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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928 : 봉황산...(부, 호명초 최다인, 국립중앙과학관의 제46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고무줄 커트기>로 특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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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같은 지오그래피적 분류 체계를 따르자면 봉황산과 그 주변 일대의 모든 산들은 동일한 생성 원인과 동일한 범주[카테고리]에 속하는, 각자의 정체성과 존재감이 뚝 떨어지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산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서양지리학적 안목으로 볼 때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그들 산 밑에 제각각 동족촌을 만들면서 봉황산 선름마을(경주이씨), 검무산(332m) 원당마을(연안이씨), 정산(293m) 가일마을(안동권씨), 태을산[죽자봉](248m) 오미마을(풍산김씨), 화산(337m) 하회마을(풍산류씨), 건지산(221m) 백송마을(진성이씨), 소요산(122m) 소산마을(안동김씨) 등, 개성 있고 의미 깊은 산이름과 마을이름을 지어 자존감 있는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특히 좀 더 높은 학가산(870m)을 중조산(中祖山)으로, 각각의 마을 뒷산을 그와 연계된 소조산(소조산) 내지 주산으로 위상 관계를 설정하여 자신들의 삶터 정체성과 실존 감각을 최고로 고양시켰다. 그리고 마을끼리 교류하면서도 선의의 경쟁을 한 결과, 그 일대는 이 나라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명실상부한 삶터 대명당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던 것이다. 도청 신도시 개발지구로 수용되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 버린 선름과 원당마을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마을들은 옛 경관 보존 측면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마을운동의 농촌경관 개조 바람에도 끄떡없었던 하회마을이 후일 세계문화유산마을로 지정된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성찰을 하게 한다. 봉황산에 올라 이곳저곳을 살펴보는데 미상불 이미 답사해 본 적이 있는 신도청 주변의 다른 산들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능선마루의 생김새도, 자연 식생도, 조망되는 경치도 모두 다 다르다. 서양 지리학의 임의적인 산지 정체성 분류 체계가 단지 ‘지식을 위한 지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봉황산 북쪽 기슭에 만들어져 있는 둘레길을 돌고 돌아 나무데크 계단이 필요해 보이는 가파른 산사면을 오르자 산봉우리 위에 예천군에서 세워놓은 멋진 전망대 정자 하나가 서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검무산과 도청 신시가지, 그리고 동북쪽의 웅장한 학가산 풍광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런데 정자 이름이 적힌 현판이 붙어 있지 않다. 그 순간 몇 해 전에 경북도에, 문수지맥의 학가산과 그 끝자락인 비룡산 사이에 놓인 도청 신도시 터의 풍수적 아이덴티티를 ‘학비용가지지(鶴飛龍駕之地)’로 이름 지어 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용이 구름 속에서 학을 만나 봉황을 낳았다는 동양 고래의 용봉문화 전설까지 언뜻 뇌리를 스치니 ‘고학정(顧鶴亭)’이라는 정자명이 단번에 지어진다. 풍수에서는 혈처가 위치한 산세가 자신을 낳아준 뿌리가 되는 산을 되돌아보며 터를 만들었을 경우에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명당이라 일컫는다. 문수지맥상의 봉황산도 그 조종이 되는 학가산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조상 격인 ‘학가산을 되돌아본다’는 뜻에서 ‘고학정’이라 명명했다. 더욱이 정자 바로 밑 바윗돌에 붉은 페인트를 입힌 ‘경(敬)’자가 새겨져 있어, 그 원래의 조성 의도가 만물을 존경하라는 유가 철학적 가르침에 있든, 아니면 자신이 태어난 근본이 되는 선조의 은혜에 보답하라는 보본반시(報本反始)의 뜻에 있든, ‘고학정’이라는 이름과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용학적자’ 명산이라는 봉황산의 이 새로운 아이덴티티는 예전에 선름 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 뒷산을 봉황포란형 명산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신도청 지구로 흡수된 봉황산이 도청 신도시의 부(副)주산이 되었기 때문에 고려되어야 하는 공간 스케일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도도(道都) 영역의 시각적인 범위도 학가산에서 비룡산까지 넓게 확장되어 그에 걸맞은 새 아이덴티티가 필요해 필자가 인문학적으로 창조를 한 것이다. 북쪽의 이 정자에 ‘고학정’이라는 현판을 걸고, 봉황산의 자연지리적인 형성 과정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과 더불어 ‘용학적자’라는 인문학적인 명산 정체성이 만들어진 내력을 한 번 적어 놓아 보라. 모르긴 해도 봉황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내용을 자신의 삶과 결부시키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이 고학정이 ‘작은 거인’과도 같이 유서 깊고 옹골찬 봉황산 능선 위의 또 다른 두 개의 정자와 시공(時空)으로 연결돼 있음에랴. 가칭 고학정에서 남쪽으로 움푹 꺼진 凹지를 지나 2~3분 정도 능선을 따라 오르면 희한하게 생긴 바위들이 모여 있는 안[內]선름마을 뒷산 봉우리에 다다르게 된다. 경주이씨 평리공파 보첩에는 ‘입암(立岩)으로 표기돼 있고, 주민들 사이에는 황새바우, 봉황 알 바위, [자연석] 봉황대 등으로 불리는 바로 그 잘 생긴 바위가 있는 장소다. 화강암산 능선 위에 드러나 있는 그런 바위들을 지형학 학술 용어로 토르(tor)라고 한다.
토르의 형성은, 지하에서 오랜 시간동안 냉각된 화강암이 지표로 노출되는 과정에서 압력이 줄어 원래 하나로 되어 있던 암체에 수평과 수직절리가 발달하면서 시작된다. 수직과 수평 방향의 절리들로 인해 블록모양으로 갈라진 화강암이 오랜 세월 풍화를 받으면[썩으면], 블록의 모서리 부분이 더 많이 풍화되어 가운데는 동글동글한 돌(核石, core stone)이 남고, 주변은 풍화 물질로 완전히 둘러싸이게 된다. 지하에서 일어나는 그와 같은 형식의 풍화작용을 구상풍화라고 한다. 이후 새프롤라이트(saprolite)라 불리는 이 풍화 부산물이 빗물과 지하수에 의해 모두 씻겨나가면 동글동글한 핵석만 남아 석탑처럼 쌓이게 되는데, 핵석이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할 경우 그것을 토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산지나 구릉지의 산릉부에 잘 나타나며 높이는 수 m에서 10여 m 정도이다. 서양에서는 토르를 ‘계란형 둥근 돌(egg-shaped boulders)’로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에 따라 돌탑, 돌알바위, 암탑(岩塔), 탑바위, 층바위, 흔들바위, 동석(動石), 호박바위 등 수많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며, 때로는 생긴 모습에 따라 부처 바위, 거북 바위, 곰 바위, 장군 바위, 신선 바위 등으로도 불린다. 토르는 설악산, 북한산, 월출산, 경주남산, 팔공산, 금정산 등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있는 화강암 산의 능선에서 볼 수 있으며, 모양이 특이한 경우에는 민간신앙의 숭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마도 과거의 우리 사회가 분석적인 자연과학보다는 인문학적인 감성적 아이덴티티의 지배를 받은 사회였기 때문에 그런 돌 숭배신앙이 성행하게 됐을 것이다. 당산나무[동신목]에서 사진 왼편능선으로 오르면 소윤공 묘단-한남공 묘-봉황알 바위-연리지 닮은꼴 나무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이 축은 봉황산 서쪽 둘레길이자 경주이씨 평리공파의 역사지리적 세거지 정체성을 확보해 주는 안선름마을 중심 공간축이다. 봉황산의 토르는 ‘봉황 알’ 모양에서부터 ‘흔들바위’ 모양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봉황 알 바위[황새바우 또는 자연석 봉황대]는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기도처로 각광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전에 그 바위 북쪽 골짜기에 고방사(庫旁寺)라는 절이 있었던 것도 모두 그 토르 바위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토르 바위군(群)은 소나무숲에 완전히 가려져 산 아래 마을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재학(78) 금릉1리 노인회장의 얘기로는 과거에 산이 헐벗었을 때 동네에서 쳐다보면 황새바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경주이씨 평리공파 문중으로서는 안선름마을 입구의 당산나무[동신목]-소윤공 묘단[평리공파 19세로서 小派인 소윤공파 派祖임]-이장된 한남공 묘-봉황 알 바위-‘연리지 닮은꼴 소나무’로 이어지는 봉황산 서쪽의 이 지맥 축을 가문의 역사 공간 중심축으로 새롭게 인식 전승해 내려가 볼 법하다.
도청 신도시 개발로 잃어버린 지난날의 봉황산 남쪽-봉황대 건물-선름마을-동모산 축을, 세거(世居)의 원래 출발점이었던 안선름마을로 되돌아와 다시 구축해 놓는다는 문중적인 의의도 있거니와, 앞으로 경북도 공무원교육원이 마을 입구로 이전해 오면 20여분이면 정상까지 도달할 수 있는 이 둘레길 코스가 매우 인기를 끌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 호명초 최다인, 국립중앙과학관의 제46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고무줄 커트기>로 특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최다인(호명초 5학년 최다인 '발명품경진대회 특상') [기사] : 호명초등학교(교장 강성만) 5학년 최다인 학생이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제43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특상을 수상했다. 제43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는 전국 총 2백99점의 작품이 출품해 대통령, 국무총리상 1점씩, 최우수상 10점, 특상 50점, 우수상 1백 점, 장려상 1백37점이 선정되었다. 최다인 학생(지도교사 박상연)이 출품한 ‘고무줄 커트기’는 머리에 묶인 고무줄을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자를 수 있는 커트기이다. 커트기에 달린 고리로 고무줄을 걸어 슬라이딩 버튼을 아래로 내리면 본체 속 칼날이 고무줄을 자르게 되는 원리로, 특히 실용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호명초등학교는 올해 열린 제43회 경상북도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특상, 제40회 경상북도청소년과학탐구대회 과학토론 부문 금상, 융합과학 부문 은상을 수상하는 등 과학 관련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호명초등학교 강성만 교장은 “과학발명품경진대회, 청소년과학탐구대회 등 여러 과학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학생들이 과학 및 발명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지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예천신문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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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