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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918:봉산정...
작성자장병창 @ 2022.09.03 06:11:56

  도청신도시 예천 1,918 : 봉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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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산정(鳳山亭) [亭子] : 1) 예천읍 통명리 학암(鶴岩) 아래에 있는 정자로, 안동인 김원한(金元漢, 1857-1915)이 반환(盤桓)하던 곳을 추모하여 아들 익동(翼東)1934년에 세웠다. 정면 3, 측면 1.5, 목조기와 팔작지붕이다. 이 정자가 있는 곳을 황서바라고 하며, 이곳의 큰 느티나무를 사람들은 백두나무라고도 한다. 정자 앞에 있는 개울은 동본2리 오빡골못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데, 그 개울의 바위에 "봉산동천(鳳山洞天)"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원운(原韻)이 있고, 기문은 목산족도 병현(牧山族徒炳玹)이 찬하였다(조선환여승람 1929, 군지 1939). 2) 용궁면 덕계리 400번지 덕봉에 있는 정자로, 왕의산(王衣山) 아래 덕봉마을 앞에 있다. 성주인 봉산 도수장(鳳山都壽長, 1683-1758, 成均生員)이 휴양하려고 창건하였다. 그 후 폐허되었던 것을 1934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정면 5, 측면 2, 와가 팔작(瓦家八作)지붕이다. 현판 3자는 19344월에 맹우 죽계 안재련(孟友竹溪安在漣)이 썼다. 기문은 권상규(權相圭)가 지었다. 도수장의 자는 형일(亨一), 호는 봉산(鳳山), 현감 이억(以億)9세손으로 40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을 하였으나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영광과 국록(國祿)을 사절(辭絶)하고 은거(隱居)하였다. 행의(行誼)로 장수(藏修)하는 현판(懸板)을 걸고 밭을 갈고 책을 읽는 즐거움으로 산림에 숨어사는 장소로 폐몰된 것을 1934년에 후손이 중건하여 그의 호를 따라 봉산정이라 하였다(교남지 1937). 3) 호명면 금릉리(金陵里) 큰마 뒤 봉황산(鳳凰山) 아래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엄고 이무성(嚴皐李茂成, 훈련원첨정, 1627-1665), 동고 이효성(東皐李孝成, 1630-697) 형제의 유덕을 추모하여 무성의 7세손 재현(載鉉), 효성의 8세손 연우(淵雨, 1891-?)1957년에 지어서 종유(終遊)하던 곳이다. 기문은 아주거사 김진수(亞州居士金晋洙)가 찬했다. 이연우의 자는 원팔(源八), 호는 문암(文岩), 참봉 근현(參奉根鉉)의 장자이다. 연우의 아들 상직(相直)<당기지병서(塘記誌幷書)>를 지었고, 묘는 망곡 정좌(望谷丁坐)에 있다.

 

  봉산정(鳳山亭) [亭子] : 예천읍 통명리 산141번지() ‘학바위아래에 있는 정자로, 안동인 김원한(金元漢)을 추모하기 위하여 아들인 김익동(金翼東)1934년에 건립하였다. 정자는 정면 3,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경사진 대지 위에 건립한 까닭에 전면주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평면은 어간(御間)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건물의 3면에는 퇴(退)를 두르고 평난간(平欄干)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겹처마집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봉산정(鳳山亭) [亭子] : 용궁면 덕계리 409번지 소재, 1934년에 중건하고 근년에 중건한 정면 5,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전면에는 넓은 방지를 두고 나머지 3면에는 토석담장을 둘렀는데, 우측 담장 사이에는 사주문을 세워 출입케 하였다. 평면은 어칸 3칸을 대청으로 꾸민 후 양측 칸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봉산정(鳳山亭) [亭子] : 용궁면 덕계리 덕봉(德峰)에 있는 정자로, 성주인 현감 도이억(都以億)9대손인 봉산 수장(壽長)40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명리를 구하지 아니하여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 행의로 장수(藏修)’라는 현판을 걸고, 경문 독서의 낙으로 숨어 살았는데, 폐몰(廢沒)된 것을 1934년에 후손이 중건하여 봉산정이라 하였다. 안동 권상규(權相圭)의 기문과 순흥인 안재련(安在璉)의 판문(板文)이 있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봉산정(醴泉德溪里 鳳山亭) : *위치 : 예천군 용궁면 덕계리 443(덕계1 71-1), *연대 : 1934년 중건, *규모 : ‘-’자형 정자 1, 사주문 1/ 봉산정은 용궁면 덕계리에 위치하며, 덕계리는 성주도씨의 세거지이다. 봉산(鳳山) 도수장(都壽長)은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을 사양하고, 덕계리에 봉산정을 세워 은거하며 수신(修身)하였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폐허가 되었는데, 1934년 후손들이 유덕을 추모하여 중건하였다. 1953년 후손 도준희(都俊熙도세섭(都世燮도인섭(都麟燮도광훈(都光壎) 등이 안동인 권상규(權相圭)에게 기문(記文)을 의뢰하였다. 덕계리(德溪里)의 옛 지명은 덕봉(德峰)이다. 덕봉은 성주 도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과거에는 150가구가 살았으며, 현재는 60가구 정도가 된다. 마을의 주산인 뒷산에는 고려 말 공민왕 관련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주산은 어의산(御衣山, 해발 340m)으로 병픙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데, 1361(공민왕 10) 홍건적의 난을 피해 복주(福州, 安東)로 몽진할 때 이 산에 이르러 소나무에 옷을 걸어 놓고 쉬어 갔다 하여 부르게 되었다. 주민들은 그 위치를 동쪽 끝봉이라고 한다. 봉산은 만학(晩學)으로 마을에서 서당을 지어 훈학(訓學) 생활을 하였다고 하며, 서당이 있는 지역은 오늘날도 서당골로 불린다. 봉산정은 오늘날 마을 입구에 위치하여 그 앞에는 연지(蓮池)가 조성되어 있다. 이 연못가로 아름드리 수양버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절경을 이루었다고 하나 현재는 연못의 규모도 축소되고 연못의 바닥은 시멘트로 새로 조성되었다.

 

  봉산정이 있는 덕계리는 용궁면과 예천읍을 연결하고 있는 924번 지방도로 경서로에서 북동쪽 개포역을 향한 예성로와 예성로 북측 덕계리를 향한 왕의산로와 덕계1길을 따라 접근한다. 덕계1길은 봉산정 앞에서 둘로 갈라진 후 마을의 가옥들을 향한다. 봉산정은 마을의 초입에 위치하여 동남향을 하고 있으며, ‘-’자형 정자 1, 사주문 1채로 구성되어 있다. 조산정은 정면을 제외한 삼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두르고 있으며, 정면은 철망을 쳐서 담장으로 삼았다. 전면의 철망 안쪽에는 향나무 네 그루가 있고, 너머에는 연지와 논이 있다. 좌측 토석담장에는 사주문을 세워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문 앞에는 덕계보건진료소와 덕계1길이 지나고 있다. 우측 토석담장 너머에도 마을 안길이 지나고 있고, 배면에는 논이 펼쳐져 있다. 사주문은 자연석 주초 위에 사각형 기둥을 세워 상부 가구를 받도록 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이다. 사주문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안마당 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봉산정은 전퇴가 있는 정면 5, 측면 2칸의 ‘-’자형 누정건축물이다. 평면은 전면에 툇마루를 꾸미고, 중앙 마루간 좌우에 온돌방을 배열하고 있다. 정면의 툇마루는 정면 기둥 밖으로 마루 끝을 확장한 후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그리고 봉산정은 좌우측면과 배면 기단 위에 쪽마루를 꾸민 후, 툇마루의 좌우측면에 한 짝 우리판문을 달아 내부로 출입하도록 했다. 중앙의 마루간은 4칸 반 규모이며, 바닥은 툇마루처럼 우물마루이며. 정면 3칸에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고 상부에 교창을 꾸며 놓았으며, 배면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아 놓았다. 좌우 온돌방은 마루간 쪽에도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았으며, 툇마루 쪽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으며, 좌우측 벽면에도 외여닫이 띠살창문 2개씩을 달았다. 봉산정의 기단과 기단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는데, 기단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면의 낮은 기단 위의 상단의 주초는 자연석주초인데, 정면의 자연석주초 위에는 원형기둥이 있고, 나머지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정면 열의 원기둥 상부와 마루간 배면 기둥 상부는 직절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으며, 나머지 좌우측면과 배면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봉산정의 가구는 일고주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 있다. 처마는 전면만 겹처마이고, 나머지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봉산정의 목재는 토육색으로 단청을 하였고, 목부재 마구리는 흰색으로 칠했다. 벽면과 서까래 사이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툇간 중도리에는 鳳山亭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간에는 鳳山亭記’ ‘花水堂’ ‘原韻편액 등이 걸려있다. 봉산정은 1934년 중건된 건물로 인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사용 및 관리하고 있으므로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따라서 봉산정은 이들 건물에 적합한 활용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지원 육성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건축적 가치가 지속될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 216-218)

 

  봉산정(鳳山亭) [亭子] : 호명면 금릉리 소재, 경주인 이무성(李茂成), 이효성(李孝成) 형제를 추모하기 위하여 1957년에 건립한 정자로, 설름 뒷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3,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시멘트로 마감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모두 각주를 사용하였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장혀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봉산정(鳳山亭) [亭子] : 호명면 금릉리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암고(岩皐) 이무성(李茂成) 형제를 기리기 위해 후손이 세웠다. 정면 3, 측면 1.5,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봉산정(鳳山亭 增築 祝賀宴 열어 : 醴泉邑 通明里...漢詩 짓고 忠孝 論하던 遺緖깊은 곳) [記事] : 2006423일 오전 예천 선비들이 시를 짓고 충효를 논하던 대표적 장소인 예천읍 통명리 봉산정(鳳山亭)이 새롭게 단장해 첫선을 보였다. 이날 증축 축하연은 봉산정을 지은 김익동 옹의 아들인 김복현(78) 씨 형제들이 마련했으며, 김주일 전 외교통상부대사와 안동*영주 인근 지역의 안동김씨 문중, 마을 주민 등 70여 명이 참석해 선인들의 뜻을 기렸다. 김복현 씨는, 󰡒어린 시절 봉산정 주변에는 연못이 있고 소나무와 대나무, 바위가 어우러져 운치가 있었다.󰡓, 󰡒인근 각지의 문사들이 모여 화전도 하고 시회도 가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회상에 젖었다. ,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낡고 파손된 것을 이제서야 고쳐 선친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조금은 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봉산정은 지난 1934년 보문면 신월2리에 있던 반씨 문중의 정자를 김익동 옹이 구입해 선친의 묘소가 있는 예천읍 통명리로 옮겨지었다. 주위의 풍경이 빼어나고 김익동 옹의 인품과 학문을 흠모하는 문사들이 즐겨 찾아와 한시를 짓고 충효를 논하던 장소로 지역의 학동들이 학문을 배우는 학습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의 풍상에 폐허로 변한 것을 아들인 김복현 씨 형제와 안동김씨 일가가 힘을 합쳐 약 6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이번에 보수를 완료했다. 이번 봉산정 증축 축하연은 충효의 고장 예천의 명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옛 선비들의 멋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편 이날 조선 말 경북 인근 문사들이 지은 주옥같은 한시 1백여 편이 담긴󰡐봉산정 유고󰡑문집(1991년 발간)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줘 마음에 아로새기게 하기도 했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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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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