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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864 : 보문초등학교 별설유치원...보문초등학교 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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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초등학교 병설유치원(普門初等學校竝設幼稚園), 유치원 [敎育] : 보문면 수계리 659번지에 있는 공립 유치원으로, 1983년 3월 1일에 설립하였다. 1학급, 1명의 교사, 16명의 원아(1983)가 있다. 원장은 초대 김종진이다.
보문초등학교 제6회동창회(普門初等 6回 同窓會 열려) [棋士] : 보문초등 제6회(51년 졸업) 동창회(회장 석재구)가 2005년 3월 20일 예천읍 송육숯불구이집에서 열렸다. 이 날 동창회에는 고향 동창 회원과 수도권 및 전국 각지에서 모인 회원 30여 명이 참석했다. 회원들은 모교에 들러 54년 전 졸업사진을 찍었던 자리에서 이충무공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뒤 우래자연휴양림을 찾아 학창 시절의 추억을 나누며 우의를 돈독히 했다. △회장 : 석재구 △총무 : 김사환 △출향 동창회장 : 석창현 △총무 : 김진기 박춘복(醴泉新聞 2005-04-01)
보문초등학교 제6회동창회(七旬 弟子 八旬 스승) [記事] : 40년 교직 생활에 퇴직 후 또다시 19년. 반세기를 훌쩍 지난 세월이었다. 이제는 크고 작은 일들이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큰 보람이자 자부심이었다. 이런 그에게 2007년 스승의 날은 남다르다.고 했다.해준 것 없는 자신을 스승이라며 56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찾아 준 제자들 때문이다. 주인공은 서울 방이동에 사는 김두호(84) 씨. 그는 2006년 여름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대구 수성구 상동 박춘복.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누굴까?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김씨의 주름진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래, 옛날 그 아이, 춘복이, 춘복이…. 맞아. 제자였다. 무려 56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였다. 김씨가 그동안 고이 간직해온 빛바랜 앨범을 뒤져 찾아낸 흑백 사진 속의 춘복이는 여전히 초등학생이었다. 그런 춘복이가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세로로 써내려간 붓글씨 편지는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과 건강 걱정으로 가득했다. [●팔순의 스승 해준 것 없는 날 찾아줘 감격] : 2006년 10월 김씨는 춘복이를 만났다. 혼자가 아니라 1951년 졸업한 경북 예천 보문초등학교 6회 졸업생들 가운데 연락이 닿은 16명이었다.
선생님의 야단을 무서워하던 까까머리 남자아이들은 이제 머리가 벗겨지고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칠순이 돼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집을 못 찾을까봐 떨어진 기력을 되살려 직접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저기! 우리 선생님 오신다! 그래 맞네. 똑 같으시네. 56년 만에 스승과 제자들의 인연은 이렇게 다시 시작했다. 김씨에게 이들은 특별한 아이들이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6세에 처음 교편을 잡고 만난 아이들이었다. 제자들에게도 김씨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선생님이었다. 한국전쟁 통에 학교가 폐쇄되자 한곳에 불러 모아 놓고 수업을 계속하신 선생님이었다. 방과 후 더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는 숙직실에서 먹고 자면서 밤늦게까지 가르쳐 주시던 분이었다. 박춘복(71․여) 씨는 6․25때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을 사람들이 어머니를 죽인 것을 보고 상처를 받아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는데,지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학교는 꼭 졸업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선생님 덕분에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강홍원(73) 씨는 선생님의 열성이 대단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선생님이) 생각했던 것을 다 하지 못하면 심하게 꾸중하셨다.며 아련한 추억을 더듬었다. 지금은 만났지만 60년 가까운 세월만큼이나 선생님을 찾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2004년 고향을 떠난 졸업생들이 동창회를 만들어 모이다 선생님 소식이 궁금해 찾아 나섰다. 그러나 선생님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년여 동안 수소문한 끝에 아직 건강하다는 소식과 함께 주소와 연락처를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칠순의 제자들 선생님 건강 제일 큰 걱정] : 스스로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칠순의 제자들이지만 이들에게는 팔순이 넘은 스승의 건강이 여전히 걱정인 듯했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만나기로 했지만 2007년 3월에는 노환을 앓고 있는 선생님을 모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진기(70) 씨는 선생님의 건강이 제일 큰 걱정이라면서 제발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속 모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김재천 記者 서울新聞 2007년 5월 15일)
보문초등학교 제19회동창회("보고싶다~ 普門初等 19回 同期들아") [記事] : 보릿고개, 몽당연필 / 연필깍지에/ 몽당연필을 꽂아/ 침을 발라 공책에 쓰다가/ 석유 등잔 밑에 잠들던/ 내 어린 날이 있었네/ 허리띠 조이며 넘던/ 그 배고픔의 시절/ 도시락 못 싸오는 그늘진 표정/ 내내 마음이 밟혔던/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보릿고개, 몽당연필,/ 그런 말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내 머리 속에는/ 그리움으로 다가오네/ <김영진/시인/성서원 회장>/ -보문초등 19회 동창회/ -일시: 6월19일(화) 오전 11시 30분/ -장소: 예천전화국 옆 '본가숯불식당/ -점심 식사 후 보문초등학교 방문할 예정(醴泉新聞 2007년 05월 31일)
보문초등학교 제19회동창회('半世紀 만의 뜨거운 抱擁' : '普門初等 19回 同期들' 1957年 卒業 後 첫 만남) [記事] : 전국에 흩어져 사는 보문초등 19회 동기들이 졸업 후 반세기 만에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코흘리개 귀여웠던 초등학생들은 어느새 예순 중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마주 앉았다. 2007년 6월 19일 낮 12시 예천읍 본가 숯불 식당에는 예천을 비롯 서울, 부천, 경남, 안동 등 곳곳에서 28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1957년 졸업 후 첫 만남. 식당 안은 금방 시끌벅적했다. 세월은 이미 50년을 훌쩍 달려갔지만 서로의 얼굴에서 개구쟁이 시절의 모습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듯 했다. 덕수야, 계선아, 순옥아, 영원아…. 사방에서 그리운 동기들의 이름을 마구 불러댔다. 남북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서로 부둥켜안고 안부를 물었다. 보문초등 19회 동기들은 입학 당시 73명이었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몇몇 친구들이 학업을 중단, 약 60여 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성서원 대표이자 새벗 발행인인 시인 김영진 씨와 침례교 남신도회 전국연합회장인 정정섭 씨, 세현사 대표 장사윤 씨를 비롯 많은 동기들이 지금까지 각계각층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보문사 주지 도문 스님도 동기다. 김영진(성서원 대표) 회장은 6․25 참화와 양식이 없어 풀뿌리를 캐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허기를 잊으려 애쓴 시절 귀한 추억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들이 그리워 이번 만남을 추진하게 되었다며 앞으로도 모두 건강하게 변함없이 정을 나누며 살자고 당부했다. 이날 동기들은 점심을 먹은 후 모교를 방문, 보물찾기하듯 어린시절 추억이 서린 교정을 둘러봤다. 복도 게시판에 걸린 교가를 보며 즉석 합창을 하기도 했다. 50년 만에 다시 불러보는 교가. 장사윤 씨는 감회에 젖어 연신 눈언저리를 씻어냈다. 이들은 친구 김옥자 씨가 빚어온 떡을 맛있게 먹은 뒤 예천읍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 뒤 8시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권오근 記者 醴泉新聞 2007년 06월 21일)
보문초등학교 제48회동창회(醴泉 普門初等學校 48回 同期會 發隊式) [記事] : ▶예천 보문초등학교 48회 동기회 발대식=13일(토) 오후 7시 대구 산들마을식당.(每日新聞 2013-04-11)
보문초등학교 총동문회(普門初等學校 總同門會 創立總會) [記事] : “소백산 줄기에 향기로운 학가산 우렁찬 동쪽으로 솟아올라서 아름다운 멀량골 끌어주었네. 에헤야 만세. 우리의 보문 학교” 2012년 4월 29일 오전 폐교된 보문초등학교(김영진 문학관) 교정에서 교가 합창이 울려 퍼졌다. 보문초등 총동문회 창립총회에 참석한 동문들이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한 목소리로 부른 교가였다. 이날 창립총회에는 김영진 한국기독교문인협회장, 정교환 전 경주교육장, 김석기 예천초등 교장, 안병윤 행정안전부 서기관, 김도현 동방환경산업 대표 등 모교 출신 인사들과 동문 5백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또 이한성 국회의원, 도기욱 도의원, 조경섭 군의원, 김장식 예천축협장 등 지역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해 뜻 깊은 창립총회를 축하했다. 이날 선출된 김대학(21회·전 예천중 교사) 회장은 “동문들이 모교가 폐교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도록 총동문회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총회에 이어 2부에서는 기별 장기자랑 등을 통해 동문 간 친목을 다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한편 지난 1935년 7월 20일 개교한 보문초등학교는 2008년 3월 폐교 때까지 총 3천1백3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회장단 △회장: 김대학(21회) △상임부회장: 김재식(24회) △사무국장: 장희덕(29회)(醴泉新聞 2012년 05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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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