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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876 : 보주...(부,예천읍 용호공인중개사사무소 이승훈, <道·可道>를 출간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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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주[記事] : 태사묘/ 건축이야기/ 명칭 : 태사묘 (太師廟)/ 현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23, 24-1/ 소유자(관리자) : 관리위원회/ 문화재 :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1974년 12월 10일 지정/4,035㎡)/ 건축 배경 : 오늘날 안동을 이야기할 때 삼태사(三太師)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동권씨, 안동김씨, 안동장씨 등 안동을 대표하는 3성씨의 시조를 일컫는다. 이들은 권행(權幸),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 세 사람으로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한판 승부를 벌인 병산전투에서 왕건을 후원하였던 대표적인 안동지역의 호족들이었다. 이에 삼태사는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으로 봉해지고 안동김씨, 안동권씨, 안동장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들의 활약을 높이 평가하여 안동은 고창군에서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안동도호부가 되었는데, 이에 속했던 현은 모두 11개로 흥주(순흥), 의흥현(군위), 기천현(풍기), 은풍현(예천일부), 봉화현, 의성현, 강주(영주․순흥 일부), 보주(예천), 예안현, 의인현(예안 일부), 안덕현(청송) 등이었는데 당시 안동지역의 범위를 추정할 수 있다. 태사묘는 이렇게 발전한 안동의 토대를 일군 이들 삼태사들의 영혼을 기리고 안동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건축 특징 : 태사묘는 안동시 북문동24-1에 소재하여 대지 1229평, 지상에 태사묘우(太師廟宇), 숭보당(崇報堂), 경모루(景慕樓), 동재(東齋), 서재(西齋), 주사(廚舍), 전사청(典祀廳), 안묘당(安廟堂), 보물각(寶物閣), 차전각(車戰閣)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고,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태사묘우는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에 퇴칸이 없는 경건한 사당 건물이다. 숭보당은 팔작지붕기와집으로 정면 5칸에, 좌우측에 온돌방이 놓여 있고 가운데 3칸이 대청마루인 전형적인 강당식 건물이다. 경모루는 2층의 누문 형태인데 아래층은 삼문의 형식으로 이곳이 위패를 모신 신성공간임을 나타낸다. 2층 겹처마에 팔작지붕기와집이다./ 건물 구성 : 정문 경모루로 누각 건물로, 이곳을 들어서면 전면에 숭보당(강당)이 있고, 좌우로 동․서재가 있으며, 그 뒤쪽으로 태사묘(사당)가 독립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왼쪽의 별도 공간에 전사청과 보물각이 자리 잡고 있다.
보물각에는 보물 제451호로 지정된 삼태사(三太師)의 유물 12종 22점이 보관되어 있다. 숭보당 안에는 퇴계 이황(李滉)이 지은 중건기문 등이 게판 되어 있고, 묘정에는 삼공신비(三功臣碑)가 세워져 있다./ 현판 : ‘태사묘(太師廟)’는 삼태사를 모시는 사당의 당호이다. ‘숭보당(崇報堂)’은 태사묘의 강당 건물의 당호이다. ‘경모루(景慕樓)’는 태사묘의 정문에 해당되는 누문으로 튼튼하고 묵직하게 써진 해서체이다. ‘안묘당(安廟堂)’은 임진왜란 때 삼태사의 위패를 안전하게 모신 순흥안씨 안금이를 모신 사당의 당호이다. ‘삼공신묘중수기(三公臣廟重修記)’는 숭보당 안에는 이황(李滉)이 지은 중건기문이 편액으로 걸려 있다. ‘태사묘중건기(太師廟重建記)’는 권상규(權相圭)가 지은 중건 과정을 걸어 놓았다. ‘삼공신비(三功臣碑)’는 묘정에는 삼공신비(三功臣碑)가 세워져 있다./ 관련인물/ - 김선평(金宣平, 901~?) : 고창군 성주(城主)로 930년(태조 13) 태조를 도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고창군에서 대파하는 데 공을 세워 대광(大匡)이 되고, 이에 고창군은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 - 권행(權幸, 미상) : 본성(本姓) 김(金)씨. 본래 신라에 속하였고, 뒤에 후백제(後百濟)의 지배하에 있던 고창(古昌:安東)의 수령(守令)으로 있다가 견훤(甄萱)이 신라 경애왕(敬哀王)을 자살하게 한 데 대해 분개하던 중 930년(고려 태조 13) 고려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무찌르는 데 가담하여 공을 세웠다. 이에 태조로부터 권씨(權氏)의 성(姓)을 하사받고, 삼한벽상삼중대광(三韓壁上三重大匡)의 계(階)를 받았다. 그리고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되고, 동궁(東宮)의 스승인 정1품 태사(太師)의 벼슬에 올랐다.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이다. 장정필(張貞弼, 898~978) : 호는 포음(圃陰)으로 처음 이름은 길(吉)이었다. 888년(신라 진성왕 2) 중국 절강성(浙江省)에서 태어났다. 경순왕 4년 후백제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이 고창의 병산 (甁山:지금의 안동 가수천)에서 부딪칠 때 권행, 김선평과 함께 왕건을 도와 크게 이겼다. 이 싸움에서 견훤의 군사는 8천 여 명이나 죽었다. 장정필은 그 뒤 인동(仁同)에 물러가 강학 하다가 만년에 안동으로 옮겨 경종 3년에 죽으니 향년 91세였다. 안동부(安東府)의 백성들이 그 공덕을 추모하여 사당을 세워 삼태사(三太師)를 함께 제사한다. 930년 태조가 안동에서 견훤(甄萱)을 토벌할 때 세운 공로로, 권행과 장정필은 대상(大相)이란 벼슬을, 김선평은 대광(大匡)이란 벼슬을 받았다.(www.koreastudy.or.kr 2007)
보주[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3) 각현 연혁(各縣 沿革)/ 고려시(高麗時) 소속(所屬) 열한 현(縣)/ 보주(甫州) 지금의 예천(醴泉)이다. 현종(顯宗)이 안동에 예속시켰는데 명종(明宗)이 기양(箕陽)으로 고치고 승격시켜 현령(縣令)으로 하였다.(www.koreastudy.or.kr 2007)
보주[記事] : 甫州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 사전자료이다./ 1. 보주(甫州) [한국역사지명사전]/ 한국역사지명사전 편찬위원회 저 | ㈜누리미디어/ 한국역사지명사전 > 한국역사지명사전 본문 > 한국역사지명사전 > 바[박가별라(朴加別羅)~빙산사(氷山寺)] > 보주(甫州)// 2. 기양현(基陽縣) [한국역사지명사전]/ 한국역사지명사전 편찬위원회 저 | ㈜누리미디어/ 한국역사지명사전 > 한국역사지명사전 본문 > 한국역사지명사전 > 가[광풍루(光風樓)~김화현(金化縣)] > 기양현(基陽縣)// 3. 강맹경(姜孟卿) [한국인명대사전]/ 한국인명대사전 편찬위원회 저 | ㈜누리미디어/ 한국인명대사전 > 한국인명대사전 > 한국인명대사전 > 가[가군(加群)~고연수(高延壽)] > 강맹경(姜孟卿)// 4. 예천군(醴泉郡) [한국역사지명사전]/ 한국역사지명사전 편찬위원회 저 | ㈜누리미디어/ 한국역사지명사전 > 한국역사지명사전 본문 > 한국역사지명사전 > 아[아곡현(阿曲縣)~오관(五關)] > 예천군(醴泉郡)// 5. 바[박가별라(朴加別羅)~빙산사(氷山寺)] [한국역사지명사전]/ 한국역사지명사전 편찬위원회 저 | ㈜누리미디어/ 한국역사지명사전 > 한국역사지명사전 본문 > 한국역사지명사전 > 바[박가별라(朴加別羅)~빙산사(氷山寺)]//
◆ 예천읍 용호공인중개사사무소 이승훈, <道·可道>를 출간함...축하합니다.
이승훈(예천읍 이승훈 씨 '道·可道' 출간) [기사] : 천지창조 이전의 오묘한 진리 '도', 천지창조 이후 걸어갈 진리 '가도'/ 완풍대군 양도공 만취당 15세 손 이승훈(76·예천읍 용호공인중개사사무소) 씨가 도가에 입문하여 수련을 이어오면서 신용호비결 1, 2, 3권의 수련서와 『도덕경』에 이어 이번에 『道·可道』를 출간하였다. 영광군 묘량면 출신의 저자는 2008년 중국의 요녕성 대련에서 은사인 왕리핑(王力平)사부를 만나 중국을 오가면서 전진도룡문파(全眞道龍門派)에 입문 왕노사(王老師)로부터 사사받았다. '道'란 무엇인가? '도(道)'라는 것은, 무극의 홍몽한 기운이 혼원(混元)으로 아직 갈라지지 않은 즈음이고. 선천에서 후천으로 아직 나타지지 않은 때이고 하늘과 땅의 형상이 없었던 때이고 해와 달의 밝음이 없고 음양의 2氣가 분판되지 않고. 만물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의 조짐(兆朕)이 '도(道)'이다. 이것은 우주가 생성되기 이전의 원기(元氣)이고 천지만물의 근본이며 모든 조화의 중추가 된다. 《道德經》 제25장에서는 "혼연하게 이루어진 하나의 형상이 있는데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고 쓸쓸하여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이 변함없이 쉬지 않고 운행하니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글자로 나타내기 위하여 '道'라고 말 한다"고 했고, 도교 경전인 《太上老君說常淸靜經》에서는 대도는 형상은 없으나 하늘과 땅을 낳고 자라게 하며, 대도는 정이 없으나 해와 달을 운행하고 대도는 이름이 없으나 늘 만물을 길러낸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해 억지로 도라고 하였다.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자연의 섭리를 알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면 자연을 초월할 수 있다. 이것의 지름길은 '도'를 수련하는 것이다. 여기서『도·가도』서문의 일부를 인용하겠다. "자연自然! 즉 하늘과 땅, 해와 달, 온갖 만물이 한 치의 오차나 쉼이 없이 운행되는 것,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작용이다. 만약 이 자연들이 오차가 발생해서 아침에 당연히 떠올라야할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가정해 본다면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이다. 자연은 이렇게 그 무엇도 대신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해내고도 자기의 공을 드러내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모든 자연작용을 당연시한다. 그렇다. 당연하다는 것에 이의는 없다. 다만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해야하며 최소한 자연을 지키는 노력만큼은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도'의 수련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지향하며 자연의 순리를 따르면서 자연을 초월하게 되고 자연위에서 영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그 무엇도 할 수 없으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예천신문 20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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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