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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858:보문사극락보전...보문사삼층석탑...
작성자장병창 @ 2022.07.05 05:55:27

  도청신도시 예천 1,858 : 보문사 극락보전...보문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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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문사 극락보전: 보문사 극락전

  보문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상(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3. 11:15/ 예천 보문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상(문화재자료 제5192007. 4.. 30 지정)/ 소재지 :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158/ 소유자 : 보문사(관리자 보문사)/ 자세한 설명 : 극락보전에 안치된 아미타삼존상 가운데 본존불상은 사각형의 얼굴과 움츠린 듯한 어깨, 경직된 부피감, 두꺼운 통견을 하고 있는 등 조선 후기의 불상양식을 보이고 있다. 手印은 촉지항마인을 결하고 있으며 몸체에 비해 두상이 크고 당당한 체구로서 긴장된 느낌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좌우 협시보살상은 각각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으로 전체적인 양식은 본존상과 같다. 삼존상은 17세기 조선조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점과 바닥 일부에 드러난 면으로 보아 佛石製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改金願文이 발견되어 제작연대가 최소한 1811(嘉慶 16) 이전이라는 사실 등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상양식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daum 2010)

 

  보문사 극락전(普門寺極樂殿), 보문사극락보전(極樂寶殿) [建物] : 보문면 수계리 158번지 보문사(普門寺) 경내에 있는 1700년대의 건물로, 경북문화재자료 제203(1988.9.23 지정)이다. 학가산(鶴駕山) 서남줄기의 갈마령(葛馬嶺)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지맥의 서남록에 보문사가 있다. 이는 정면 3, 측면 2, 맞배지붕 홑처마의 건물이다. 보문사는 667(문무왕 7) 의상 조사(義湘祖師)가 창건한 전통 사찰이고, 여러 차례에 걸친 재난을 당하여 도괴되었는데, 1184(명종 14)에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이 운계암(雲溪庵) 뜰에 나한전(羅漢殿)의 본존 석가존상(本尊釋迦尊像)의 표징으로 삼층석탑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보문사(普門社)가 조직되고, 고려 말에 사고(史庫)로도 쓰이던 지눌의 숨결이 서려있는 사찰이다. 극락전(極樂殿), 염불당(念佛堂), 산신각(山神閣), 반학루(伴鶴樓), 원당(願堂), 조실(祖室), 운계암(雲溪庵) 등을 중건했는데, 임진왜란(1592) 때 다시 불타고 석탑과 극락보전(極樂寶殿) 및 반학루만이 현존한다.

 

  산록의 비탈면에 높이 축대를 쌓아 마당을 조성하고, 우측에 ᄆ자형의 반학루(伴鶴樓), 마당 건너 정면에 한 단 높은 축대 위에 배산(背山)한 극락보전을 우측으로 산신각과 삼층석탑을 배치하고 있는데, 극락보전은 주심포계(柱心包系)와 익공계(翼工系)의 절충이고, 빗천정과 우물반자천정의 혼용으로 시대적 변화 과정을 잘 살필 수 있는 연구 자료가 된다. 자연 초석에 원주(圓柱)를 사용하여 세운 극락전(極樂殿)은 정면 3, 측면 2, 맞배지붕 건물인데, 앞면 기둥 위에는 주심포계 일출목(柱心包系一出目)으로 꾸몄고, 배면(背面) 기둥 위에는 무익공(無翼工)으로 처리하였으나, 각 내단(內端)은 보아지로 대량(大樑)을 받들게 했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뒷면 중앙칸은 불벽(佛壁)을 삼아 그 앞에 불단(佛壇)을 설치하였는데, 좌우에 대량을 지탱하는 작은 원주(圓柱)를 하나씩 더 세워 불단 공간을 구획하였다. 상부 가구(架構)5량가(樑架)로 이중량(二重樑) 위에 포대공(包臺工)을 얹은 고졸한 양식이고, 중도리(中道理) 바깥쪽은 빗천장, 안쪽은 우물반자로 꾸며 비천인상(飛天人像)과 운문(雲紋)을 그려 놓았다. 또 건물의 전면과 내부는 금단청으로, 배면은 모조단청으로 하고, 배면과 상벽(上壁)에는 벽화를 그려 놓았다. 이 건물은 조선 중·후기 건축으로 주심포 양식과 익공 양식이 절충되어 시대적 변화와 추이를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보문사의 경내에는 극락전 이 외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는 3층석탑이 있고, 근래에 건립한 극락보전, 적묵당, 응진전, 삼성각 등의 건물들이 있다.(두산세계대백과, 醴泉文化 41990). [文化財廳] : 보문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극락전은 앞면 3, 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의 앞쪽 기둥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되어 있고, 뒤쪽 기둥은 새의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을 섞어 놓았다. 조선 중후기의 건축물로 두 가지 건축 양식을 사용하여 건축의 시대적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文化財廳 홈페이지 2002, www.ocp.go.kr 2002)

 

  보문사 극락전(普門寺 極樂殿) [寺刹] : 보문면 수계리 158번지()에 있는 건물로, 자연석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 정면 3,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면 두리기둥 위에는 주심포계 외일출목(外一出目)으로 꾸몄으며, 뒷면 기둥 위에는 무익공(無翼工)으로 처리하였으나 각각 내단은 보아지로 만들어 대량을 받들게 하였다. 측면과 뒷면의 상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1700년대 후반 건축으로 주심포계와 익공 양식의 절충에 빗천장과 우물반자 천장의 혼용 등 각 양식의 시대적 절충,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보문사 극락전(普門寺 極樂殿) [文化財] : 문화재자료 제203('88.9.23 指定), 소재지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158번지, 소재자 보문사(관리자:보문사)이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의 재난으로 도괴된 것을 고려 명종 14(1184) 보조국사 지눌이 머물면서 극락전을 비롯하여 염불당, 나한전, 반학루, 원당, 운계암, 조실 등 7동의 건물을 복원하였는데, 임진왜란을 당하여 모두 불타고 극락전과 반학루 및 3층석탑이 남아 있었다. 정면 3, 측면 2, 맞배지붕의 극락전은 앞 기둥은 주심포계 일출목으로 꾸미고, 뒷기둥은 무익공으로 처리하였으며, 내단을 보아지로 대량을 받게 했다. 가구는 5량으로 이중량 위에 포대공을 얹은 고졸한 양식이다. 이 건물은 조선 중후기 건축으로 주심포 양식과 익공양식이 절충되어 시대적 변화와 추이를 보여주는 자료이다.(醴泉郡廳 홈페이지)

 

  보문사 극락전(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2. 14:07/ 보문사 극락전 (문화재자료 제203 1988.9.23 지정)/ 소재지 :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158/ 소유자 : 보문사(관리자:보문사)/ 자세한 설명 : 본 건물은 여러 차례의 재난으로 도괴된 것을 고려 명종 14(1184) 보조국사가 머므르면서 극락전을 비롯하여 염불당, 나한전, 반학루, 원당, 운계암, 조실 등 7동의 건물을 복원하였는데 임진왜란을 당하여 모두 불타고 극락적과 반학루 및 삼층석탑이 남아 있었다. 정면 3, 측면 2칸 맞배지붕의 극락전은 앞 기둥은 주심포계 일출목으로 꾸미고, 뒷기둥은 무익공으로 처리하였으며 내단을 보아지로 대량을 받게 했다. 가구는 5량으로 이중량 위에 포대공을 얹은 고졸한 양식이다. 이 건물은 조선 중·후기 건축으로 주심포 양식과 익공양식이 절충되어 시대적 변화와 추이를 보여주는 자료이다.(daum 2010)

 

  보문사 삼층석탑(普門寺三層石塔) [] : 보문면 수계리 158번지 보문사 극락전(極樂殿) 우측에 있는 고려 명종 때 세운 탑으로, 경북 유형문화재 제186(1984.12.29 指定)이다. 자연석 암반을 지대석(地臺石)으로 한 이중 기단(二重基壇) 위에 삼층으로 조성한 특이한 석탑이다.

 

  1185(명종 15)에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이 보문사(普門寺)를 재건하면서 나한전(羅漢殿)의 본존(本尊)인 석가존상(釋迦尊像)의 표증 석탑(表證石塔)으로 운계암(雲溪庵) 뜰에 건립한 것이다. 화강석으로 조성된 이 탑은 방형 중층(方形中層)의 일반형인데, 지대석(地臺石) 위에 기단부(基壇部)와 탑신부(塔身部), 상륜부(相輪部)로 나뉘어 있고, 전체 높이는 3.69m이다. 지대석은 길이가 3.37m이고, 둘레가 불규칙하게 다듬어져 있고, 본래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옮겨다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층 기단 지석(下層基壇地石)과 중석(中石)이 한 돌로 되었고, 중석 면석(面石)에는 두 우주(隅柱)와 각 면에 탱주(撑柱)를 하나씩 나타내었고, 지석에서 상면(上面)까지는 47cm, 갑석(甲石)의 한 변이 100cm이다. 상층 기단(上層基壇)의 높이는 67cm, 한 변의 길이가 100cm인데, 중석에는 우주 외에 각 면마다 민흘림 양식의 탱주가 하나씩 있고, 갑석 상면은 단면이 원형인 탑신(塔身) 받침을 두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한 돌이고, 각 층 옥신에는 우주가 있고, 4단의 옥개석은 낙수면(落水面) 받침이 있고, 처마 끝 낙수면은 평박하고 네 귀의 전각(轉角)이 가볍게 반전(反轉)되어 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등이 남아 있으나 복발과 앙화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이 탑에서 보이는 옥개 정면(頂面)에 괴임대 없이 윗 층의 옥신(屋身)을 받치고 있는 간략한 형식은 고려 초에서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서 볼 수 있는 수법으로 보조 국사(普照國師)가 세운 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文化財廳] : 보문사 경내에 있는 석탑 1기로, 극락보전 오른 쪽에 서 있는 3층석탑이다. 1185(명종 15) 승려 지눌이 절을 새 단장하면서 나한전의 본존불인 석가여래상을 증명하기 위해, 당시 경내의 운계암 뜰에 이 탑을 세웠다 한다. 땅 위에 커다란 자연석 암반을 두어 바닥돌로 삼고 그 위에 2층 기단과 3층 탑신을 올린 독특한 모습이다. 위 아래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들은 1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위로 들여 있다. 형식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의 기둥조각 수가 줄고, 지붕돌 받침수가 4단으로 줄어드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文化財廳 홈페이지 2002, www.ocp.go.k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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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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