿不得入案及其修案/ 其鄕一人曰鄭琢官高不可不入一人曰如入案後若與吾輩求爲昏/ 因則奈何至今傳爲奇談然則南人之重案其如何哉洞之有案/ 鄕之亞也其重必與鄕相?吾柏谷居人不爲不多而入案之人/ 止於如此則其重固可見矣觀是案者此之又不可不知也韓/ 若愚再書 (daum 2014)

 

  정탁 : 백곡지()  >   백곡동안(柏谷洞案) 뒤에 다시 씀/ 백곡동안(柏谷洞案) 뒤에 다시 씀 [再題柏谷洞案後] : 영남의 풍속에는 향촌(鄕村)에는 반드시 향안(鄕案 : 註 향족의 명부로 그 고을 출신 사족들의 성명 본관 내력을 기록한 것. 곧 향록과 같음. 동안은 향안과 비슷하게 동네의 명부를 적은 것.)이 있었으며 향안에 명부를 올린 자를 향족이라 불렀다. 혼인을 해도 향족이 스스로 알아서 했고 장례나 초상에도 향족이 스스로 알아서 조문했고 연회를 할 적에도 향족이 스스로 알아서 모였다. 이 밖에 명부를 올린 자는 비록 관위가 재상 반열에 오르고 행적이 안연(顔淵, 공자의 제자)이나 민자건(閔子蹇, 공자의 제자)와 비슷하더라도 향인들이 헤아리지 않음이 있었다.(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뜻) 이 때문에 정약포(鄭藥圃) 탁(琢 : 註 조선 중기 재상의 반열에 오른 명신으로 이황의 제자. 약포는 그의 호. 그가 어릴 때 삼가현감에 재직 중인 중부 정이홍에게 수학했는데 이 시기 백곡에 살아 나중에 호를 백곡이라 했다. 또 그가 진주목에 재직할 때 덕천에 있는 조식을 흠모해서 뒷날 절의를 지켰다 한다. 정탁이 백곡과 인연이 있어 그곳 향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를 말한 것이다.)이 예천에 살면서 관위가 정경(正卿, 정2품 이상 벼슬)이었으나 향안에 들지 못했다. 향안을 수정할 적에 어느 향인이 “정탁이 벼슬이 높으니 입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자 어느 사람이 “만일 입안한 뒤에 우리에게 혼인을 요구한다면 어찌할꼬?”라고 말했다. 이는 지금까지 전해오는 기담이다. 그러니 남쪽 사람들이 향안을 중히 여김이 어떠하겠는가? 동네에는 동안이 있으니 이는 향안에 버금간다. 그 중요함은 반드시 향안과 대등하다. 우리 백곡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 적지 않으나 동안에 든 사람들이 이 정도에 그쳤으니 그 중요함을 진실로 알 수 있다. 이 동안을 보는 사람들은 이를 또한 알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한약우 다시 씀 (daum 2014)

 

  정탁 : 한국사료총서/ 20집 輿地圖書 下(한국사료총서 제20집)   >   慶尙道   >   安東   >   人物/ 鄭琢 師事 李滉 登第官至 左議政 封 西原府院君 謚 貞簡 號 藥圃 今 上癸酉親製畵像贊/ 邊烈女 庶孼 金命? 之妻其夫臨絶抱而訣曰君今死矣吾必隨死而同穴及死抱幼兒泣曰豈可以汝之故而不從汝父於地下卽赴水死命?之兄命元尋屍至醴泉屍在深淵中命元呼曰若得拯出當與夫同●屍忽湧出風吹著岸死過七日顔貌如生事 聞旌閭 (daum 2014)

 

  정탁 : 조선왕조실록/ 선조 162권, 36년(1603 계묘 / 명 만력(萬曆) 31년) 5월 6일(신유) 3번째 기사/ 판중추부사 정탁의 사직을 예조로 하여금 의논케 하다/ 판중추부사 정탁(鄭琢)이 상소하여 치사하기를 원하자,【고로(告老)한 것이다. 상이 환도한 뒤에 정탁이 노쇠하고 병이 있음을 들어 정승의 자리를 해면하자 예천(醴泉) 땅으로 물러갔는데, 이때에 이르러 치사하기를 청한 것이다. 】 상이 예조로 하여금 의논하도록 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대부가 나이 70이 되어 치사하는 것이 예법이지만, 70세라도 훌륭한 덕이 있으면 임금의 치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또한 예법입니다. 이는 대체로 신하된 자가 근력이 쇠약해진 다음에는 감히 직책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임금이 차마 졸급하게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는 것, 역시 시종 일관 늙은 신하를 우대하는 훌륭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정년이 되면 치사하였던 것입니다. 역대의 명신(名臣)들 중에 치사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늙은 이유로 치사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문무관 70세 이상인 자는 모두 치사를 윤허하는데, 승질(陞秩)·급봉(給俸)·사칙(賜?)하는 법이 있고, 또 역마를 내주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며 달마다 먹을 쌀을 지급해 주는 규정이 있어서, 모두가 우악(優渥)한 예로 대우하여 한 시대의 영광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례(古例)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보고 들은 것으로 참작해 보면 또한 전해 오는 것이 있습니다. 법전에도 ‘정1품의 관원으로 나이가 70이 지났는데도 국가의 중요한 일에 관계해 치사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궤장(?杖)을 하사한다.’고 하였고, 또 ‘당상관으로 치사한 사람에게는 달마다 주육(酒肉)을 내린다.’고 하였으니, 치사하는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고상(故相) 심수경(沈守慶)이 차자를 올려 치사하기를 원했을 적에, 그때에도 의거할 만한 준례를 찾을 수 없어 본 직함 위에다 ‘치사(致仕)’란 두 글자를 첨가했었습니다. 이는 조정에서 늙은 신하를 우대하는 뜻에 있어서는 훌륭하게 된 것이지만, 그 자신이 치사를 진걸(陳乞)한 심정에는 어긋나게 된 것입니다. ‘치(致)’란 직사를 도로 돌려준다는 뜻인데, 어찌 그대로 직함을 가지게 하고서 치사란 명칭을 첨가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일은 진실로 신하된 사람이 예법에 맞게 진퇴하는 큰 절도인 것입니다. 지금 의논해서 아뢰라는 명을 받들었기에 감히 신들의 소견을 진달합니다. 정탁은 원로대신으로 나이를 들어 청로(請老)한 것입니다. 이는 고례(古禮)이기는 하지만 지금 의거할 만한 전례가 없으니, 대신의 진퇴에 관한 일을 신들이 감히 경솔하게 의논할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예경(禮經)에 치사라는 문구가 있고 국전(國典)에도 치사라는 법조가 있으며, 전대에도 치사에 관한 규정이 있었고 중국에도 치사하는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시행하지 않으니 늙은 신하를 우대하는 뜻에 어긋나는 듯하다. 지난날 허 유격(許遊擊)과 술자리를 함께 하였을 적에, 허 유격이 이천(李薦)이 칼을 차고 곁에서 시위(侍衛)하고 있는 것을 보고 눈짓하면서 말하기를 ‘천조(天朝)에서는 이와 같은 사람이 저런 소임을 맡지 않는다.’ 하였다. 이것은 대개 그가 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이천은 한 무부(武夫)이다. 상신(相臣)은 칼을 차는 소임이 아니니, 이를 이끌어 비유함은 불가한 일이 아니겠는가. 《서경》에 ‘노성한 이을 도모해 임용하였다.’ 하였으니, 진실로 높은 덕망이 있다면 나이 많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만 정탁은 이미 노퇴(老退)한 사람으로 치사하기를 원했으니, 그의 소원대로 들어줌은 불가할 것이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천을 들어 말할 것이 있겠는가. 】

 

  공자의 말에도 ‘늙은이를 편안하게 해준다.’ 하였다. 대부가 나이 70이 되면 영광스럽게 치사하는 것이 옛 도이다. 정탁이 물러가 시골에서 늙고 있으니, 그의 소원대로 치사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3책 162권 5장 B면 /【영인본】 24책 475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daum 2014)

 

  정탁 : 조선왕조실록/ 선조 164권, 36년(1603 계묘 / 명 만력(萬曆) 31년) 7월 13일(정묘) 1번째 기사/ 사간원이 궁궐 담장을 물려 쌓는 일이 부당함을 아뢰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지금 계시는 대내(大內)가 여염 사이에 끼어 있어서 민가와 가깝고 안이 좁으니 궁장(宮墻)을 물려 쌓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므로 구구한 작은 폐단은 따질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난 후에 겨우 모인 백성들이 집을 짓고 사는 곳을 하루아침에 철거하여 살 곳이 없어진 무지한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가 들끓고 있으니 정상이 매우 가엾습니다. 더구나 행궁(行宮)은 실로 오래 계실 곳이 아니고, 백성을 수고롭히고 공역을 허비하는 것도 오늘날의 급한 일이 아니니, 궁장을 물려 쌓으라는 명을 거두소서. 대신이 향리에 물러나 살면 수령은 마음을 다해 공경히 대우하여 조정이 원로(元老)를 우대하는 법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치사(致仕)한 정탁(鄭琢)이 예천(醴泉) 땅에 살고 있는데, 군수 이형욱(李馨郁)이 접대할 때에 체면을 많이 잃어서 소문이 몹시 해괴하니, 파직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궁장을 물려 쌓는 일은 윤허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4책 164권 5장 B면 /【영인본】 24책 50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건설(建設) (daum 2014)

 

  정탁 : 조선왕조실록/ 선조 192권, 38년(1605 을사 / 명 만력(萬曆) 33년) 10월 9일(경술) 4번째 기사/ 왕세자의 이사 서원 부원군 정탁의 죽음에 왕세자가 관원을 보내 치제할 것을 예조에서 보고하다/ 예조가 아뢰기를, “《오례의(五禮儀)》에 왕세자가 사부(師傅)·이사(貳師)의 상(喪)에 대하여 사람을 보내어 치전(致奠)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지금 서원 부원군 정탁이 예천(醴泉) 땅 본가에서 졸하였는데, 그는 일찍이 이사를 지냈습니다. 왕세자가 마땅히 관원을 보내어 치제함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예문에 의하여 거행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6책 192권 2장 B면 /【영인본】 25책 128면 /【분류】 *왕실(王室) (daum 2014)

 

  정탁 : 조선왕조실록/ 선수 39권, 38년(1605 을사 / 명 만력(萬曆) 33년) 10월 1일(임인) 1번째 기사/ 서원 부원군 정탁의 졸기/ 서원 부원군(西原府院君) 정탁(鄭琢)이 졸하였다. 정탁은 예천(醴泉) 사람으로 유성룡(柳成龍)과 친해서 재상이 되었으나 매상 우유부단하였다. 그러다가 성룡이 조정에서 떠나자 탁도 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나이가 차서 치사(致仕)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집에서 병으로 죽었다./【태백산사고본】 8책 39권 4장 B면 /【영인본】 25책 697면 /【분류】 *인물(人物) (daum 2014)

 

  정탁 : 조선왕조실록/ 宣祖 164卷, 36年(1603 癸卯 / 명 만력(萬曆) 31年) 7月 13日(丁卯) 1번째 기사/ 사간원이 궁궐 담장을 물려 쌓는 일이 부당함을 아뢰다/ ○丁卯/司諫院啓曰: “時御大內, 介於閭閻, 淺露狹窄, 宮墻退築之擧, 勢出於不得已, 區區小弊, 似不足恤, 而亂後甫集之民, 補葺爰居之所, 一朝撤出, 無所依歸, 蚩蚩者氓, 怨聲騰沸, 愁慘之狀, 極爲矜惻。 況此行宮, 實非久御之所。 勞民動衆, 虛費功役, 亦非今日之急務。 請寢宮墻退築之命。 大臣退居鄕村, 則爲守令者, 所當盡心敬待, 以體朝廷優老之典, 而致仕鄭琢, 居于醴泉地, 郡守李馨郁接待際, 多失體面, 所聞極爲埋沒。 請命罷職。” 答曰: “宮墻退築事不允。 餘依啓。”/【태백산사고본】 94책 164권 5장 B면 /【영인본】 24책 50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건설(建設) (daum 2014)

 

  정탁 : 조선왕조실록/ 宣祖 192卷, 38年(1605 乙巳 / 명 만력(萬曆) 33年) 10月 9日(庚戌) 4번째 기사/ 왕세자의 이사 서원부원군 정탁의 죽음에 왕세자가 관원을 보내 치제할 것을 예조에서 보고하다/ ○禮曹啓曰: “《五禮儀》, 王世子於師傅、貳師之喪, 有遣使致奠之儀。 今者西原府院君鄭琢卒逝於醴泉地本家, 而曾經貳師, 王世子似當遣官致奠。 依禮文擧行何如?” 傳曰: “允。”/【태백산사고본】 106책 192권 2장 B면 /【영인본】 25책 128면 /【분류】 *왕실(王室) (daum 2014)

 

  정탁 : 조선왕조실록/ 宣修 39卷, 38年(1605 乙巳 / 명 만력(萬曆) 33年) 10月 1日(壬寅) 1번째 기사/ 서원부원군 정탁의 졸기/ ○朔壬寅/西原府院君鄭琢卒。 琢, 醴泉人, 與柳成龍友善, 取相位, 唯事?阿。 及成龍去朝, 琢亦解職還鄕, 引年致仕, 至是病卒于家。/【태백산사고본】 8책 39권 4장 B면 /【영인본】 25책 697면 /【분류】 *인물(人物) (daum 2014)

 

  정탁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鄭琢書簡(2)/ 분류 古文書 > 私人文書 > 書簡/ 등록번호 사자 2060/ 본문 鄭琢書簡(2) : 조선 선조 때 忠勤貞亮扈聖功臣이었던 西原府院君 貞簡公 鄭琢(1526∼1605)이, 아들이 새로이 임직에 나아가는 것에 즈음하여 당부하는 내용의 서간./ 설명 (발급) 鄭琢 (수급) 아들/ 6月 29日/ 1(2), 초서, 45.7×29.2cm/ 藥圃先生簡帖 所收/ 소장:慶北 醴泉郡 普門面 高坪里 鄭南燮 (daum 2014)

 

  정탁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鄭琢書簡(2)/ 분류 古文書 > 私人文書 > 書簡/ 등록번호 GF 4603 [33-295-24]/ 본문 鄭琢書簡(2) : 조선 선조 때 忠勤貞亮扈聖功臣이었던 西原府院君 貞簡公 鄭琢(1526∼1605)이, 아들이 새로이 임직에 나아가는 것에 즈음하여 당부하는 내용의 서간./ 설명 (발급) 鄭琢 (수급) 아들/ 6月 29日/ 1, 초서, 45.7×29.2cm/ 상태양호/ 사자 2060과 중복, 藥圃先生簡帖 所收/ 소장:慶北 醴泉郡 普門面 高坪里 鄭南燮 (daum 2014)

 

  정탁 : 藥圃先生續集卷之四/ 附錄/ 有明朝鮮國忠勤貞亮扈聖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領中樞府事,西原府院君藥圃鄭先生行狀。/ 皇明萬曆之三十三年乙巳九月十九日。大匡輔國崇祿大夫。領中樞府事致仕,西原府院君鄭公。卒於家。訃聞。上爲之震悼。輟朝三日。遣承旨致弔賻。遣禮郞致祭。越明年丙午二月二十一日。葬于醴泉郡治之南位谷民坐坤向之原。自上又命有司給葬需。命歸厚署官治喪。承文院官題主。皆異數也。賢孝允偉等。服?關。以墓道有闕。囑無似狀公行事。以備當代秉文立言者采之。汝一辭以小子學蕪識蔑。不敢當者屢。顧平昔蒙公辱進退不自意。又?爲姻孫。賢孝之不於他人者以此。揆諸分義。亦有不可辭者。謹按鄭氏。西原大姓。世所謂甲乙者。其先。在高麗朝。連世顯仕。其尤盛者諱?。事高宗。誅崔光秀。官至大將軍,衛尉卿。持節諭畢玄甫。不辱以死。史列之忠義傳。諱?。都僉議贊成事,延英殿大司學,諡章敬公。十九登第。終成遠器。世爲之談。諱?。司徒,西原伯,文克公。嘗自號雪軒。與弟雪谷?。接武蜚英。中途遭讒皆逐。兄處寧海。弟處蔚州。于時益有名。旣復用雪谷。官至諫議大夫。則淸原君。文簡公樞之父也。雪軒卒。葬安東。爲毋金氏鄕故。金氏。中贊上洛君忠烈公方慶之孫。判三司事,寶文閣大提學,文英公恂之女自是雪軒之後。因居安東。亦爲安東人。入我朝仕太宗時。有諱若。爲刑曹都官佐郞。是生諱普文。將仕郞。夫人眞寶李氏。善山都護府使贈戶曹參判楨之女。退溪文純公之從祖祖姑也。是爲公高祖。是生諱元老。長水縣監,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是爲公曾祖。夫人延安金氏。開城留後文靖公自知之孫。祖諱僑。成均生員,贈崇政大夫,。夫人光州金氏。軍器寺正兼校書館判校景光之女。考諱以忠。贈純忠積德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淸城府院君。?平山韓氏。高麗禮儀判事哲沖之後也。封貞敬夫人。三世皆以公貴也。公之祖考四世。皆隱德不仕。雖或有出。而不大施。淸城。天性寬厚。恥言人過。與物無?。鄕黨以有道稱。蓄而不洩。植而不食。人知其必大有後。以嘉靖五年丙戌十月初八日戊午。生公于醴泉之金堂里。公生而穎異。有聞輒記。淸城奇愛之。九歲而丁內艱。二十一歲而遭外憂。仍廬于墓下。而終其喪。初受業於仲父三嘉縣監以興。通經書大義。華聞日彰。嘉靖壬子。中司馬。戊午。登第。卽我明宗朝也。分校書館。授成川敎。後授晉州。甲子。由芸閣博士。出爲護送官。乙丑秋。拜司諫院正言。以言事罷。未幾。?還爲正言。歷禮曹佐郞。丁卯春。除弘文館副修撰。卽我宣宗卽位元年也。歷兵,刑佐郞,正郞,禮曹正郞。轉獻納,司憲府持平。復爲修撰,副校理,校理。自後五六年間。連出入三司。壬申。拜吏曹佐郞。萬曆癸酉。轉正郞,議政府檢詳,舍人。遷司僕寺正。甲戌秋。由副應敎。陞授同副承旨。乙亥。轉都承旨。丙子秋。辭遞。歷成均館大司成。丁丑冬。由禮曹參議。出爲江原道觀察使。已卯春。復入爲都承旨。庚辰八月。陞嘉善。仍都承旨。辛巳冬。拜吏曹參判。壬午。特命陞資憲,漢城府判尹。是年冬。出使赴京。癸未春。復命。乙酉。拜禮曹判書,司憲府大司憲。俄拜吏曹判書。是夏。辭遞。戊子春。拜刑曹判書。冬。復拜吏曹判書。巳丑。又辭免。九月。旋授兵曹判書。冬。特加崇政太夫。假右議政銜。再赴京。庚寅八月。准還未入京。以臺議被論。蓋處士崔求慶之弟餘慶筮仕。實在十年前公爲吏曹參判時也。然公實不知。而不喜者托此以?之也。冬。?授知中樞府事。遷禮曹判書。辛卯秋。拜右贊成。未幾。轉左贊成。壬辰夏。以兼內醫院提調。扈駕西幸。乙未二月。特拜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監春秋館事。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25.12.10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