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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044 : 사미헌집...사법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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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헌집(四未軒集) [冊] : 예천 출신인 사미헌 장복추(張福樞, 1815~1900, 性理學者, 慶尙道 都事)의 문집으로,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편집하여 서울 민족문화추진회(民族文化推進會)에서 2003년에 발행한 <한국문집총간(影印標點 韓國文集叢刊)> 315-316권(2책, 27cm) 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嘉梧藁略 1-2(李裕元), 四未軒集(張福樞), 圭齋遺藁(南秉哲)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서울교대, 전북대이다.(keris 2005)
사바실, 살부실(殺父室) [고개] : 풍양면 청운2리(靑雲二里) 굴미재에 있는 외진 고개로, 오지리(梧枝里)와 연결되어 있다. 장을 보러 간 아버지를 마중간 아들이 도적으로 오인되어 죽었다는 뜻에서 이 지역을 살부실이라고 하는데, 후에 살부실(殺父室)이 사바실로 변음(變音)되었다.
사방골: →새뱅이
사방산(四方山) [山] : 개포면 이사리(伊泗里) 안골 남쪽에 있는 산으로, 구봉사(龜峯寺)가 있다. 경진리(京津里), 동송리(冬松里), 우감리(牛甘里), 이사리(伊泗里) 등 네 동네가 동서남북으로 걸쳐 있다.
사방치기: →돌차기
400[V] 공장배전의 경제성(400[V]工場配電의 經濟性) [學術저널] : 상리면 도촌리 출신 남상천(南相千, 1933- , 上里初 卒業, 忠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慶北工業專門大學에서 1971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近來 新設되는 工場도 무척 늘어나고 또, 그 電力設備容量도 불어나는 傾向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施設費를 줄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重要한 問題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대한 한가지 方法으로서 우선 생각되는 것은 알맞은 配電電壓을 擇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從來 쓰고 있던 200[V], 3[kV]와 400[V]級 配電에 對해서 比較 檢討해 보기로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400[V]級 工事를 特殊한 것으로 보는 傾向이 있으나 歐美 其他 外國에서는 아주 普遍化된 工事라고 한다. 그러면 이것에 對해서 簡略히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daum 2009)
사벌국왕모후릉([잃어버린 王國을 찾아서 .2] 沙伐國 : 尙州․醴泉․聞慶 一帶 號令했던 古代强國) [記事] :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둔진산 기슭에는 1900년 전 고대국가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전사벌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사벌국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병풍산성과 이부곡토성이 위치해 있다. 후백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말년을 보냈다는 사벌산성. 하지만 사벌산성은 이보다 600여년 전 상주와 예천, 문경 일대를 호령한 사벌국의 군사요충지였다. 삼국시대 이전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는 고대국가 사벌국(沙伐國)의 유적을 찾는다는 부푼 기대감을 갖고 가장 먼저 상주 병풍산을 찾았다. [#병풍산과 이부곡토성] : 이곳 정상에는 흙과 돌을 혼합해 만든 병풍산성(또는 아자개성)이 있고, 산 곳곳에는 삼한시대 사벌국의 고분군이 널려있다. 하지만 정상으로 올라가며 만난 300여 기의 고분 대부분은 수풀에 뒤덮여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방치돼 있다. 일부는 도굴로 고분 중앙부가 무너져 있다. 해발 365m의 병풍산 정상 부근에 도착하자 10m 높이의 병풍산성이 일행을 맞이했다. 병풍산성은 산 정상 2개의 봉우리를 연결, 가운데 골짜기를 막아 만들었다. 성벽 내부는 흙으로 채우고, 외곽은 어른 머리만한 돌로 다져놓았다. 전체 둘레만 1천770m인 산성 외곽은 1천900년 전 웅장했던 사벌국의 모습을 가늠키에 충분했다.
산성 내부에는 주춧돌 10여 개가 당시 건물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실제 병풍산성 일대에서는 화려한 금관을 비롯해 구석기․청동기시대 유물도 출토됐다. 발길을 돌려, 병풍산에서 직선거리로 2㎞가량 떨어진 사벌면 금흔리 성안산의 이부곡토성을 찾았다. 상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으로 사벌국과 그 이전의 강대한 세력들이 자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 정상(해발 157m) 부근에 위치한 이부곡토성은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경사면과 계곡을 U자 형으로 감싸안은 모습이다. 정상에서는 상주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성 아래에 동천과 병성천이 감싸고 돌아 천혜의 방어선이 구축돼 사벌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보였다. 하지만 현장에는 2~3m 높이의 토성 흔적만 몇 곳에 남아있을 뿐, 여기가 옛 상주 일대를 호령한 사벌국의 토성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당시 물건을 담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함. 술잔으로 사용된 토기고배. 이같은 산성이 축조되기 위해서는 사벌국은 강력한 경제력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벌국은 낙동강과 인접해 비옥한 평야에서 생산한 쌀과 다양한 농산물을 주변국가와 교역해 경제적 부를 쌓아, 진한 12국(기원 전후부터 4세기경까지 지금의 대구․경주 지역에 분포한 12개의 소국)중 가장 부강한 나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벌국의 흔적] : 사벌국이 부족국가 형태에서 멸망까지 이른 시기는 기원전 2세기경에서 4세기 사이로 추정된다. 또 기원전 108년 고조선의 멸망과 낙랑군의 성립 등 불안정한 국제정세가 농경사회를 '사벌국'이라는 국가로 발전시키는데 충분한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사벌국'이라는 고대국가의 이름과 함께 멸망 당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 및 열전에는 신라 제12대 첨해왕(247~261)때 "신라에 복속했던 사벌국이 태도를 바꾸어 백제와 동맹을 맺자 신라 석우로(昔于老) 장군이 사벌국을 멸망시켜, 사벌주로 복속시켰다"고 전한다. 사벌국은 신라에 패망한 뒤에도 상당기간 경제․정치적으로 경주와 버금가는 세력집단이 존재했으며, 삼국통일이 이뤄지기까지 전략적 요충지였다. 신라 제14대 유례왕(재위 284~298)은 사벌주의 부유한 민가 80여 호를 사도성으로 옮기기도 했다. 학계는 사벌국의 중심지를 상주시 낙상동, 사벌면 금흔리의 성안산, 화달리의 둔진산․소산 등 남북 1.7㎞, 동서 2.2㎞정도로 추측하고 있으며, 최대 영역권은 상주 외서면․은척면, 문경 산양면․영순면․산북면, 예천군까지로 보고 있다. 현장을 동행한 강경모 상주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일제시대 대부분의 고분이 도굴되고, 성벽도 많이 무너져 복원이 시급하다"며 "1957년 은척면 하흘리에서 사벌국의 국인으로 추정되는 인장이 발견됐지만 서울로 감정을 보내는 과정에서 분실됐고, 예천군의 사벌왕비릉 주변에서 발견된 지석도 사라져 상주에서 사벌국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임호 記者 嶺南日報 2007-04-02)
사범계 체육교육과 지망생의 일반운동능력검사 기준치 설정에 관한 연구(師範系 體育敎育科 志望生의 一般運動能力檢査 基準値 設定에 關한 硏究)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양점홍(楊点紅, 釜山大 敎授) 등(高基俊 黃喆文 金泰運 金重雄 白永鎬 表內淑 黃太相 徐國雄)의 논문으로, 부산대학교 부설 체육과학연구소(釜山大學校 附設 體育科學硏究所)에서 1989년에 발행한 <체육과학연구소 논문집(體育科學硏究所 論文集) Vol.5 21-44쪽(24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서강대(로욜라중앙), 상명대(중앙), 서울대(중앙), 한국외대(중앙), 연세대(중앙)이다. [目次] : Ⅰ. 序論/ Ⅱ. 全國大學間 實技考査 測定種目分析/ Ⅲ. 測定對象 및 方法/ 1. 測定對象/ 2. 測定方法/ 3. 資料處理 및 方法/ Ⅳ. 結果 및 考察/ Ⅴ. 結論 및 提言/ 參考文獻(keris 2003 2006)
사법시험 합격(第44回 司法試驗 장석대 안천식 氏 合格) [記事] : 제44회 사법시험에 예천읍 우계리 안천식(37) 씨와 출향인 장석대(27․동국대 법대 4년) 씨가 최종 합격했다. 안씨는 동부초등 예천중 포철공고를 졸업한 뒤 8년 간의 직장 생활을 했으며 이후 경희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 우계리에는 모친 정재영 씨가 살고 있다. 장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했으며 고향인 용궁면 금남리에는 조부 장은출 씨와 숙부 장정웅(금남1리장) 씨가 살고 있다.(醴泉新聞 2002-12-28)
사법시험 합격(第45回 司法試驗 5名 合格) [記事] : 2003년 12월 23일 발표된 제45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906명 중 예천 출신 합격자 5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화제. 예천군청 정인호 기획감사실장의 아들 원일(35) 씨를 비롯 배준식(29․예천읍 최정수 씨아들), 노서영(30․호명보건지소장 부인) 씨와 예천읍 태생의 출향인 권오진(서울․예중 16회) 씨의 딸 경현(27), 지보면 만화2리 태생의 출향인 전재섭(서울) 씨의 아들 준호(25) 씨가 최종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醴泉新聞 200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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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