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예천1,953:부항...북부리
작성자장병창 @ 2022.10.10 06:06:06

  도청신도시 예천 1,953 : 부항...북부리

---

 

  부항 : →장구매기

  부항리(缶項里) [터] : 1857년부터 용궁현 신상면(龍宮縣申上面) 소속의 행정 동리로, 원래 임진왜란(1592) 직후부터 용궁현 중상면 대죽리(龍宮縣中上面大竹里) 소속이었다가 신상면 대죽리(申上面大竹里) 소속이 되었다. 1857년에 용궁현 신상면 부항리(龍宮縣申上面缶項里)가 되었고, 1914년에 예천군 지보면 암천리 일부(醴泉郡知保面岩川里一部)가 되었다.(竺山勝覽 1934)

 

  부헝바우, 봉황바우(鳳凰岩) [바위] : 호명면 금릉리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있는 바위로, 여러 바위가 첩첩이 있고, 부엉이가 살았다. [傳說] : 봉황이 와서 알을 낳고 새끼를 쳤다고 한다.

 

  부헝산 : →봉황산

  부헝이집골, 부엉이집골 [골] : 호명면 황지리(黃池) 백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부헝이 집이 있었다.

  부흥 도중의 예천 대창학원(復興途中의 醴泉大昌學院) [記事] : 중외일보 1930년 3월 23일자에 수록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ultra.dlibrary. go.kr 2003)

 

  북계서당(北溪書堂) [터] : 예천군 동로소면(醴泉郡冬老所面, 現 聞慶市 東魯面)에 있던 서당이다.(醴泉郡邑誌 1786, 1841 1895, 醴泉郡誌 1939)

  북당골 [골] : 호명면 종산1리(宗山一里)에 있는 골짜기로, 대홍수 때 베짜는 북만큼 남았다고 한다.

  북당골 : →불당골

  북두레미, 복두듬이 [들] : 용문면 원류리(院流里) 신원 앞에 있는 들이다.

  북두레미산 [山] : 용문면 죽림리 초간정(草澗亭) 앞산으로, 그 정상을 탕관봉이라고 한다.

  북드러미재 [고개] : 용문면 구계리 구계소류지(九溪小溜池)에서 초간정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북드름재 [고개] : 용문면 직리(直里)에 있는 고개로, 산등성이에 돌무지가 있고, 그 중앙에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있다. [傳說] : 이 곳을 지날 때 소나무 가지를 자그맣게 끊어서 버리고 가야 좋다고 한다.

 

  북룡사(北龍寺) [터] : 예천군에 있던 사찰로, <대감국사비명(大鑑國師碑銘)>에 대감국사 탄연(坦然)이 예천 북룡사의 비문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북룡사에 대한 다른 기록은 하나도 없다. 탄연은 고려 최초의 왕사(王師)였고 신품사현(神品四賢) 중의 한 사람이다. 또한 개포면 신음리 천덕산(天德山)의 백화사(白華寺)를 창건하였다.

 

  북룡사비(北龍寺碑) [터] : 예천 북룡사에 있던 비로, 1132년(인종 10)에 중 탄연(坦然)이 세웠다. 탄연 시대의 서(書)는 혼란한 사회(李子謙, 妙淸의 亂)에 대하여서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고려 초기보다 더욱 발양되었다. 즉 남송(南宋)과의 교섭에서 당시 송(宋)의 4대가의 서체와 접하고, 일찍 수입 소화하였던 당대(唐代) 4대가의 서체를 근간으로 하여 꽃피게 되었다. 탄연(1069-1158)의 호는 묵암(黙菴), 사호(賜號)는 대감국사(大鑑國師)이다. <대감국사비(大鑑國師碑)>에 탄연의 관한 기록(師諱坦然 俗姓韓氏... 師生有異質, 志氣不群 甫八歲能解屬文 作詩有驚人語 又工於書 時以爲千里驅 十三學六經 精通大義 十九落髮云)이 있다. 그의 서(書)로는 진락공 중수 문수원기(眞樂公重修文殊院記), 승가굴중수비(僧伽窟重修碑), 북룡사비(北龍寺碑)가 있다. 북룡사 비문은 순연한 안법(顔法)으로 안가묘비(顔家廟碑)의 진수(眞髓)를 얻은바 고려 비 중 보기 드문 안체(顔體)의 발견이다. 그리고 그는 해동 신품4현(海東神品四賢) 중의 제2로 지칭되었고, 고려조 5대가의 1위에 해당한다.(韓國藝術總覽 164쪽)

 

  북루 [記事] : 한국문집총간(012_222b) 점필재집(?畢齋集, 1789)에 실린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기사로, 그 내용은, “?畢齋集卷之二/ 詩集/ 次醴泉北樓韻。時點新定翼衛兵。送京留數日。/ 開盡玟?滯甫州。綠池靑?況高樓。點行衛士迷新部。索笑佳兒伴醉遊。蘇醒麥人山雨過。護持魚子水衣浮。塵埃半日偸閑處。快意何須萬戶留。/ 桑麻楡柳?平川。臥看襄陽半壁天。身是碧油幢下客。登樓懷抱更悠然。/ 鳴鳩乳燕弄新晴。斜日空樑??明。莫向離筵唱三疊。襄陽絲管已多情。”이다.(www.minchu.or.kr 2006)

 

  북루 [記事] : 고전국역총서(1996 刊) 점필재집(?畢齋集)에 실린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기사로, 그 내용은, “점필재집 시집 제2권/ [시(詩)]/ 예천 북루의 운에 차하다. 이 때 새로 정한 익위병을 점열하여 서울로 보내고 수일 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次醴泉北樓韻時點新定翼衛兵送京留數日]// 인재를 다 골라 뽑고 보주에 지체하노니 / 開盡玟?滯甫州/ 푸른 못 푸른 산에 더구나 높은 누각이랴 / 綠池靑?況高樓/ 항오 점고한 위사들은 새 부오에 어두운데 / 點行衛士迷新部/ 미인에게 웃음 찾으며 취객과 벗 삼았네 / 索笑佳兒伴醉遊/ 산비는 내리어 보리 이삭 소생시키고 / 蘇醒麥人山雨過/ 이끼는 떠서 고기의 알을 보호하누나. / 護持魚子水衣浮/ 한나절 동안 속세에 한가로움 얻으니 / 塵埃半日偸閑處/ 그 쾌족함 어찌 만호장안에 머물 것 있으랴 / 快意何須萬戶留// 뽕과 삼 느릅나무 버들이 평천에 무성한데 / 桑麻楡柳?平川/ 누워서 양양의 반벽 하늘을 쳐다보노니 / 臥看襄陽半壁天/ 본디 벽유당아래 있던 나그네이기에 / 身是碧油幢下客/ 누각에 오른 회포가 한층 더 한가롭구려 / 登樓懷抱更悠然/ 우는 비둘기 새끼 제비가 개인 날을 희롱하는데 / 鳴鳩乳燕弄新晴/ 지는 해 빈 들보에 무지개가 환히 밝구려 / 斜日空樑??明/ 이별하는 자리에서 삼첩을 노래하지 말라 / 莫向離筵唱三疊/ 양양의 관현악 소리에 이미 정들었다오 / 襄陽絲管已多情// [주D-001]보주 : 예천(醴泉)의 고호임./ [주D-002]양양 : 역시 예천의 고호임./ [주D-003]벽유당 : 군막(軍幕)에 쓰이는 벽색 유막(碧色油幕)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군막을 말한다./ [주D-004]삼첩 : 이별을 뜻함. 당(唐) 나라 때 왕유(王維)가 친구를 송별하면서 양관곡(陽關曲: 渭城朝雨?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盃酒 西出陽關無故人)을 불렀던 데서 온 말인데, 삼첩은 곧 제4구(句)인 󰡐西出陽關無故人󰡑을 세 번 반복하여 노래한 것을 가리킨다.”이다.(www.minchu.or.kr 2006)

 

  북루 [記事] : 고전국역총서(1996 刊) 점필재집(?畢齋集)에 실린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기사로, 그 내용은, “점필재집 시집 제2권/ [시(詩)] / 예천 북루의 운에 차하다. 이 때 새로 정한 익위병을 점열하여 서울로 보내고 수일 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次醴泉北樓韻時點新定翼衛兵送京留數日] / 인재를 다 골라 뽑고 보주에 지체하노니 / 開盡玟?滯甫州/ 푸른 못 푸른 산에 더구나 높은 누각이랴 / 綠池靑?況高樓/ 항오 점고한 위사들은 새 부오에 어두운데 / 點行衛士迷新部/ 미인에게 웃음 찾으며 취객과 벗 삼았네. / 索笑佳兒伴醉遊/ 산비는 내리어 보리 이삭 소생시키고 / 蘇醒麥人山雨過/ 이끼는 떠서 고기의 알을 보호하누나. / 護持魚子水衣浮/ 한나절 동안 속세에 한가로움 얻으니 / 塵埃半日偸閑處/ 그 쾌족함 어찌 만호장안에 머물 것 있으랴 / 快意何須萬戶留// 뽕과 삼 느릅나무 버들이 평천에 무성한데 / 桑麻楡柳?平川/ 누워서 양양의 반벽 하늘을 쳐다보노니 / 臥看襄陽半壁天/ 본디 벽유당아래 있던 나그네이기에 / 身是碧油幢下客/ 누각에 오른 회포가 한층 더 한가롭구려 / 登樓懷抱更悠然// 우는 비둘기 새끼 제비가 개인 날을 희롱하는데 / 鳴鳩乳燕弄新晴/ 지는 해 빈 들보에 무지개가 환히 밝구려 / 斜日空樑??明/ 이별하는 자리에서 삼첩을 노래하지 말라 / 莫向離筵唱三疊/ 양양의 관현악 소리에 이미 정들었다오 / 襄陽絲管已多情// [주D-001]보주 : 예천(醴泉)의 고호임./ [주D-002]양양 : 역시 예천의 고호임./ [주D-003]벽유당 : 군막(軍幕)에 쓰이는 벽색 유막(碧色油幕)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군막을 말한다./ [주D-004]삼첩 : 이별을 뜻함. 당(唐) 나라 때 왕유(王維)가 친구를 송별하면서 양관곡(陽關曲: 渭城朝雨?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盃酒 西出陽關無故人)을 불렀던 데서 온 말인데, 삼첩은 곧 제4구(句)인 󰡐西出陽關無故人󰡑을 세 번 반복하여 노래한 것을 가리킨다.”이다.(www.minchu.or.kr 2006)

 

  북루 [記事] : 한국문집총간총목차 012집 점필재집(?畢齋集)에 실린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기사로, 그 내용은, “...生員睦宗宅 余赴暖寢宴 於席上 令諶作春望詩 ?成余跋其尾示孫公 222 瞻星臺 222 次醴泉北樓...”이다.(www.minchu.or.kr 2006)

 

  북루 : 점畢齋集卷之二/ 詩/ 次醴泉北樓?。時點新定翼衛兵。送京留數日。/ 開盡玟?滯甫州。綠池靑?況高樓。點行衛士迷新部。索笑佳兒伴醉遊。蘇醒麥人山雨過。護持魚子水衣浮。塵埃半日偸閑處。快意何須萬戶留。/ 桑麻楡柳?平川。?看襄陽半壁天。身是碧油幢下客。登樓懷抱更悠然。/ 鳴鳩乳燕弄新晴。斜日空樑??明。莫向離筵唱三疊。襄陽絲管已多情。/ 저자 김종직(金宗直)/ 분류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종합DB(http://db.history.go.kr/ 2014)

 

  북면장(北面場) [터] : 예천읍에 있던 조선시대부터의 5일장(五日場)으로, 1일과 6일에 개시(開市)하였다.(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32 1841 1896, 嶠南誌 1937)

 

  북박골 [골] : 용궁면 대은리(大隱里) 알미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북방정책에 관한 국민 의식 조사(北方政策에 關한 國民意識 調査) [論文] :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인 강지한(康智漢, 1941- , 慶北大 敎授) 등의 논문으로, 한국국민윤리학회에서 1990년에 발행한 <국민윤리연구(國民倫理硏究)> 29권 1호 253-301쪽(49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북방정책에 관한 국민 의식 조사(北方政策에 關한 國民意識 調査) [論文] :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인 강지한(康智漢, 1941- , 慶北大 敎授) 등의 논문으로, 경북대학교 평화문제연구소에서 1990년에 발행한 <평화연구(平和硏究)> 15권 1호 65-163쪽(99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서론, 2) 문항별 분석, 3) 종합 분석 및 해석, 4) 결언, 부록(설문문항 및 각 변인별 통계표)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명지대(인문), 상명대(서울), 서강대, 이화여대이다.(keris 2003)

 

  북벽집(北壁集) [冊] : 개포면 경진리 검암(劍岩)에 있는 예안 김씨 예천파 문집(禮安金氏醴泉派文集)으로, 북벽 김홍제(北壁金弘濟)의 시(詩), 서(書), 제문(祭文), 잡저(雜著), 행상(行狀), 사우록(師友錄) 등이 있다. 2권 1책이다.

 

  북부리 : →새마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