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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856 : 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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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普門寺 木鐸 소리/ <김영진 시인>| 예천신문 | 2010.03.31 17:20/ 보문사 목탁 소리/ <시와 함께 하는 경북북부문화 나들이*김영진 시인>/ 내성천 건너는 길손에게/ 한 할머니의 따뜻한 인정이 건너온다./ “선상님, 어디 가시니껴?”/ “보문사로 물 한잔 마시러 갑니다.”/ “아이고마, 그라믄 옥천물도/ 한 사발 드셔 보이소!”// 학가산 산자락 솔바람 속에/ 보문사 목탁 소리 낭랑한데/ 나그네 발길에 낮달이 걸린다.// 아득히 흘러온 세월 속에/ 숱한 문인과 무신을 길러낸 고장/ 산이 높아 골물 마르지 않고/ 신선의 놀이터가 된 예천에 가면/ “선상님, 어디 가시니껴?”/ 정겨운 그 인사말이 떠오른다.// 시작 노트 : 고향은 어머니 품안처럼 항상 그리운 곳이다. 성장해서 외지로 나가는 것이 젊었을 때의 꿈이었지만, 외지에서 한평생 살다 보면 고향에의 추억이 그립다. 고향 사람을 만나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속을 터놓고 고향 이야기를 나눈다. 무엇으로 고향 사람을 알아보는가. 바로 사투리이다. 고향 사투리를 들으면 귀가 번쩍 열린다. 보문사에 가다가 만난 어느 할머니의 사투리는 무조건 반가웠다.(daum 2010)
보문사(普門寺=資料 醴泉郡) [記事] : 보문사/ 소재지 : 보문면 수계리 158/ 시설규모 : 극락보전 1 / 적묵당 1 / 응진전 1 / 삼신각외 2동 / 주차시설 : 50대/ 자세한 소개 : 보문사는 예천읍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한 군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절 내에는 극락전(문화재자료 203호), 염불당, 산신각, 3층석탑(유형문화재 186호) 등 문화유물이 있으며 주변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고려 명종 15년(1185)에 보조국사 지눌이 이절을 재건하였으며, 조선 정조 4년(1780) 다산 정약용이 이곳 반학루에서 1년간 공부했다고 전해온다. 또한 이곳은 울창한 송림과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산세가 웅장한 곳으로 송이버섯, 고로쇠물, 학가산 메주, 산성학삼 등 특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주변에는 40만평 규모의 '우래자연 휴양림'과 내성천의 맑고 넓은 미호·우래백사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교통이용안내 : 예천읍에서 하루 시내버스 9회 운행 -25분소요, 자가용으로는 15분 이내(醴泉新聞 2010년 09월 15일)
보문사(重要文化財 火災豫防 및 산불鎭火 合同消防訓練 實施 : 火災 및 산불 初期鎭火를 爲한 7個 有關團體 合同消防訓練 實施) [記事] : 예천군은 2010년 11월 24일 오전 11시 천년고찰 보문사에서 문경소방소 외 7개 기관단체 합동으로 중요 목조문화재를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현장훈련을 실제상황과 같이 실시했다. 이날 훈련은 방화로 인한 화재발생을 가상하여, 주요문화재의 반출, 화재진압, 소방헬기 산불전화, 구호. 복구활동 등 입체적인 종합 시범훈련을 실시하였으며, 동원된 장비는 헬기 1대, 소방차 등 총 11대의 장비와 164명의 인력이 동원되어 시간대별로 현장감 있게 진행되었다. 보문사는 극락보전, 아미타삼존상 등 중요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화재 및 산불이 발생하면 문화재의 피해가 우려된다. 이번 합동훈련은 기관단체가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긴급구조 대응기관별 임무숙지를 통해 재난 및 화재발생시 초동 진화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문경소방서장은 “목조건물 화재는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며 특히 문화재의 경우에는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므로 인재와 그 어떠한 재난으로 친한 소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醴泉뉴스 2010년 11월 24일)
보문사(부처님의 慈悲와 光明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 佛紀 2555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각 寺刹에서 奉祝法要式 奉行) [記事] :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부처님의 은덕을 기리고 자비가 온 누리에 펼쳐지기를 바라는 봉축법요식 행사가 2011년 5월 9일과 10일 양일간 예천군 관내 사찰별로 일제히 봉행됐다. 봉축 법요식은 석탄일 전날인 9일에는 오후 7시 보문사에서 열리며 이어 10일에는 오전 10시 서악사, 11시에는 용문사. 명봉사 등 각 사찰별로 스님과 신도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9일 오후 7시 보문사에서 개최된 봉축 법요식에는 이현준 예천군수, 김영규 군의장, 조경섭 군의원, 김수남 예천불교 연합신도회장, 홍설칠 전 상주지원장, 스님, 신도 등이 참여한 가운데 봉행됐다. 봉축 법요식에서 송재선 신도회장은 "불기255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오탁의 삶속에서 파묻혀 탐·진·치 삼독에 눈이 어두워 지혜를 잃어버린 저희들은 산 같은 죄업을 참회하고 기도하여 이 세상을 바른 신심으로 장엄하기를 발원한다."고 개식사를 했다. 법회에서 보문사 도문 주지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 밝히는 연등은 지혜를 밝히는 연등이기도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 모두가 하나 됨을 나타내는 등이기도 하다"며 "모두가 상생과 화합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해 주길 바란다."고 법어를 했다. 이날 행사는 삼귀의례를 시작으로 헌화, 찬불가, 반야심경, 법어, 봉축사, 봉행사, 발원문 등의 순서로 법요식이 거행됐으며 탑돌이와 마지막으로 연등뛰우기 행사를 가졌다.(醴泉인터넷放送 2011-05-09)
보문사(도라지꽃 : 이야기 敍事詩) [記事] : 도라지꽃// 학가산이 바라보이는 보문사 뒤뜰/ 잔뜩 수풀이 우거져 물섶이 짙은데/ 헌칠하게 자란 꽃대궁이에서/ 보랏빛 웃음 한 자락 던지고 있다// 스님은 어딜 가고 잡초만 자라/ 여름 한낮을 마음대로 일렁이는데/ 보랏빛 꽃얼굴은 미소 지으며/ 뿌리를 열심히 살찌우고 있다// 선비들의 학가산이 웃는다/ 학두루미가 노닐다 날아간 높은 산/ 학이 앉은 자리에서 옆구리 털이/ 한두 개 빠져 도라지꽃으로 서 있는가// 보랏빛 미소가 산으로 올라갈 때/ 흙냄새 안고 일어서는 학가산/ 나무 그늘에 숨은 사랑도 보랏빛인가/ 하늘 우러르면 다시 전설이 생각난다// ◇ 김 영 진(보문면 출행/ 시인, 수필가/ 성서원 회장/ 새벗 발행인)/ ◆시작노트 보문면에 있는 보문사 뒷마당에서 만나는 도라지꽃을 넌지시 바라본다. 그 청초한 꽃을 보면 멀리 학가산을 오르내리던 젊은 날을 생각나게 한다.(醴泉新聞 2011년 07월 28일)
보문사(工夫하는 도량 鶴駕山 普門寺) [記事] : 몽중에 “여기가 대 선생이 나온다.” 고 한날 처음 마주친 곳이 지금의 보문사이다. 예천 학가산 절골(수계리)이라는 곳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고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중창하고 득도한 보문사라는 사찰이 있다. 전국에 보문사가 5~6곳이 있지만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물론 예천 인근에서도 가장 오래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의 잦은 화재로 절이 크게 번성하질 못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가산을 중심으로 맥이 내려오다 여기에서 혈이 크게 뭉친 곳이다. 이렇게 기운이 좋은 곳이 있나 하고 스스로 물어 본 곳이다. `보문(普門)`이라는 지명은 여자 자궁을 생각게 한다. 절을 찾기 전 입구의 조각같이 반듯한 삼각형산은 `알봉산`이라고 하는 부봉(노적봉)으로 여자의 음핵 같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산이다. 그 산 우측으로 들어오는 길은 곧 여자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길로 보이고. (좌측으로 들어가면 `방짐이 못`이 나오고 음습한 산길로 들어가면 마을이 나오는 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보문사 쪽으로 오르면 높은 병풍으로 둘러 쳐있는 풍정이 나타난다. 그야말로 금계포란형이다. 그리고 그 속에 나지막하고 평평한 산이 볼록하게 이루어져 기혈을 이루로 있다. 이 낮은 구릉은 보문산에서 내려오는 맥이 보문사 앞을 나지막하게 가로 지르며 알봉산으로 내려가며 좌우로 물줄기를 만들고 있다.
알봉산에서부터 맥 또한 보문사를 등진 상태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보문사 앞 낮은 산은 곧 여자의 태반에 해당하는 곳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보문사에서 바라보는 안산이다. 그리고 그 넘어 뚝 떨어져 독산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도 중요하다. 이 두 산이 보문사를 생기게 하고 지눌 대사가 득도를 하게한 기운을 가진 게 아닐까. 법당인 극락보전은 문화재로 작은 모습이다. 너무 작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눌 스님이 득도를 하셨다. 뒷산의 혈이 계속 이어져 법당의 본존불을 지나 중앙계단을 거쳐 길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불타고 현판만 남아있는 반학루를 마주 보고 있다. 여기서 다산 정약용이 1년 정도 머물며 과거 공부를 하고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張炳昌 註 : 다산이 1년 정도 공부했던 곳은 당시 예천군청 동쪽 담 밖 저수지에 있던 伴鶴亭이었음) 산의 모습을 보면 거의 일자봉이 많다. 그리고 어디 기운이 빠져나갈 곳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생각하면 알봉산은 당당하고 멋진 수구이다. 풍수인들도 이렇게 아름다운 수구는 본적이 없다고 한다. 보문사 안산에서 바라보면 좌청룡은 우백호를 알봉산에서 만나 결국 둘러싸고 계속 이어져 내려간다. 그리고 부족한 것은 물이 적다는 것. 그리고 내가 머무는 곳(모락재)은 한때 큰스님의 토굴이기도 하지만 고시생들이 공부하던 도량이었다고. 지금도 현역에서 판·검사와 관직에 머물고 있는 분들이 있다. 모락재 뒤 밀고 내려오는 한일자 형의 등받이가 좋고 우측으로 작은 편돌이 산위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건너편 안산을 지나는 땅 속의 돌 축이 있는데 이것이 기를 가두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또한 땅의 흙이나 돌맹이 하나도 기토 기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풍수상의 산세는 물론이고 바닥의 재질도 중요하다. 돌무덤은 보문산에서 보문사 앞을 가로지르며 내려가는 중앙 혈이 끝나는 지점으로 선황당이다. 큰 스님은 지네혈이라 하고. 그곳에 돌을 쌓고 길쭉한 석상을 세우고 매년 기도를 하는 곳이다. 보문사가 하도 전란에 휩싸여 불타고 해서 그 뒤 세운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못 낳는 사람들의 기도처이기도 하다. 종합하자면 보문사는 여인의 자궁터와 같다. 지명 이름도 그렇고.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아들을 점지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던 장소이다. 지금도 절의 뒤편에 기도처가 있고, 학가산 보문사는 가보기만 해도 하나의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나는 이곳의 기운이 공부하는 사람, 절실한 사람들만 반기는 듯해서 좋다.(권정찬 畵家·慶北道立大學 敎授)(慶北每日新聞 201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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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