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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052:4-5세기영남지역..사우회...
작성자이춘우 @ 2023.01.20 06:07:59

  도청신도시 예천 2,052 : 4-5세기 영남지역...사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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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세기 영남지역 취락의 공간성과 사회단위(4~5世紀 嶺南地域 聚落空間性社會單位) [論文] : 브랜드 KSI논문이다. 김옥순의 20041월 논문으로,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신라문화> 231-29(29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주거지군이 대응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되고 있다. 31) 嶺南文化財硏究院, 慶山 埋藏文化財 地表調査 報告書 , 1997. 14 新羅文化 第 23주거군 그림4. 임당 취락의 공간 구성 임당 유적과 유사한 예를 예천 대심동고분군의 경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천촌락사>에서 보여주는 분촌의 내용과 현재 취락의 분포가 거의 일치하고 있는데, 또한 여러 개의 동급 대형 분묘군이 현재 취락과 일관성 있게 배치되어 있다. 취락 입지의 연속 성을 고려한다면 당시의 상황이 대략 이와 같은 경관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럴 때, 주변에 소형 묘만 축조된 취락이 모인 취락군은 아마도 인접해 있는 상위 위계화 취락군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경주지역의 황남동 고분군, 김해지역의 대성동 고분군, 경산지역의 임당동 고분군, 대구지역의 비산내당동 고분군, 예천지역의 대심동 고분군의 분포 유형에서도 관찰되듯이 그 지역에 지리적인 중심을 차지하는 으뜸 취락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으뜸 취락들은 특정 재화의 흐름에 있어서 주변 취락군들을 포괄하는 거점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단위는...” “...변화라기보다는 엄격하게 말하면 취락의 내적인 세포 분열과도 같은 양적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즉 분촌된 취락과 모촌인 취락이 중심 취락과 그와 관련된 하위 취락과의 관계로 구조적 변화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취락군내에 취락의 수가 증가한데 지나지 않는다. 예천 대심리와 같이 바로 인접한 곳으로 분촌되어 마치 하나의 취락으로 보이는 예도 있는 것이다. 대형 분이 축조된 곳은 대부분 이와 유사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 고총 고분군이 여러 능선으로 분기(分岐)하는 것이 임당유적과 같이 초기철기시대 목관묘...”

 

  사용자 책임에 관한 연구(使用者 責任硏究) [論文] : 감천면 출신인 이춘희(李春熙, 1960- , 慶北大 法學科 卒業, 同 大學院 碩士博士, 司法試驗 合格, 辯護士, 慶北大 大邱大 講師)의 경북대학교 대학원 1988년 석사학위 논문으로, 103,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1988년에 발행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중앙), 경북대, 계명대(동산), 동국대(중앙), 서울시립대, 숙명여대, 전남대, 전북대, 조선대, 충남대, 충북대이다.(keris 2003 2005)

 

  사우(祠宇) [敎育] : 조선 시대 사설(私設) 교육 기관 내지 교화 기관으로는 서원(書院)과 더불어 서재(書齋), 정사(精舍), 사우(祠宇), 향현사(鄕賢祠), 향사(鄕祠), (), 이사(里社), 영당(影堂), 별묘(別廟), 세덕사(世德祠), 유애사(遺愛祠), 생사당(生祠堂) 등이 있었고, 그것들은 흔히 서원 사우(書院祠宇)로 통칭되고 있었다. <예천군읍지(醴泉郡邑誌)>들에 의하면, 사직단(社稷壇), 여단, 성황단(城隍壇), 임장군묘(林將軍廟), 불도묘(不跳廟, 夷靖廟, 尹別洞廟, 李松齋廟, 鄭藥圃廟), 백송단(白松壇), 성황사(城隍祠), 향현사(鄕賢祠), 의충사(毅忠祠), 의산사(義山祠), 완담사(浣潭祠), 표절사(表節祠), 무이사(武夷祠), 우곡사(愚谷祠), 상덕사(尙德祠), 세덕사(世德祠), 이산사우(里山祠宇), 가야사우(佳野祠宇), 훤평사우(喧坪祠宇), 포내사우(浦內祠宇), 옥천사(玉泉祠), 옥동사(玉洞祠), 광호사(光湖祠), 용곡사(龍曲祠), 소원사(昭遠祠), 가평사(佳坪祠), 훤평사(喧坪祠), 포내사(浦內祠), 옥천사(玉川社), 옥동사(玉洞社), 회산사(晦山社), 광호사(光湖社), 죽고사(竹皐社), 용곡사(龍谷社), 충효사(忠孝社), 이산사(里山社)가 있었다. <용궁현읍지(龍宮縣邑誌)>들에 의하면, 사직단(社稷壇), 성황단(城隍壇), 여제단(祭壇), 오선단(五仙壇), 충효사(忠孝祠), 성황사(城隍祠), 완담향사(浣潭鄕社), 용곡향사(龍谷鄕社)가 있었다.

 

  사우당(四友堂) [古宅] : 용문면 덕신리에 이 마을 문화재로 볼 수 있는 청송심씨(靑松沈氏) 고택인테 훼손되고 있다. 수년간 비워둔 관계로 도적이 수없이 침범하여 모든 물건을 다 훔쳐갔고, 자손이 살지 않은 이 집은 날이 갈수록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생각하건데 집을 수리도 하고 대지가 넓으니 주변 경관을 잘 정리해서 소공원(小公園)을 만들었으면 집도 살고 마을도 살아서 미래의 문화재가 될 것을 확신하는데도 요()는 돈이다. 이 댁의 주손(冑孫)은 팔순(八旬)이 넘은 노인이고, 아랫대는 숭조불망(崇祖不忘)의 정성이야 왜 없으리요 마는 현실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고 본의 아니게 도시에서 조상의 옛 행적을 감당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아서 애통하기만 하다. 돈이 귀()가 있다면 사우당과 도덕암(道德巖)을 한번쯤 살펴봄직도 하건만 돈의 귀는 멀어있다. 지금으로부터 백 수십여 년 전에 안동 풍남면(豊南面) 월애리(月涯里)에서 시어른 4 형제분이 이곳 덕신으로 오실 때만 해도 불과 열 집 안팎인 초라한 마을로 사람은 드물고 토지는 매말라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시니 산수(山水)는 명려(明麗)하고 안개구름 피어오르는 절승지(絶勝地)에 비길만한 곳, 지혜로운 자가 베풀어서 차릴만한 곳이라 여기시고 기껍게 의탁하시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어느 한 곳 사물 하나도 어른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모든 것이 즐거이 애착을 아니 가진 게 없었다고 하셨다. 사우당 기문에 의하면.... 중략... 예전에 시경(詩經)에 있는 상? 시 팔장(?詩八章)을 읽는 적이 있는데 말을 선()하게 하는 자가 흥취(興趣)를 시에 가탁(加託)하여 스스로 그 잊지 않고 두려워하는 뜻을 드러내어 볼만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문노군(文魯君)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인륜(人倫)이 없어지는 것을 개탄하면서 마음속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형제보다 더한 이는 없으니 형제가 다 모여 있어야 언제까지나 화락(和樂)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옛날 서하임공(西河林公)의 당호(堂號)를 본따서 사우당이라 하였다. 처지(處地)와 기대하는 바는 비록 서로 다르겠으나 형제간의 우애의 중요성을 깊이 살핀 결과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군자(君子)에게는 평생의 즐거움이 있을 뿐이요 하루아침의 즐거움은 즐거움이 되기에 부족하다 하였다... 중략... 1939 5월 진성 이기호(李麒鎬) ()(麗蘭 權丁淑 <尙賢大川 第42015 155-156)

 

  사우당선생일고(四友堂先生逸稿) [] : 용궁면 가야리 출신인 사우당 전찬(全讚, 1546-1612, 軍資監 正)의 일고로, <기계선생일고(箕溪先生逸稿)>(全仁, 1502-1577, 參奉), <일연당선생일고(日蓮堂先生逸稿)>(全夢井, 1522-1594, 通禮院 引儀)와 함께 가안세고(佳安世稿 及附錄)>에 수록되어 있는데, <가안세고>42, 목활자본(木活字本), 30.1x19.6cm,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22x15.9cm, 유계(有界), 10() 20(),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서문(序文)은 권연하(權璉夏), ()1891년에 김휘준(金輝濬), 발문은 계묘년(癸卯年)에 전학영(全學永)이 썼다. 목차는, 책건(冊乾)에 서문(序文), (), 목록, 1, 2이고, 책곤(冊坤)에 목차, 3, 부록, 4, 부록, 발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에 소장되어 있다.

 

  사우디의 35개년 계획과 우리의 참고 방안(사우디의 35個年計劃과 우리의 參考 方案) [] : 풍양면 청곡리 별실(別谷) 출신인 정재완(鄭在完, 稅務大 敎授) 등의 저서로, 서울 국제경제연구원에서 1981년에 출판한 <특수분석>(4, 삽도, 26cm) 139권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단국대(중앙), 부산대이다.(keris 2003)

 

  Sausage의 품질보존에 미치는 r-선 조사의 영향(Sausage品質保存에 미치는 r-線 照射影響) [學術저널] : 용문면 죽림리 출신 권중호(權重浩, 1954- , 醴泉中, 醴泉農高 卒業,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慶北大學校 農業科學技術硏究所에서 1984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Sausage의 품질보존에 미치는 r-선 조사의 영향(Sausage品質保存에 미치는 r-線 照射影響) [學術저널] : 용문면 죽림리 출신 권중호(權重浩, 1954- , 醴泉中, 醴泉農高 卒業,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COLLEGE..에서 1984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사우회[記事] : [서명]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8/ [기사명] 慶北 醴泉郡內思想團體 五五會/ 년월일 1927-01-17/ 출전 東亞日報 1927.2.20/ 본문 慶北 醴泉郡內思想團體 五五會 正進會 同友會 一光團4團體合同總會를 열고 會名四友會로 결정하다./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사우회: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8> 1927 117 > 慶北 醴泉郡內의 思想團體 五五會/ 연월일 19270117/ 주제분류 민족해방운동,대중운동 > 사회주의운동 > 사회주의단체(사상운동단체 포함) > 기타사회주의단체/ 출전 東亞日報 1927.2.20/ 慶北 醴泉郡 內의 思想團體인 五五會 正進會 同友會 一光團의 4團體가 合同總會를 열고 會名을 四友會로 결정하다.(http://db.history.go.kr2014)

 

  사우회: 근대사연표/ 1927 0117/ 경북 醴泉 사상단체 五五會,正進會,同友會,一光團, 통합하여 四友會결성./ [출전] 동아일보 1927. 2. 20. 일제침략하36년사 8,p. 390.(http://db.history.go.kr/2014)

 

  사우회: 慶北 醴泉郡內의 思想團體 五五會/ 상위서지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8/ 날짜 1927-01-17/ 분류 도서 > 편년자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8> 1927 117 > 慶北 醴泉郡內의 思想團體 五五會/ 연월일 19270117/ 주제분류 민족해방운동,대중운동 > 사회주의운동 > 사회주의단체(사상운동단체 포함) > 기타사회주의단체/ 출전 東亞日報 1927.2.20/ 慶北 醴泉郡內의 思想團體 五五會 正進會 同友會 一光團의 4團體가 合同總會를 열고 會名을 四友會로 결정하다./ 東亞日報 1927.2.20/ 제공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www.history.go.kr/2014)

 

  사우회: 四友會解體?(醴泉)/ 신문명 동아일보 1927/ 날짜 1927-06-21/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동아일보/ 면수 04/ 단수 01/ 표제어 단체(團體)/ 제공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www.history.go.kr/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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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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