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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857 : 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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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高麗의 情報 貯藏所 役割을 하다, 忠州史庫) [記事] : ...고려사에는 이런 표현이 보인다. '7월에 왜적이 김해부에 침입하였다. 경상도 안렴사가 보고하기를 "(…) 왜적이 안동 등지를 침공하려 하니, 보주(경북 예천) 보문사에 장서한 역사서적들을 내지로 옮기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사관을 보내 역사 서적들을 충주 개천사로 옮겨두었다.'-<고려사 권134 열전47> 충주 개천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찰이다. 대신 정토사지라는 이름은 많이 알려져 있다. 바로 정토사 전에, 그 자리에 존재했던 절이 개천사다. 지금의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일대가 되나, 안타깝게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완전 수몰됐다.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국보 제102호인 홍법국사 실상탑과 보물 제359호인 홍법국사 탑비는 바로 우리고장 충주 정토사지에서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고려실록은 충주 개천사에 계속 보관되지는 않았다. '왜적이 함부로 내지로 침입하므로, 충주 개천사에 두었던 역사 서적들을, 죽주 칠장사로 옮겨다 두었다.-<고려사 권 135 열전 47> 위와 지금의 열전은 모두 고려 제32대 임금인 우왕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왜적이 이웃 안성, 음성까지 침입하자 이번에는 드디어 우리고장 충주읍성안(지금의 충주 성내동)으로 옮겨진다. 이때부터 고려실록은 더 이상 옮겨다니지 않고, 고려사와 각종 역사서를 편찬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로 활용됐다. 이때가 조선 태종 12년, 그러니까 1412년 이다. 실록에 이런 표현이 보인다. '지금 고려음악의 대강은 중국에서 제정한 것입니다. 지금 신 등이 충주사고의 형지안(形止案)을 상고하여 보면….'-<태종실록> 인용문 중 '형지안'은 원적부를 의미하고 있다. 형지기라고도 불렸던 형지안은 전근대 사회에 공·사용으로 널리 쓰이던 용어로 사건의 전후사정을 기록한 전말이나 상황보고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용한 문장을 풀어서 설명하면, '지금 충주사고에 중국에서 건너온 음악 원본이 보관데 있는데, 그것을 살펴보면….'라는 정도가 된다. 이처럼 충주사고에는 국내서 발간된 서적뿐만 아니라 중국서 건너온 외국 서적도 많이 보관돼 있었다. 고려의 정보 저장소 역할을 한 셈이다.(忠北日報 2013-02-14)
보문사(아름다운 길 걷기...) [記事] : 아름다운 길 걷기는... 우리문화답사회 그루와 송이는 오는(2013년 10월) 19일 예천, 문경 지방을 답사한다. 절집 운달산 김룡사, 비룡산 봉서사, 학가산 보문사 등 절집을 순례한 뒤 단풍길을 따라 옛길 문경새재를 넘는다. 오전 7시 도시철도 서면역 7번 출구 롯데백화점 옆 집결. 5만 2천 원...(釜山日報 2013-10-17)
보문사(盜難當한 醴泉 普門寺 佛畵 되찾아 : 佛畵 2点, 佛敎美術 代表 作品으로 文化財指定 可能性 높아) [記事] : 예천군(군수 이현준)은 26년 전에 도난당했던 예천군 보문사 불화 4점 중 2점이 2014년 8월 회수되어 향후 보문사로 환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천군 보문면 보문사는 이번 환수예정인 ‘지장보살도(1767)’, ‘아미타불회도(1767)’ 2점을 비롯한 18~19세기 제작된 불화 ‘신중도(1767)’, ‘영산회상도(1830)’ 총 4점을 지난 1989년 6월 5일 보문사 극락전에 보관 중에 도난당한 바 있다. 지난 5월부터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도난문화재가 고미술품 경매에 출품된다는 사실을 집중 조사하는 과정에서 서울 소재 한 사립박물관에 소장 중이던 ‘지장보살도’와 ‘아미타불회도’ 2점을 발견해 회수하게 되어 26년 만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보문사 ‘지장보살도’는 중생들을 보살피는 지장보살이 중앙에 있고 그 아래 지옥 시왕들의 심판 장면을 그려 넣은 독특한 구도의 불화이며, ‘아미타불회도’ 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보살들과 팔부신중 등이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최선일 문화재청 감정위원은 “지장보살을 중심에 그린 ‘보문사 지장보살도’는 조선 불화에는 전례가 없어 미술사적 가치가 크다”고 했으며, 학계에서는 앞으로 보물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앞으로 회수될 문화재들의 철저한 보존관리와 문화재지정을 추진하고 관내 문화재의 도난예방을 위해 문화재소유자, 경찰서 등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醴泉뉴스 2014년 10월 27일)
보문사(韓國畵家 권정찬·書藝家 김장현 醴泉 普門寺에 나란히 作品 寄贈) [記事] : 한국화와 서예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화가 권정찬과 서예가 김장현이 조계종 예천 보문사에서 신축한 조사전의 고승진영과 현판, 주련을 제작 무상 기증해 화제가 되고 있다. 권정찬(경북도립대 교수)은 의상대사, 보조국사, 담연당 도명 대선사 진영 3점을 1여년에 걸쳐 제작했다. 전통의 천 위에 안료를 사용해 권 교수 특유의 인물화 기법을 사용해 여러 번의 고증을 거쳐 완성했다. 서예가 김장현은 수차례의 시도와 서체연구로 조사전 현판과 보조국사 시를 주련으로써 힘과 미가 잘 어우러진 필체를 보여준다. 한국화가 권정찬은 해외 여러 나라의 초대를 받아 개인전을 지속적으로 열어 호평을 받고 있는 한국화의 중심 작가이며 남미에서는 `동양의 대표작가`, 일본에서는 `피카소, 마티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작가`, 중국에서는 `한국당대선풍종사`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서예가 김장현은 한시작가이면서 개성적인 필치로 서단의 각광을 받고 있는 40대의 기수. `뿌리 깊은 나무` `비밀의 문` `미인도`등 드라마에서 켈리그래픽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작가로 대만 정부와 호주국립대학에서 초대개인전을 갖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보문사 주지 도문 스님은 “두 작가의 불사는 종교를 떠나 아직도 배려와 봉사를 실천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예천 학가산 보문사 조사전 개관은 오는 2014년 11월 16일 오전 10시 30분에 학가산 보문사에서 이뤄지며 보문사에서는 두 작가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계획이다.(정철화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4.11.12)
보문사(普門寺) [인터넷] : 보문면 수계리 절골에 있는 절로, <현대불교> 268호(佛紀 2544.4.26)에 의하면, 예천 보문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의 편액이 대원군(興宣大院君) 석파(石坡) 이하응(李昰應, 1826-1898)의 글씨라고 한다.(www.buddhapia.co.kr 2002)
보문사: 경북 예천 보문사/ 2014.10.20/ 경북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158번지, 예천 읍내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보문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1300년 이상되는 유서.../ blog.daum.net/nami3152/ 산사에서의 풍경소..(daum 2015)
보문사: <예천 가볼만한 곳> 보문사 정월초하루 나들이/ 2014.03.03/ 예천 가볼만한 곳으로 보문면에 위치한 보문사를 소개합니다. 이곳은 제가 살고 있는 고향에 위치한 사찰입니다. 일년에 한두 번씩은 꼭 어머니를 모시고 보문사를 들린답니.../ blog.naver.com/psj8459/ 후헤어 예약문의 07..(daum 2015)
보문사([여시아문] 예천 보문사) [기사] : 달뜨던 1월 한 달이 훅 지나갔다. 문인들만 관심 있는 ‘그들만의 리그’로 생각했는데 신춘문예의 위력은 대단해서 가까운 지인은 물론이고 오래된 인연으로 전화번호만 간신히 걸려있는 분들도 반가움을 전해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동창이 전하는 껄렁껄렁한 목소리, “ 니는 인마, 맨날 여자애들 고무줄이나 끊고 쌈박질이나 해대면서도 공부는 그럭저럭 하더니만 큰 일 했네, 짜슥이”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동창생이 60여명 남짓한 깡촌 학교로 그나마 지금은 폐교된 지 20년도 더 지났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봄, 가을 소풍은 주로 가까운 내성천 모래밭 포플러 그늘이나 보문사로 가곤 했다. 보문사는 학교에서 3Km내외 거리에 있으며 깊은 산속이 아니라 친구들이 살고 있던 절골 마을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낮은 산중턱쯤에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 의상은 통일신라 왕족 출신으로 당에 유학하여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귀국하여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으며 영주 봉황산 수덕사를 창건한 고승이다. 또 보문사에는 ‘보물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 등 문화재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보문사로 처음 소풍을 갔던 날,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절에 들어서자마자 학교보다 훨씬 커 보이는 절의 크기와 화려함, 불상의 커다란 덩치, 탱화 속 수많은 보살 등 세찬 기세에 압도되어 한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주눅이 들어 주뼛주뼛 거리고 있을 때 나를 진정시킨 분은 어떤 스님이셨다. 절 마당을 건너시던 스님과 우연히 눈이 마주친 순간 미소를 띤 그 눈빛은, 오갈 때마다 우리 집에 들르시며 부모님과 담소를 나누거나, 툇마루에 걸터앉아 파안대소를 하시던 그 스님의 친숙한 따뜻함이 배어있어 수꿀해진 나를 안도감으로 도닥거리고 있었다. 세월을 거슬러 시 공부를 다시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유년기의 서정적 체험들이 그동안 시심을 지탱해주고 시의 모태가 되었다면, 살아오면서 많이 의지했던 불교적 환경이 그 중추적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겠다. 그동안 서산에서 서울까지 강단 있게 오르내리며 시에 몰두한 수고를 보상해주신 불교신문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늦게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인생에 감히 부처님의 자비가 있기를 두 손 모은다.(구자평 시인 불교신문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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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