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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949:부춘산비...부취루...(축,예천군보건소)
작성자장병창 @ 2022.10.06 06:07:05

  도청신도시 예천 1,949 : 부춘산비...부취루...(부, 예천군보건소 신속대응반, 30일 문경에서 열린 제2회 경상북도 보건소 신속대응반 도상훈련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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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춘산비(富春山碑) [碑] : 상리면 석묘리에 있는 비석으로, 춘생(春生) 안마를 향해 그 동구 왼쪽에 있는 낮은 산 정상에 세워 있다. 길이 80cm, 너비 41cm의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되기를, "공민왕적 부춘산(恭愍王蹟富春山)"이라고 하였다. 이 자연석이 너무 마멸되어 이성돌(李聖乭), 황영익(黃永益), 송례섭(宋禮燮) 등의 마을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주민들의 성금을 모아 1979년에 그 앞에 다시 화강암으로 47cmx79cmx 7cm 규모의 碑를 세웠는데, 정면에는 '부춘산(富春山)'이라 대서(大書)한 곁에 '공민왕적(恭愍王跡)'이라 새기고, 측면에도 글(嗟呼辭難後生于世古朝殷豊春生里一坐明山 有石刻高麗王思會坐飮酒此石竪分國韓春 己未撰)을 음각하였다. 매년 음력 2월 29일에 제사를 올린다. 홍건적 난을 피해 안동까기 간 공민왕이 돌아가는 길에 이 곳에서 봄을 맞았다고 한다.

 

  부춘산비(富春山碑) [碑] : 상리면 석묘리 343-1번지(林)에 있는 화강석에 음각된 비로, ‘춘생골' ’안마‘를 향해 왼쪽에 있는 낮은 산 정상에 위치한다. 비석은 비신(碑身)과 비좌(碑座)로 구분되어 있다. 비신은 장방형으로 비신 전면에는 ’富春山恭愍王蹟‘이 새겨져 있고, 비신 좌측에 ’乙巳二月日‘의 건비연대(建碑年代)가 새겨져 있다. 비신의 크기는 폭 80cm, 높이 48cm, 두께 17cm이고, 비좌의 크기는 가로 120cm, 세로 84cm, 높이 40cm이고, 자경(字徑)은 7x9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부춘산비 : 예천의 자랑 2971 : 명봉사(12)(附 예천방문 888)/ 작성 장병창/ 유적: 부춘산비 4. 겸암선생 유적(서애대감 형님) 5. 흥덕사지 유적 6. 명봉사 등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향등 합장/ cafe.daum.net/goblun007/KxG... 요물나라(daum 2012) 명봉사 : 경북.../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command=e.. 예천군청(daum 2017)

 

  부취루(浮翠樓) [터] : 용궁면 향석리 구읍(舊邑)에 있던 누각으로, 객관(客館) 동쪽, 즉 수월루(水月樓)터 북쪽에 있었다. 1491년(成宗 22)에 용궁현감 허민(許珉)이 세우고, 허백당 홍귀달(虛白堂洪貴達)이 이름과 기문을 지었다. [洪貴達의 記] : 용궁은 사천(沙川, 乃城川)의 맑고 옅은 것과 나무숲의 깊고 빽빽하므로 남쪽 고을에 알려졌다. 내가 어렸을 때에 고을 사람 주씨(朱氏)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는데, 매양 강독(講讀)이 끝나서 틈이 생기면 친구들을 이끌고 자주 시내 숲 사이를 거닐다가 피로하면 객사(客舍)에 몸을 던져 쉬었다. 고을은 남산(南山)의 북쪽에 있고, 북산(北山)의 남쪽에는 사면(四面)이 대나무로 둘러져 있다. 문을 나서면 맑은 시냇물이 비단을 펼쳐 놓은 듯이 흐르고, 물을 사이하여 깊숙한 수풀이 울창하게 서 있으니, 명승이라고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다만 그 관사의 좁고 누추함과 누대(樓臺)가 낮고 미약한 것이 한이다. 그 뒤 내가 조정에 벼슬하느라고 강호(江湖)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지 수 10여 년이 되었는데, 시험 삼아 한 번 와 보니, 그 형승은 옛날과 같으나 누대의 퇴폐는 더욱 심하여 졌으므로 대개 일찍이 산천을 위하여 탄식하였다. 홍치(洪治) 4년에, 양천 허민(陽川許珉)이 이 고을 원으로 부임하여 이미 백성들의 이익이 되는 일을 일으키고, 백성들의 해독을 제거하니, 백성들은 그 즐거움을 즐기어서 더 일할 것이 없었다.

 

  이에 두루 산천의 아름다움을 보고, 이 누에 올라서 탄식하기를, "아, 슬프외다. 이것이 곧 이른바 알맞지 않다는 것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산천이 있는데도 이 누관(樓館)이 이같이 누추하니, 어찌 수령(守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관사란 나의 몸을 편안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라 사람을 위하는 것이니, 감히 혐의를 두겠는가?"라고 하고, 보니 객관 동쪽 옛 누의 북쪽에 우뚝 솟은 땅을 평평하게 고루어서 그 위에 누를 지어, 가운데 세 칸은 공용의 장소로 정하고, 동서쪽 구석진 방 각 세 칸은 보통 때의 쉬는 곳으로 만들었는데, 그 규모가 심히 굉려(宏麗)하였다. 누에서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면 눈이 환하고 정신이 상쾌하고, 그 주위의 푸른 산들은 붕 뜨는 듯이 처마 밑에 둘러 있다. 대개 그런 후에야 산천의 경치와 거처하는 집이 서로 어울렸다. 수령된 자가 혹 마음이 답답하거나 정사(政事) 에 막히는 일이 있어도 이 누에 오르면, 마음이 확 트이어 황연히 깨달아지리니, 오히려 또한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가 이미 이루어지매, 어떤 자가 나에게 와서 허민 군수의 말을 전하기를, "누는 새로 세웠으나, 아직 이름이 없으니, 이곳은 곧 공(公)의 옛날에 노시던 땅인 만큼 원하건대, 공은 누의 이름도 짓고, 또 기문도 지어 주십시요."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옛날 본 것을 가지고 이름을 '부취(浮翠)'라 한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내가 20세 전에 늪과 시내를 거닐면서 논 적이 있으니, 지금 40여 년이 된다. 그 사이에 수많은 수령이 이 고을에 왔으나, 여태껏 지은 자가 없더니, 우리 허민 수령에 이르러서 비로소 이룩하였으니, 산천이 사람을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이 어찌 때가 있어서인가. 비록 그러하나 일은 구차스러이 해서는 안 된다. 귀한 바는 시기를 인연하고 사람에 순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산천의 형세가 좋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국가에 일이 많고 농상(農桑)이 시기를 잃어 여염(閭閻)에서 탄식한다면, 또한 어느 겨를에 역사(役事)를 하겠는가. 그러므로 역사를 하는 자는 곧 백성을 해롭게 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성스러운 임금이 위에 계시어 백성이 편안히 지내고, 어진 수령들이 고을 마다 배치되어 농민들이 업에 편안하여 부역(賦役)에 나아가기를 마치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는 것과 같으니, 어찌 낮은 누와 허물어진 객사(館舍)에 앉아서 산천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허민 수령의 이 한 가지 일에서 태평한 기상과 그 읍 사람들의 마음을 가히 알 것이니, 이 일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였다(續東文選 第14卷 記條). [姜渾의 詩] : 높은 누에 하룻밤 자니 맑고 한가함을 깨닫겠고/ 몸은 연기 수풀 자욱한 사이에 있네./ 밤비는 정히 아름답지만 개어도 또한 좋고/ 아침에 구름 걷히니 청산이 나오는도다/(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龍宮縣邑誌 1780, 朝鮮寰輿勝覽 1929, 竺山勝覽 1934, 嶠南誌 1937, 醴泉郡誌 1939)

 

  부취루(浮翠樓) [터] : 용궁면 향석리 수월루(水月樓) 북쪽에 있던 누각으로, 1491년(성종 22)에 처음 짓고, 1692년에 중건한 10년 뒤인 1702년에 이 누각 곁에 객사(客舍)를 지었으므로 객사 동헌으로 삼았다.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貴達)의 ‘부취루기‘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과 <용궁향교지>(2005) 상권 1083-1084쪽에 전한다. [退溪詩] : 높은 누에서 꽃을 바라보노라니 마음도 한가롭고/ 산다(山茶)가 대숲 사이에 얼비치니 가장 사랑스럽다/ 저 새인들 가는 봄이 어찌 아쉽지 아니하랴만/ 왜 종일토록 산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는고/ [姜渾詩] : 높은 누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생각하니/ 몸이 연하에 쌓여서 푸른 빛 감도네/ 밤에만 비가 오고 정사(政事) 더욱 아름다우니/ 날씨가 개어서 더욱 좋고/ 아침부터 구름 걷히니 청산이 드러난다/

 

  부취루 [記事] : 한국문집총간(014_045c) 허백정집(虛白亭集, 1843)에 실린 허백당 홍귀달(洪貴達)의 기사로, 그 내용은, “虛白亭文集卷之二/ 記/ 龍宮浮翠樓記/ 龍州沙川之淸淺。林藪之深鬱。聞于南州。余少時。學于縣人朱氏之門。每講讀有隙。携同伴步遊川藪間。倦則投于客舍而休焉。縣在南山之北北山之南。四面環翠。出門有淸流拖練。隔水有深林?蔚。可謂勝矣。獨恨夫館舍之隘陋。而樓臺之低微也。爾後。僕仕宦于朝。足不跡湖山者數十餘年。而試一至焉。其形勝如奮。而樓館之凋廢。殆有甚焉。蓋嘗爲山川興,嘆也。弘治四年。陽川許侯珉。來??邑。旣興民之利。除民之害。民樂其樂。而復無事於事。則乃周覽山川之勝。而登樓嘆曰。噫。是所謂不稱。有如此山川。而館宇如是。庸非爲守者責乎。況官?。非以私吾身也。爲王人也。敢嫌疑之乎。客館之東舊樓之北。有地隆然。有石頑然。乃鑿其頑。夷其隆。樓于其上。中三楹。爲公坐之所。東西隅各室三間。爲嚮晦燕息處。制甚宏麗。俯瞰晴川。眼明神爽。四山嵐翠。浮浮??。?繞乎??之下。夫然後。地與居庶幾不相齟齬。而爲官者。或氣鬱而政滯。登斯樓也。則有豁然而霽。?然而悟者矣。尙亦有利哉。旣成。有以許侯之言。來告余者曰。樓新而未有名。是公舊遊地也。願公名而記之。山川其亦有望于公矣。余以疇昔所面目者名之曰浮翠。旣又曰。余未弱冠。有川藪之遊。至今四十有餘年。其間食于土。稱守宰者。不知幾何。而未有作之者。至吾侯。始成焉。山川之與人遇不遇。豈有時歟。雖然。事不可苟作。所貴因乎時順乎人。雖有山川形勢之勝。苟國家多事。農桑失時。閭閻愁嘆。則亦何暇以爲。而爲之者直殘民耳。今聖明在上。黎民按堵。賢守令布列州縣。田里安業。民樂於赴功。如子趨父。則夫烏得而坐低樓壞館。孤負山川哉。於侯之一擧。而大平之象。邑人之心。可知矣。是不可以不記也。”이다.(www.minchu.or.kr 2006)

 

  ◆ 예천군보건소 신속대응반, 30일 문경에서 열린 제2회 경상북도 보건소 신속대응반 도상훈련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예천군보건소 신속대응반(보건소 신속대응반 도상훈련 경진대회 장려상) [기사] : 예천군은 2022년 9월 30일 문경 STX리조트에서 열린 제2회 경상북도, 보건소 신속대응반 도상훈련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이번 경진대회는 지진, 화재 등으로 다수의 사상자 발생 시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신속‧체계적인 응급의료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함께 훈련하는 목적으로 추진됐다. 25개 보건소가 참가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 현장을 가상으로 설정하고 현장응급의료소 설치‧운영, 재난법령 및 비상 대응 매뉴얼 골든벨 등 2종목에 걸쳐 실력을 겨뤘다. 군은 안남기 보건소장을 비롯한 의사, 간호사 행정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보건소 신속대응반을 꾸려 △사고 발생 시 사고인지 △현장 출동 △초기 현장 선언 △현장의료소 설치 △중증도 분류 △현장 의료수요 파악 △환자 처지 △현장 브리핑 등 종합적인 수행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개인 경연이었던 골든벨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안남기 보건소장은 재난 현장에서 공공의료의 신속한 대처는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이번 수상이 뜻깊다.”며 “앞으로도 재난의료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군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예천신문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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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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