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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887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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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풍속을 보지 못하고, 농악대(農樂隊)에서 벙거지를 쓰는 예가 있다. 이상 기술한 복식 중 사인복(士人服), 유생복(儒生服), 평민복(平民服) 등은 모두 넓은 소매이고, 번거러운 관모건(冠帽巾)으로 되어 있어 극히 비활동적인 복장이었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 대원군 섭정에 의하여 의복 제도가 개혁되었다. 이 때 주의(周衣)나 도포(道袍) 등의 넓은 소매(廣袖)를 좁은 소매(狹袖)로 고치게 하였고, 동냥갓(大笠)을 작은 갓(小笠)으로 긴 담뱃대(長竹)를 짧은 담뱃대(短竹)로 대선(大扇)을 소선(小扇)으로 변경하여 복식 제도를 활동적인 모습으로 고치기에 힘썼다. 대원군의 복제 개정 이후 또 색의 장려(色衣獎勵)가 있었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변경을 보았고, 특히 계급적 차별이 일소되어 오늘날과 같은 전형적인 남자 복식이 성립되었다. 이 전형적인 남자 복식은 모자를 쓰는 '젊은이 복식'과 '늙은이 복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5) 젊은이의 한복(韓服) : 청장년기의 한복은 바지를 입고 양말을 신고, 대님과 허리띠를 맨다. 또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조끼를 입고, 마고자를 덛드려 입는다. 그리고 두루마기(周衣)를 입고 모자(中折帽)를 쓰고 고무신이나 구두(洋靴)를 신는다. 한복이라 하지만 양말, 모자, 구두 등 반 정도는 외래의 양식을 채택 혼용하고 있는 셈이다. (6) 노인 한복 : 노인층에는 청장년에 비하여 양복(洋服)을 착용하는 예가 적고, 한복을 착용하는 예가 많다. 바지를 입고 버선을 신고, 대님과 허리띠를 맨다. 또 저고리를 입고 조끼를 포개 입고, 그 위에 마고자를 덛드려 입는다. 그리고 두루마기를 입고 갓(眞絲笠)을 쓰는데 상투가 있는 노인은 망건(網巾)을 쓰고 갓을 쓰고, 상투가 없이 머리를 깍은 노인은 탕건(宕巾)을 쓰고 갓을 썼다. 이들 노인 복장은 대개 백의 흑관(白衣黑冠)으로 전형적인 한복을 착용하였다. (7) 관모건(冠帽巾) : 옛날에는 사대부(士大夫) 집에서 여러 가지 관(冠), 모(帽), 건(巾)을 사용하여 왔다. 과거 급제 때의 복두, 관직자의 사모(紗帽), 무관(武官)의 주립(朱笠)과 전립(戰笠) 등이 있었고, 또 각 사서리(司書吏)의 평정건(平頂巾), 역졸(驛卒)의 초립(草笠, 黑色)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옛 제도로서 지금은 보기조차 드문 것들이다. 최근까지도 유학자들 간에는 정자관(程子冠)과 동파관(東坡冠)과 유건(儒巾)이 애용되고 있다. 그리고 갓은 가장 많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그 종류는 진사립(眞絲笠), 음양사립(陰陽絲笠), 음양립(陰陽笠), 포립(布笠) 등이 있다. 그리고 탕건(宕巾), 망건(網巾)을 쓰고 갓을 쓰게 된다. 2) 여자 복식 : 남자의 복식이 중국의 영향을 입어 이중(二重)의 흐름이 있었음에 비하여 여자의 복식은 항상 보수적이었고, 고유한 습속(習俗)이 유지되어 전통적인 양식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계속되었다. 양장(洋裝)을 하는 등 초현대적인 복식 방법으로 전환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여성 복식은 전형적인 한복을 입고 있다. 여자의 기본 복식은 치마와 저고리이다. 이 밖에 속옷으로 '속속곳' 또는 '바지'를 입고, 그 위에 '단속곳'을 입고, 또 그 위에 '속치마'를 입고, 윗도리는 '속적삼'을 입는다.
겉에는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버선을 신는다. 그리고 '마고자'를 입기도 한다. 노인층에서는 머리에 '이엄(耳掩)', '조바위', '남바위' 등을 쓰기도 한다. 여자의 복식은 미(美)를 얻는데 중점을 두었다. 종전의 사대부 집 부녀는 '삼회장저고리'에 '금박문(金箔紋) 수란치마'로 성장한 복식과 '단회장 저고리'에 '삼작(三作)노리개'를 달고 6칸 대청에 '열두 폭 스란치마'를 끄는 아름다운 극상의 복식미(服飾美)이었다. 지금의 여성 복식에 있어서 고전미(古典美)의 전통을 이어받아 소박한 차림에 행주치마를 두르고 가사를 돕는 조촐한 복식과 현대식으로 성장하고 핸드빽을 들은 우아한 복식이야 말로 현대 여성미의 극치라 하겠다. 여성의 미를 나타내는 한복식(韓服式) 중에서도 특히 저고리와 치마에 그 아름다움을 담았고, 또 그것이 기본 복식(基本服飾)이 되어 왔다. 이에 저고리와 치마에 대하여 살펴 보자. (1) 저고리 : 이는 고분 벽화에 보이는 고구려의 '유'와 <삼국사기>에 보이는 신라의 단의(短衣)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저고리는 몽고 복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학자 간에 주장되어 왔고, '저고리'라는 명칭이 문헌에 나오는 것은 조선초 세종 때로, 이의 성립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일 것이다. 몽고식 저고리는 신라의 단의(短衣) 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섶이 더욱 짧아지게 되었다. 그것이 조선 중엽의 저고리의 특색을 말한다면 직배래이었고, 조선 말기의 저고리는 직배래에 단섶으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배래'와 '도련'이 곡선을 취하였고, 섶이 길어졌다. 특히 현대의 저고리에 있어서도 4-50년 전의 모습에 비한다면 지금의 저고리가 현격한 곡선을 보이고 있어서, '배래'는 포의(袍衣)의 광수(廣袖) 모습에 가까운 곡선을 취하였고, 도련 역시 그 곡선의 도가 높아졌고, 따라서 소매가 넓어지고 섶이 더욱 길어졌다. 그리고 깃과 섶이 넓어졌다. 그래서 저고리가 과거의 직선미에서 곡선미에로 전환하였다. 저고리의 종류는 여러 가지로 구별할 수 있으나, 옛부터 '반회장 저고리'와 '삼회장 저고리'로 구분할 수 있다. '반회장 저고리'는 '끝동'과 '깃'과 '고름'을 다홍색이나 자주색으로 달은 것인데, 민간인들이 많이 입던 것이다. 또 끝동, 깃, 고름 등을 전례와 같이 하고 '곁막이'를 다홍색 혹은 자주색으로 달은 것은 '삼회장 저고리'로서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궁중에서 많이 착용하던 것이다. 그리고 끝동, 깃, 고름 등에도 수복(壽福), 부귀(富貴), 화문(花紋) 등금박문(金箔紋)을 넣어서 더욱 아름다움을 자아내는데 힘쓰고 있다. 회장저고리는 남편이 있는 부인이 입을 수 있고, 상부(喪夫)한 과부(寡婦)는 입을 수 없고 평생을 소복 수절(素服守節)하는 습속이 있으니 '회장저고리'의 다홍색 또는 자주색의 끝동, 깃, 고름에는 부부 애정이 담겨지기도 하고,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유학 사상의 표시이기도 하다.
한국의 순수한 모양을 갖춘 저고리에서 양식(洋式)을 가미하여 새로운 양식을 구상하는 예가 있다. 즉 양복 상의의 모습을 따서 안깃과 겉깃의 구별이 없고, 또 안섶과 겉섶의 구별이 없이 좌우 대칭적인 같은 모습으로 재봉하고 양측 도련을 원형으로 둥글게 곡선 처리하여 저고리섶을 겹치게 여미는 것이 아니라 마주 접하여 고름을 매지 않고, 부로찌로 잡아 매도록 하였다. 한복을 자기 뜻대로 드레스로 변제(變製)하여 입는 일이 있으니, 이를 '아리랑 드레스'라고도 하여 파티 복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2) 적삼(赤衫) : 이는 겨울철에 저고리 속에 입는 것이어서 '속적삼'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겨울철에 샤쓰 등 내복을 입는 까닭에 속적삼은 없어지고, 여름철에는 양장(洋裝)하는 여성이 많아 '여름적삼'이 희소하여졌다. 그러나 여름철에 한복을 입는 여성들이 아직도 적지 않으니 이들 여성들에게 적삼이 애용되고 있다. 옛날에는 무명적삼, 옥양목적삼, 모시진솔적삼 등을 입었는데, 특히 모시진솔적삼을 즐겨하였고, 삼복 더위 한여름에는 삼베적삼, 생명주적삼, 모시적삼, 춘포적삼, 황나적삼 등 살이 비치고 시원한 복지를 입었고, 색의(色衣)보다는 백의(白衣)를 많이 입었다. 그런데 요즘은 옛과 같은 가내 직조(家內織造)에 의한 복지는 드물고 공장 자산품인 화학사 복지가 이용되고 역시 하절 옷인 관계로 색의(色衣)보다 백색이 많다. 적삼의 형태는 저고리의 형태와 동일하고 다만 고름을 달지 않고 단추를 맺여 달았는데, 요즘은 저고리에도 적삼에도 뿌로찌를 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반소매의 '개량 적삼'을 고안하여 새로운 형식의 '개량 적삼'을 입는 일이 있는데, 땀이 흐르고 혹서(酷暑)에 적합하고 작업에 편리하다. 즉 앞섶을 구분하지 않고 깃과 동정은 종래의 적삼과 같이 하고, 양소매와 어깨와 화장을 양재식(洋栽式)으로 하였다. (3) 치마 : 이는 '상(裳)'과 '군(裙)'에 해당하는 것으로, 신라에서는 '표상(表裳)'과 '내상(內裳)'이 <삼국사기>에 보인다. 현대 여자 복식에 있어서 치마는 고정적인 청홍상(靑紅裳)과 수란치마가 있고, 현대적인 것으로 자락치마와 끈허리치마가 있고, 개량형인 것으로 통치마, 어깨허리치마 등이 있다. ① 청홍상(靑紅裳)이나 수란치마 : 이는 치마의 최고급으로 생각하여 온 것으로 조선 시대의 사대부 집에서 애용하던 것이다. 요즘은 활동적이기 때문에 혼인 때의 예복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긴 치마를 끌고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고, 또 양단 등 고급 비단을 안받쳐 입기도 하고, 치마 단(端)에 수를 놓아 입기도 하고, 치마 끝에 딴 단을 달아 입는 등의 습속이 보이는데, 이는 종래의 수란치마에서 오는 습관이 남아있는 것 같다.
② '자락치마'나 '끈허리치마'는 모두 전형적인 치마로서 한말에 치마자락이 길어서 걸을 때에는 치마자락을 손으로 걷어 올려서 잡고 걷거나 그렇지 않으면 치마자락을 가슴밑에 수북히 걷어 올려 허리띠로 매고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치마는 활동에 불편하기 때문에 요즘은 치마를 원통으로 꼬매어 활동에 편리하게 꾸민 개량형인 '통치마'에 대하여 치마자락이 광포(廣布) 모습으로 된 것을 '자락치마' 또는 '폭치마'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자락치마'는 대개 '끈허리'를 달았으니, 이를 '끈허리치마'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치마를 입는 방법으로 신분을 표시하는 예가 있었으니, 곧 양반집 여자는 치마의 속자락을 오른쪽으로 곁자락은 왼쪽으로 돌려 여미는 것이 있고, 상민(常民)과 천인층 여자는 이와 반대로 속자락은 왼편으로, 겉자락은 오른편으로 돌려 여미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계급을 구별 표시하였는데, 계급 제도와 그 관념이 없어짐에 따라 전자의 양식으로 통일되었다. ③ 통치마 : 이는 활동을 돕기 위하여 치마 폭을 좁히고 치마 길이를 짧게 하고 원통으로 꼬매어 마치 양장(洋裝)의 스카트와 같이 종아리가 들어 나도록 활동에 편리하게 한 것이다. 통치마의 허리는 끈이 아니고, 호크를 달아 호크를 잠그게 하기도 하고, 또는 남자의 조끼 모양으로 된 '어깨허리'를 달아 어깨에 메게 한다. '자락치마'와 '끈허리치마'는 가정 부인측에서 많이 입고, '통치마'와 '어깨허리치마'는 처녀 또는 직장 여성측에서 많이 입는다. 여자의 의복에서 저고리와 치마에 중점을 두고 복지도 훌륭한 비단을 택하고 모양도 맵씨있게 만들어 입어 앞뒤로 태를 내려한다. 복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미를 나타내려고 힘쓰는 것은 남성측보다 여성측이 더 하다. 3) 어린이의 복식 : 이에 있어서 옛날에는 모두 전형적인 한복을 입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어린이 복식이 모두 양복 또는 양장으로 변하였고, 전형적인 한복이라는 것은 보기 드물다. 특히 어른보다 어린이 복식은 양식화하여 있는 형편이고, 여아보다 남아가 양복을 더 많이 입고 있다. 다만 설 때의 '때때옷'이나, 돐의 복식은 전형적인 한복을 입는 예가 많다. (1) 남자복 : 바지를 입고 버선(돐 때는 타래버선)을 신고, 대님을 매고 허리띠를 맨다. 그리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조끼를 입고, 그 위에 쾌자(快子)를 입고 술띠를 띤다. 머리에 복건(幅巾)을 쓰는데, 이는 수복(壽福), 부귀(富貴) 등 금박문(金箔紋)을 한 것을 쓰고, 쾌자(快子)는 성인의 전복으로 '등솔'이 길게 째어지고 소매가 없는 것이니, 이 쾌자를 입는 것은 씩씩한 남아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2) 여아복 : 바지를 입고 버선(돐 때에는 타래버선)을 신고, 기다란 '자락치마'를 입고,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특히 여아 복식에 있어서는 색동저고리의 고름과 깃에 수복문(壽福紋)과 화문(花紋)을 놓는 것이 특색이고, 또 꽃신을 신는다. 그리하여 색채와 선은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풍려(豊麗)한 맛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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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